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휴게실/자수향의 돋보기 세상

삼성가 둘, 현대가 둘, 재벌 상속자만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나라

자수향 2009. 3. 21. 13:23

1.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억만장자 순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Forbes)는 지난 11일 전 세계 억만장자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인은 4명입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자산 30억달러로 205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15억달러·468위),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13억달러·559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10억달러·701위)입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자녀가 두 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자녀가 두 분입니다. 역시 삼성과 현대공화국입니다. 사이좋게 두 분의 1대손들이 두 자리씩을 차지했습니다. 앞으로 30년 뒤에는 각각 가지를 쳐서 역시 삼성과 현대 가문이 대한민국의 부를 이끌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2.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올린 한국어, 재벌(Chaebol)

외국은 대기업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재벌(Chaebol)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영어로 재벌이란 단어는 ‘김치’처럼 한국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한국에서의 대기업체로서, 전형적인 가족 소유형(in South Korea a large business conglomerate, typically a family-owned one)이라고 정의합니다.

재벌이고, 재벌상속이고 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산소유의 이동가능성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부자가 가난해질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열린 사회가 되어야 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희망의 조짐이 별로 없습니다. ‘벌족’ 때문입니다.

 

3. 미국 부자와 한국 재벌의 차이는

포브스가 부자들의 순위를 발표한 것은 1982년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록펠러(Rockefeller), 멜론(Mellons), 듀폰(duPonts)과 같은 상류층 부자가족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사람들의 이름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신 빌게이츠(Bill Gates), 워렌 버핏(Warren E. Buffett), 폴 앨런(Paul G. Allen), 커크 커코리언(Kirk Kerkorian) 등이 자리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를 변호사로 둔 당대 부자입니다. 상속 부자가 아닙니다. 94년 이래 한 두해를 제외하고는 일관되게 1위를 차지합니다. 99년부터 억만장자 반열에 들어섭니다. 워렌 버핏도 자수성가한 당대 부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속세에 찬성하고, 자신들의 재산을 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금도 세계 최고의 재단이고 워렌 버핏도 이 재단에 기부하곤 합니다. 지난 5년간 세계 최고의 기부왕은 워렌 버핏입니다. 빌 게이츠는 50년 내로 재단의 재산을 전부 활용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후손들이 억만장자가 될 확률은 전무합니다. 이들은 결코 재벌을 만들지 않습니다. 2세 상속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부자와 한국부자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또 다른 가장 큰 차이는 결혼 풍속에 있습니다. 외국 부자들은 벌족끼리의 결혼보다는 열린 결혼을 지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벌족 국가요, 재벌들의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