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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아상(2) 8회

자수향 2009. 2. 13. 13:20

 아인중생수자상의 원래 의미는 무엇인가

 

 왜 부처님께서는 알랄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 문하에서 각각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의 경지까지 증득하셨지만

이를 버리고 떠나셨나? 이를 구경이 아니라고 여기신 판단 근거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법은 [속된 것들을] 염오하도록, 욕망을 빛바래도록, 그치도록, 고요에로,

초범지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무소유처에 다시 태어남에 이바지할 뿐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그 법을 장엄하지 않고 그 법을 버리고서 떠나갔다.(M26)" 인도수행자들에게선 자연과 인간의 여러

현상들을 대상으로 하여 삼매(samaadhi, 선정)를 닦는 것이 아주 많이 언급되고 있다. 부처님께서 정등각을 이루시기 전에 

깔라마와 라마뿟따 두 스승 하에서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로 표현되는 수행을 하셨는데 이것은 이러한 전통적인 인도의

사마디 수행으로 도달한 경지를 불교식으로표현한 술어이다.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선행하는 초기불교의 수행관이 설명되어야한다

초기불교와 남방불교에서 설하는 수행법을 발제하도록 하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삼매는 그것이 아무리 깊고 수승하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개념(빤냣띠, 산냐)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미세한 산냐에 걸려있으므로 무아를 철견하는 지혜를

완성할 수 없으며, 무아를 통찰하못하면 해탈 열반 정등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무색계 4처대한 설명을『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 인용한다.

 

1. 공무변처(空無邊處, ākāsāna~ncāyatana):

공무변처라 함은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pat*igha)의 인식

을 소멸하여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 하는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래서 

‘무한한 허공(ananto ākāso)’이라는 산냐(인식)가 현전하므로 이것을 공무변처라고 부른 것이다. 『청정도론』(X.6-11)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까시나를 대상으로 한 색계 제5선을 터득하고 까시나의 닮은 표상을 무한

히 확장한다. 그런 다음 그는 그 닮은 표상을 없애 버리고 그것이 퍼져있는 허공을 “무한한 허공”이라고 응시하면서 그 허공

에 마음을 기울인다. 이와 같이 거듭해서 마음에 잡도리하면 마침내 그 본삼매에서 허공이라는 개념(ākāsa-pa~n~natti)을

대상으로 한 마음이 일어난다. 공무변처는 이렇게 첫 번째 무색계 마음의 대상으로서 작용하는 허공의 개념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아야따나[處]는 禪의 마음이 머무는 장소 혹은 거주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식무변처(識無邊處, vi~n~nān*ancāyatana):

 경에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識]’라고 하는 식무변처를 증득하여 머문다”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무한하다고 하는 것은 첫 번째 무색계 禪(공무변처)을 뜻한다. 첫 번째 무색계선은 허공이라는 개념(pa~n~natti)을

 대상으로 가지기 때문에 허공을 대상으로 가지는 알음알이도 그 무한함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지에 도달

 하기 위해서 수행자는 공무변처의 알음알이를 그 대상으로 삼아 그것이 무한한 알음알이라는 두 번째 무색계의 본삼매가 일어

 날 때까지 수행한다.

 

3. 무소유처(無所有處, āki~nca~n~nāyatana): āki~nca~n~nāyatana)

 경에서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무소유처를 증득하여 머문다”라는 정형구로 나타난다.

 무소유처는 공무변처의 알음알이가 지금 존재하지 않음(natthi- bhāva)이 그 대상이 된다. 그 알음알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잡도리함 으로써 무소유처는 첫 번째 무색계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을 대상으로 삼아서 일어나는 것이다.

 

4.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이 경지는 인식이 극도로 미세해져서 인식 등의 마음부수들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심리상태라 하겠다.

경에서는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라고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은

인식을 포함했다고도 제외했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지은 것이다. 이런 유형의 마음에는 인식(sa~n~nā)의 마음

부수가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그것이 더이상 인식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경지는 인식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인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남아 있다. 비록 인식 하나만이 언급되었지만

이 마음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마음부수법들도 그런 극히 미세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도 존재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라고 설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