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향 2009. 3. 16. 09:46

'불이 꺼진 상태' 즉 열반이 영원한 평화의 경지를 가리키는 불교용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루는 브라만 한 명이 나타나서 갖은 욕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붓다는 침착하게 말했다.

 

"브라만이여, 그대가 내 주는 음식을 손님이 안 먹은다면 그 음식은 누구것이겠는가?"

 

그것은 물론 주인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것과 마찮가지로 욕설 또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임기웅변, 자유자제! 붓다의 대기설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붓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일관하는 뚜렷한 성격이 있었다. 입신자들의 고백문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입신자들의 고백문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은 전도한 것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전도'란 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사 엇바뀌고 진심을 오해하는 것이다.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그것이다. 변화하는 것을 불변, 영원한 듯이 아는 태도도 그것이다.

 

후세의 불교인들이 '사전도'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상(常),낙(樂),아(我),정()이 전도를 말한다. 첫째 상전도는 이 무상한 세상이나 사람들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일이며 둘째 낙전도는 이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일이며  셋째 정전도는 이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고 잘 못아는 일이며 넷째 아전도는 이 무아인 존재를 내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이런 착각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덮힌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불교의 진리관을 표현한 말이다. 어떤 경에서 붓다는 이런 비유를 설한 적이 있다.

 

"여기 통 안에 물이 있다고 하자, 그 물이 불에 데워져 부글부글 

끓고 있다든지, 또는 이끼나 풀로 덮혀 있다든지,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든지 한다면, 그 통 안의 물은 사물의 모습을

여실히 비출 수 있겠는가?"

 

물론 비출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여기서 붓다는 만약 우리의 마음이 탐욕이나 노여움으로 뒤덮혀 있을 경우에는 여실히 대상을 지견(知見)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을 유도해 갔다.

 

이렇게'여실지견'을 방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복(覆)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제거되고 맑은 마음으로 객관을 대할 때 일체의 존재는 그 진상을 드러낸다. 이것이 불교의 진리관이다. 그렇다면 "덮힌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라는 말은 이런 여실지견으로 이끌고 가려는 의도인을 알 수 있다.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이 " 라는 말은 현대식으로 표현 한다면 합리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합리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한 점이 있다. 논리에 맞으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인가,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가지고 합리라고 보는 것인가? 붓다의 취한 태도는 아무래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최초의 설법에서도 이런 붓다의 태도는 이미 나타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하나는 두 가지 극단, 즉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비판한 말 속에 나온 "무익하다"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을 비판한 다음 중도를 주장하면서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바지 한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붓다의 실용주의(Pragmation)를 발견하는 것이다.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한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물 속에 잠겨 있는 젖은 나무를 보고,

 좋은 찬목(鑽木;마찰하여 불을 일으키는 나무)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일으키리라, 빛을 내게 하리라.'

 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중부경전』 36薩遮迦對經살차가대경 )

 

젖은 나무라면 아무리 마찰을 시켜도 불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고행을 해보았자 그것으로는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고행을 포기하게 된 붓다의 합리주의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합리주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붓다의 생애를 일관했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나는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대문을 [상응부경전] 42:6 '서지인'이라는 제목의 경에서 인용했던 것이지만, 그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교화 태도도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붓다가 나란다 마을의 파바리캄바라는 숲 속에 머물렀던 때의 일이다. 이웃마을의 촌장인 안반다카푸타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아마도 그는 붓다의 명성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어서, 우선 이런 것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