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금강경결제발제문-초불연

25회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의 중요성 1

자수향 2009. 3. 31. 17:09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의 중요성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지하는 것을 설한 단어를 간단히 음미해보자.

[마음에] 간직한다(dhārayis#yanti): √dhr*(to hold)의 동사 사역 미래 삼인칭 복수형이다. 초기경에도 나타나며 dhammam dhāreti 하여 ‘법을 마음에 새기다, 외우다, 알다’의 뜻으로 많이 나타난다. 구마라즙과 현장은 受持로 옮겼다.

독송한다(vācayis#yanti): √vac(to speak)의 동사 사역 미래 삼인칭 복수형이다. ‘말하게 하다’의 의미에서 ‘독송하다, 독송하게 하다’의 의미로 쓰인다. 구마라즙과 현장은 讀誦으로 옮겼다.

이해한다(paryavāpsyanti): pari(둘레에, 원만히)+ava(아래로)+√āp(to get)의 동사 미래 삼인칭 복수로 쓰였다. ‘공부하다, 통달하다, 완전히 이해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빠알리어에서는 pariyāpun*āti로 접두어 ava가 없이 나타난다. 현장은 究竟通利로 옮겼다.

상세하게 설명해준다(vistaren*a samprakāśayis#yanti): vistara는 vi(분리하여)+√stṛ(to strew)의 명사로서 문자적 의미는 ‘이리 저리 흩어서’ 즉 ‘잘 분석해서’이며 ‘상세하게’라는 뜻이 된다. deśayet는 √diś(to direct)의 Pot. 동사형이다. ‘가르치다, 설명하다’의 뜻이다. 이 두 단어를 합해서 구마라즙은 說로 현장은 宣說로 옮겼다.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한다(yoniśaś ca manasikaris#yanti)는 빠알리어 yoniso manasikāra는 불교에만 나타나는 술어로서 초기 경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yoni는 ‘자궁’이나 ‘모태’를 나타내며 여기에다 ‘-śah* (Pāli. so)’ 접미어를 붙여서 탈격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모태로부터, 근원으로부터’의 뜻을 나타낸다. manasikāra는 manas(마음, 意)의 처소격을 만들어 거기에 √kr*(to do)를 붙여서 말 그대로 ‘마음에 만든다, 마음에 둔다, 마음에 새긴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yoniso manasikāra는 “아주 근원에서부터 잘 마음에 새겨 사유한다, 깊이 통찰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서양학자들은 ‘wise attention(지혜로운 주의)’ 혹은 ‘systematic analysis(체계적인 분석이나 사유)’ 등으로 옮기고 있다. 현장은 如理作意로 옮기고 있다.

여기서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 지혜로운 주의)은 초기불교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술어이고 한국불교가 놓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발제자가 쟁점에 포함시켰다. 그럼 여기서 如理作意로 한역하고 있는 요니소 마나시까라(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의 중요성에 대해서 음미해보도록 하자. 먼저 초기경에서 어떤 문맥에서 요니소 마나시까라가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면 이 술어가 뜻하는 의미를 좀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부 제 2경에서 부처님은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들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들은 버려진다.”고 하신다(yoniso ca bhikkhave manasikaroto anuppannā ceva āsavā na uppajjanti, uppannā ca āsavā pahiyyanti).

상응부 제 12편 인연상응(Nidānasamyutta)의 여러 경들에서 “연기에 대해서 아주 깊게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여리작의) (pat*iccasamuppādam yeva sādhukam yoniso manasikaroti) 해탈을 성취한다.”고 나타난다. 그리고 중부 43경 (Mahāvedallasutta)에서는 “지혜로운 주의를 반연하여(paccaya) 정견(正見)이 생겨난다(sammā-dit*t*hiyā uppādā)”라고 나타난다. 그리고 아울러 yoniso upapari-kkheyya(근원적 [지혜롭게] 되새겨 봐야 한다)는 표현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요니소 마나시까라와 같은 의미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