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금강경결제발제문-초불연

12회 법이란 무엇인가? 法尙應捨 何況非法 2

자수향 2009. 3. 5. 12:21

법을 궁극적 실재라고 하면 혹자는 “그것은 제법무아라는 부처님의 근본 사상과 상치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 아비담마에서는 고유한 특징(sabhāva-lakkhan*a)과 보편적 특징(sāma~n~na-lakkhan*a) 두 가지 측면으로 법을 고찰한다.

각각의 법들은 모두 그 자신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는 있지만 무상․고․무아라는 보편적인 특징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열반은 형성된 것(san#khata)이 아니므로 무상과 고를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아는 그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경에서도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라고 표현하며 “모든 법들은 자아가 없다[諸法無我]”라고 무아를 가르치고 있다.<<sabbe san#khārā aniccā; sabbe dhammā anattā.(M35/i.228)>>
이 諸法(sabbe dhammā)에는 열반도 포함된다.<<Rahula, Walpola, 57-58 참조할 것.>>

열반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열반은 탐․진․치가 소멸된 경지라서 이런 모든 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궁극적 실재라고 한다 하여 불변하는 어떤 존재론적인 특정한 것을 상정하려든다면 이는 아비담마에서 말하는 빠라맛타(paramattha)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비담마는 ‘나’ 밖에 있는 물․심의 현상(dhamma)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초기경에서부터 부처님께서는 dhamma를 제 육근인 마노(mano, 意)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계신다.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기능[前五根]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현상일지라도 사실 마노(mano, 意)가 없으면 판독불능이고 그래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겠다.

일단 전오식(前五識)에 의해서 파악된 외부의 세계도 받아들여지고 나면 그 즉시에 마노의 대상인 dhamma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외부세계도 일단 나의 대상이 되어 내 안에 받아들여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에서는 외부물질을 다섯 감각기능[根]들의 대상으로서만 파악하고 있으며 이름도 고짜라(gocara)라고 붙이고 있는 것이다. 고짜라는 소(go)가 풀을 뜯기 위해서 다니는(cara) 영역이나 구역을 의미하는데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가 움직이고 다니고 의지하는 영역이라는 말이다. 대상이란 보는 것 등의 기능[根]이나 그런 알음알이[識]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술어라 하겠다.

이처럼 아비담마의 주제는 ‘내 안에서’ 벌어지는 물․심의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불교에서 강조해서 말하는 법(dhamma)이다. 발제자는 이렇게 법을 내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불교를 이해하는 핵심중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이런 제일 중요한 측면을 놓쳐 버리면 법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물심의 현상인 법에 대해서 배우고 사유하고 고뇌하고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기초를 다져야 하거늘 오히려 법은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저 밖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래서 밖으로만 신심을 내어서 무언가를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다가 잘 안되면 법은 그냥 불교지식이나 불교상식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매찰나를 법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법을 내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비법에 온갖 관심을 쏟아 붓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법(dhamma)을 이렇게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면 그 순간부터 부처님 가르침(Dhamma) 역시 의미를 잃고 만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Dhamma)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심의 현상(dhamma)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궁극적으로 법은 오직 하나의 의미뿐이다.

이런 부처님 말씀을 골수에 새기고 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dhamma)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하고 사유하여 무상․고․무아인 법의 특상을 여실히 알아서 괴로움을 끝내고 不死(열반)를 실현하려는 것이 아비담마이다.

그리고 초기경에 담마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중요한 술어가 dit*t*he vā dhamme(딧테 와 담메)이다. 직역하면 ‘보여진 현상(법)에서’이고 ‘지금 여기(here and now)'로 의역된다. 본 금강경에서도 dr*s*t*e eva dharme(16-1장)로 나타나고 현장은 以現法中으로 옮기고 있다. 부처님의 관심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심의 현상임을 이 술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