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법이란 무엇인가? 法尙應捨 何況非法 1
법은 무엇인가 - 法尙應捨 何況非法(6장)
법은 산스끄리뜨 dharma(빠알리 dhamma)의 역어이다.
다르마(법)는 인도의 모든 사상과 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는 술어이며 또한 방대한 인도의 제 문헌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술어 중의 하나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불교 문헌에서도 예외 없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술어 중의 하나이다.
우리 불교에서도 법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와 이론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제자는 여기서 법에 대한[對法=abhi-dhamma] 이해를 그 존재이유로 삼는 아비담마에서는 법을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간략하게 설명하여 법의 개념을 이해하는 기초를 다듬어 볼까한다.
법(다르마, 담마)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담마(dhamma)의 여러 의미를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는『앗타살리니』에 나타나는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이다.
여기서 스님은 dhamma를
① 빠리얏띠(pariyatti, 교학, 가르침)
② 헤뚜(hetu, 원인, 조건)
③ 구나(guṇa, 덕스러운 행위)
④ 닛삿따닛지와따(nissatta-nijjīvatā, 개념이 아닌 것) nissatta-nijjīvatā의 문자적인 뜻은 ‘삿따(중생, satta)도 아니고 영혼(jīva)도 아님’이다. 즉 중생이라는 개념(빤냣띠, paññatti)이나 영혼이라는 개념이 붙을 수 없는 궁극적 실재(빠라맛타, paramattha)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개념이 아닌 것’으로 옮겼다.
이것을 다시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⑴ 부처님 가르침(=진리=덕행)으로서의 법과
▶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법문(法門)을 하셨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에서 法門이라 번역한 원어는 빠알리어로 담마 빠리야야(dhamma-pariyāya) V.i.40; D1/i.46; M5/i.32 등. 인데 빠리야야는 다른 말로 ‘방편’이라고도 번역되었듯이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설해진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초기경에서 보듯이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법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주로 재가자들)에게는 보시와 지계와 천상에 나는 것[施․戒․生天]<<dānakatham sīlakatham saggakatham.(D1/i.3; M1/i.56 등)>>
을 설하셨고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다양하게 법을 설하셨다. 이렇게 세간적이거나 출세간적이거나 높거나 낮은 단계의 수많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없으면 자칫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놓치거나 오해하고 호도할 우려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핵심만을 골라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제자들 사이에서 아주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있어왔다. 이런 노력이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므로 듣거나 배우는 사람의 성향이나 이해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즉 아무런 방편을 붙이지 않고 설한 가르침이 아비담마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는 ‘빠리야야(방편)가 아닌 닙빠리야야 데사나(nippariyāya-desanā, 비방편설)’라고 논장의 주석서들에서는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은 ‘뛰어난 법과 특별한 법’으로 아비담마를 정의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승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아무런 방편을 쓰지 않고] 제일 먼저 천상의 신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라고 신화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⑵ 물․심의 현상으로서의 법(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요즘 서양학자들은 전자를 대문자 Dhamma로 후자를 소문자 dhamma로 표기한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서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은 ‘다르마빠리야야(dharma-paryāya)’로 부르는데 ‘법문(法門)’이라 한역하였다.
▶ 물․심의 여러 현상을 법이라 한다고 했다. 이를 아비담마에서는 더욱더 정확하게 정의한다.
가장 잘 알려진 법에 대한 정의가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에 나타난다. 붓다고사 스님은 ‘자신의 본성(사바와, sabhāva,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을 법이라 한다(attano pana sabhāvam dhārentī ti dhammā.--DhsA.39)'고 정의하고 있는데 법에 대한 정의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난다 스님은 ‘전도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본성이다’라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sabhāvo ti aviparītatā vijjamānatā, saha bhāvena sabhāvo.(DhsMT.25)>>
이것을 종합하면 본성(sabhāva)이란 ‘더이상 분해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성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법(dhamma)은 ‘더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단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최소 단위로 하나의 마음(citta), 52가지 마음부수(cetasika), 18가지 물질(rūpa), 하나의 열반으로 모두 72가지를 들고 있다.<28가지 물질 가운데서 10가지 추상적인 물질(anipphanna-rūpa)은 최소단위로 취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람, 동물, 산, 강, 컴퓨터’ 등 우리가 개념지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다시 여러 가지의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최소 단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은 개념(빤냣띠)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강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최소 단위인 물의 요소(āpo-dhātu)들이 모여서 흘러감이 있을 뿐 강이라는 불변하는 고유의 성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이 만들어낸(parikappanā) 개념이지 그들의 본성(sabhāva)에 의해서 존재하는 실재는 아닌 것이다.
물론 법(dhamma)이란 의미를 광의로 해석하면 이런 모든 개념(paññatti)들도 모두 법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최소단위로서의 법은 ‘궁극적 실재, 혹은 구경법(paramattha, 빠라맛타)’으로 강조해서 부른다. 그러나 아비담마 전반에서 별다른 설명이 없는 한 법(dhamma)은 구경법을 뜻한다.
아비담마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런 궁극적 실재들이야말로 이 모든 세상 즉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부터 출세간의 경지에까지 항상 존재하는 최소의 단위이다. 존재를 이런 최소의 단위, 구극의 단위로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체하여(vibhajja)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가 없다고 설하는 것이 아비담마이다. 아비담마는 빤냣띠(개념)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이 궁극적 실재인 법(dhamma)들의 특징과 역할 등을 분석하여 규명하고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인연취산(因緣聚散)을 거듭하고 있는지에 더 중점을 둔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근본적인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