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휴게실/자수향의 돋보기 세상
무심한 여자’ 300만 명의 궐기?
자수향
2009. 3. 24. 23:29
무심한 여자’ 300만 명의 궐기?
시사비평 2009/03/23 07:24 손석춘
니콜라 사르코지. 그가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을 때, <조선일보>는 1면에 그의 당선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친미’와 ‘경제’ 중요성을 부각했다. 대선 정국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는 편집임이 분명했다. 이명박 또한 친미를 내걸었고 ‘경제 살리기’를 공언했다.
사르코지는 세금감면, 정부조직 축소, 임금인상 억제를 ‘개혁 정책’이란 이름으로 추진했다. 이명박이 당선 뒤 강행하는 정책과 ‘판박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르코지는 미국과 영국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 한계를 모르쇠하지 않는다.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의 퇴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되레 저돌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종한다.
사르코지보다 저돌적 신자유주의자 이명박
그렇다. 사르코지가 아무리 우파라 해도 경찰 공격으로 도심에서 국민 5명이 숨지는 참사 앞에서 사과도 없이 철거민을 되술래잡지는 않을 터다. 이성으로 판단한다면 사르코지보다 이명박이 더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르코지에 맞선 프랑스 국민의 분노가 끓고 있다. 프랑스 노동조합 총파업에 300만 명이 동참했다. 대중교통, 병원, 은행의 총파업 참여로 프랑스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총파업은 더러 ‘폭력적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보라. 프랑스 여론조사에서 국민 78%가 파업을 적극 옹호했다. 왜 그럴까? 프랑스 국민이 한국 국민보다 더 훌륭해서일까?
아니다. 사르코지와 달리 이명박이 행복한 이유는 명백하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프랑스 총파업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불편 준 프랑스 총파업에 국민 78%가 지지
프랑스 총파업 다음날(3월20일), 그 소식을 담은 신문은 드물었다. 시장을 독과점한 신문들은 엉뚱한 기사를 내보냈다. 가령 “불황과 타협한 파리”제하에 섹션 전면에 걸쳐 편집된 <동아일보> 기사가 보기다. 기사는 “파리는 여자다. 때로는 수다스럽지만 가슴이 시릴 정도로 무심한 여자다”로 시작해 패션 동향을 다룬다. 기사는 “프랑스 파리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패션”이라며 “파리는 만인이 흠모하는 신비로운 여자다”라고 기사를 맺는다.
<동아일보>와 부자신문들에서 노동자와 시민 300만 명이 손잡은 총파업의 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신문 종합면에는 통단으로 “정치파업-잇단 비리에 신물” 제하에 한국 노동운동을 매도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편집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한나라당정권의 부익부빈익빈 정책을 언제나 두남두고 그에 항의하는 생존권 투쟁을 ‘좌파’니 ‘체제전복세력’으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현실과 프랑스의 현실은 차이가 크다.
한국 국민 불행의 원천 한나라당-재벌-언론권력(한재언)
프랑스 노동조합은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의하는 ‘정치 파업’을 벌였다. 이명박의 한나라당 정권과 재벌, 언론권력에겐 모두 감옥으로 보낼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다.
둘 다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자 대통령’이지만 사르코지의 불행과 이명박의 행복은 언론권력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명박은 행복하고 사르코지는 불행하지만, 국민은 어떨까. 국가 장래를 짚어보면 결론은 분명하다. 프랑스 국민은 행복하지만, 한국 국민은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한국 국민의 불행, 원천은 저 한나라당-재벌-언론권력(한재언)의 삼각동맹이다.
사르코지는 세금감면, 정부조직 축소, 임금인상 억제를 ‘개혁 정책’이란 이름으로 추진했다. 이명박이 당선 뒤 강행하는 정책과 ‘판박이’다. 하지만 적어도 사르코지는 미국과 영국에서 드러난 신자유주의 한계를 모르쇠하지 않는다.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의 퇴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되레 저돌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종한다.
사르코지보다 저돌적 신자유주의자 이명박
그렇다. 사르코지가 아무리 우파라 해도 경찰 공격으로 도심에서 국민 5명이 숨지는 참사 앞에서 사과도 없이 철거민을 되술래잡지는 않을 터다. 이성으로 판단한다면 사르코지보다 이명박이 더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사르코지에 맞선 프랑스 국민의 분노가 끓고 있다. 프랑스 노동조합 총파업에 300만 명이 동참했다. 대중교통, 병원, 은행의 총파업 참여로 프랑스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총파업은 더러 ‘폭력적 양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보라. 프랑스 여론조사에서 국민 78%가 파업을 적극 옹호했다. 왜 그럴까? 프랑스 국민이 한국 국민보다 더 훌륭해서일까?
아니다. 사르코지와 달리 이명박이 행복한 이유는 명백하다.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프랑스 총파업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불편 준 프랑스 총파업에 국민 78%가 지지
프랑스 총파업 다음날(3월20일), 그 소식을 담은 신문은 드물었다. 시장을 독과점한 신문들은 엉뚱한 기사를 내보냈다. 가령 “불황과 타협한 파리”제하에 섹션 전면에 걸쳐 편집된 <동아일보> 기사가 보기다. 기사는 “파리는 여자다. 때로는 수다스럽지만 가슴이 시릴 정도로 무심한 여자다”로 시작해 패션 동향을 다룬다. 기사는 “프랑스 파리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패션”이라며 “파리는 만인이 흠모하는 신비로운 여자다”라고 기사를 맺는다.
<동아일보>와 부자신문들에서 노동자와 시민 300만 명이 손잡은 총파업의 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 신문 종합면에는 통단으로 “정치파업-잇단 비리에 신물” 제하에 한국 노동운동을 매도하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편집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한나라당정권의 부익부빈익빈 정책을 언제나 두남두고 그에 항의하는 생존권 투쟁을 ‘좌파’니 ‘체제전복세력’으로 살천스레 몰아치는 현실과 프랑스의 현실은 차이가 크다.
한국 국민 불행의 원천 한나라당-재벌-언론권력(한재언)
프랑스 노동조합은 사르코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항의하는 ‘정치 파업’을 벌였다. 이명박의 한나라당 정권과 재벌, 언론권력에겐 모두 감옥으로 보낼 ‘집단 이기주의 세력’이다.
둘 다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자 대통령’이지만 사르코지의 불행과 이명박의 행복은 언론권력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이명박은 행복하고 사르코지는 불행하지만, 국민은 어떨까. 국가 장래를 짚어보면 결론은 분명하다. 프랑스 국민은 행복하지만, 한국 국민은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한국 국민의 불행, 원천은 저 한나라당-재벌-언론권력(한재언)의 삼각동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