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향 2009. 3. 2. 18:44

→생활은 전적으로 탁발과 공양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날이 '사카족의 아들 고타마'도 역시 사문의 이런 관행에 따라 라자가하의 거리에 나타나서 탁발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모습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아라의 왕인 빔비사라였다. 왕은 높은 다락에서 넋을 잃은 듯 바라보다가 이으고 주의를 돌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경전은 그 전문을 게(偈,불교의 이치를 나타낸 운문)로 기록하고 있거니와 그것을 산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된다.

 

"모두들 저사람을 똑똑히 보아라. 의젓하지 않은가! 그 용모와 행동거지로 볼 때 ,아마 천한 출신은 아닌 것 같구나.

곧 누가 가서 저 사람있는 곳을 알아 가지고 오너러."

 

명을 받은 사신은 그 뒤를 밟았다. 그 사람은 탁발을 마치자, 교외에 있는 '판다라'라는 산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 산은 라자가하를 에워싼 다섯 산 중의 하나이다. 그런 산들이 둘러 싸고 있는 까닭에 '산에 에워싸인 서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왕이시여, 그 사문은 판다라의 전면에 있는 암굴 속에 호랑이처럼

 소처럼 사자처럼 앉아 있더이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직접 동굴로 그를 찾아 갔다.  그리고 마주앉아 '즐거운 인사'를 나눈 다음 이렇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젊도다. 늙지도 않았고

양양한 전도를 지니고 있도다.

꽃 같은 청춘이 그대 것이요

유서 있는 가문에 태어난 듯 하도다.

 

나는 주리니 바라는 녹(綠)을 ,

그대여 오라, 코끼리 떼 앞세운

나는 묻노니, 그대여 내력을 말하라.

내 막강한 군대에 참가하라.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붓다는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어엿한 왕족 무사의 가문이다.

지금은 삭발하고 가사를 걸쳐 사문의 몸이 되어 있거니와, 타고난 의젓함은 아지도 그 몸에 넘치고 있었으리라.

왕은 벼슬하기를 권하며 그 내력을 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앞에 인용한 두 절로 된 운문이다. 거기에는 사카족 이야기가 나온다.

히마반트의 기슭에서 사는 한 부족이라고........

히마반트란 눈으로 덮힌 산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히말라야를 말한다.

그 고장은 또 예전부터 코살라국에 속해 왔다고도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속하는'이라고 번역한 것은 팔리어로는  niketa라고 하여 '그 휘하에'라는 뜻이다. 이 말을 통해 우리는 사카족의 정치적 위치가 어떠했는 지를 알 수 있다. 또 거기에는 부족의 칭호로서 '태양의 후예'라는 말이 나와 있고 생족의 이름은 '사카'라고 한다는 것이 설명되어 있다. 아마도 사아카(Sakiya) 또는 사캬(Sakya)는 코리아(Koliya)족과 함께 '태양의 후예'라고 불리는 부족에 속하는 포족(胞族)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쨋든 샤카족이라는 이름은 붓다-사카 족의 아들 고타마- 로 말미암아 비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붓다를 일컬어 '사카족에서 나와 출가한 사문'이라고 하거나 '가캬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라고 했다. 우리 후세 사람들도 이 분을 우러러서 석가모니(석가족에서 나온 성자)또는 석존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명칭에 의해 사캬족의 이름은 불교의 문헌 뿐 아니라 널리 일반에게 가지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캬 족 자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 밖에는 알 수 없다.

 

또 후세 사람들이 사캬족에 관해 기록한 것들은 그 진상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신빙성이 없다. 다행이도 여기에 붓다 자신에 의해 설해졌다는 2절의 게가 전해 오므로, 이 성자를 낳은 부족에 대한 믿을 만한 소식을 그나마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