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싸나 -미산스님
순수 위빠싸나와 사마타 -위빠싸나
1. 머리글
2. 붓다의 수행
3. 사마타 수행의 여러 효능
4. 파아욱 센터에서의 사마타 - 위빠싸나 수행
5. 순수 위빠싸나 수행에 대한 비판
1. 머리글
우리나라에 위빠싸나 수행이 소개되어 보급된 지 16년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1988년 미얀마의 우 빤디따 스님이 서울 삼각산
승가사에서 위빠싸나 수행을 지도하신 것이 우리나라에서 위빠싸나 수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효시인 것 같다. 그 뒤로 많은 비구 비구니와 재가 신자들이 상좌부 불교 권에 들어가서 위빠싸나 수행을 배웠으며, 또한 상좌부 불교권의 스님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직접 수행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위빠싸나는 거의 대부분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하지 않는 순수 위빠싸나라 할 수 있다. 고엥카 방식에서는 약간의 사마타 수행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선정 상태의 체험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마타 -위빠싸나 수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순수 위빠싸나 수행만으로도 열반을 체험할 수 있고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은 상좌부 경전에 의거해 보면 붓다께서 보증하신 바지만 단지 깨달음만 문제 삼지 않고 신통과 방편까지 구족하기 위해서는 사마타 수행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되며 위빠싸나 수행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확실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위빠싸나가 한국에 소개되어서 많은 수행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부처님께서 직접 하시고 직접 가르치셨던 방법이라는 데 있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정통성을 가지는 것인데, 그렇다면 붓다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대각을 이루셨으며, 사마타 수행은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고, 실제로 지금 상좌부 불교 권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마타 -위빠싸나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점들을 살펴봄으로써 순수 위빠싸나 수행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붓다의 수행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붓다께서는 처음 출가하셔서 외도인 알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푸타의 지도 하에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의 선정을 닦으셨다. 이때의 방법은 카시나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는데 붓다께서는 이 어려운 선정상태에 쉽게 도달하셨지만 거기에서 한계를 느끼고 떠나셨다. 사마타 수행만으로는 생 노 병 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번뇌가 일시적으로 억압될 뿐 뿌리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뒤 6년에 걸쳐 지식과 단식 위주의 고행을 했으나 역시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마지막으로 보리수 아래 앉아 목숨을 건 용맹정진을 시작했는데 이때 했던 방법이 바로 들숨날숨에 마음을 모으는 아나빠나사띠 수행이었다. 아나빠나사띠 수행으로 색계 4선정에 도달한 붓다께서는 마음을 자신의 전생관찰로 기울여 모든 전생을 확인하는 숙명통을 얻었으며, 이어 삼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상태와 그곳에 태어나게 된 인연을 파악하는 천안통을 얻으셨다. 그럼으로써 붓다의 지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었고 이러한 시공을 초월한 지혜를 바탕으로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현상과 정신현상을 대상으로 관찰하시어 삼법인을 파악하고 마침내 열반을 증득하여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를 단계적으로 통과함으로써 모든 번뇌를 멸한 아라한이 되셨는데, 열반을 체험하기 이전에 시공을 초월한 현상적 지혜를 미리 얻었기 때문에 다른 아라한들과는 달리 일체지를 갖춘 삼마삼붓다가 되셨다.
대략 이러한 과정이 상좌부 불교에서 설명하고 있는 붓다의 대각의 과정인데 사마타 선정을 완성한 이후에 위빠싸나로 전환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6년의 수행 동안 위빠싸나 수행을 한 시간은 불과 4시간에 불과한데, 사마타 수행을 통해 충분한 집중력을 가질 수 있다면 위빠싸나 수행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3. 사마타 수행의 여러 효능
청정도론에 의하면 사마타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위빠싸나를 제대로 깊게 하기 위해서다. 집중력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위빠싸나 수행이 피상적이 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둘째, 신통력을 얻기 위해서다. 중생 제도의 측면에서는 신통력이 많은 도움 이 되는데 위빠싸나 수행만으로는 선정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신통력을 얻을 수 없고 반드시 사마타 수행을 해야만 신통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선정 상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은 희열과 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다. 선정 상태에 들고나는 것이 숙달되면 언제든지 이러한 희열과 행복감 또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넷째, 다음 생에 색계나 무색계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다. 임종시에 어떤 선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면 죽은 직후 그 선정 상태에 해당되는 세계에 태어나서 오랜 동안 선정 상태를 누리며 살 수 있다.
다섯째, 붓다께서 한 개체가 현상계에 존재하는 동안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자주 언급하신 멸진정에 이르기 위해서다. 멸진정에 들기 위해서는 사마타 수행이 필수적이다.
4. 파아욱 센터에서의 사마타 -위빠싸나 수행
현재 상좌부 불교권의 대부분의 수행센터에서는 순수 위빠싸나만 하고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사마타 수행만 하고 있는데, 사마타 수행부터 시작해서
위빠싸나 수행에 이르기까지 가장 체계 있게 가르치고 있는 곳이 미얀마의 모올라민에 있는 파아욱 센터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 파아욱 센터에서 하고 있는 사마타 -위빠싸나 수행을 살펴보고자 한다.
가. 사마타 수행
먼저 아나빠나사띠 수행으로부터 시작한다. 콧구멍을 통과하는 들숨날숨을
관찰함으로써 밝은 빛의 표상(니밋따)를 얻게 되고 이 니밋따를 통해 색계초선부터 색계4선에 이르는 색계선정에 들어간다. 이 색계의 4가지 선정이 어느 정도 숙달되면 빛을 이용해 몸을 구성하는 32가지 요소들을 관찰하고, 이 요소들의 색깔을 이용해 색깔 까시나 수행을 통해 다시 색계의 4가지 선정과 무색계의 4가지 선정을 닦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4가지 보호명상 즉, 자애 수행(慈愛 修行), 불수념(佛隨念), 신념(身念), 사념(死念)의 수행을 닦는다. 이중 자애 수행은 분노가 강하게 일어날 때, 불수념은 신심이 떨어지거나 퇴굴심이 일어날 때, 신념은 자신의 몸이나 이성의 몸에 집착이 일어날 때, 사념은 게으른 마음이 일어날 때 각각의 장애를 극복하고 수행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보조적으로 익혀두는 수행법이다.
나. 위빠싸나 수행
이상으로 사마타 수행이 끝나면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집중력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 현상을 관찰하는 위빠싸나 수행을 시작하는데, 본격적인 위빠싸나 수행에 앞서 두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가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궁극적 실체를 분별, 확인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가 12연기의 관찰을 통해 모든 현상의 인과를 살펴보는 단계인데 이 두 단계가 파아욱 센터에서의 수행을 다른 순수 위빠싸나 수행과 구별 짓는 깊이 있는 수행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몸을 대상으로 지, 수, 화, 풍 사대를 관찰함으로써 물질을 이루는 극미 요소인 깔라빠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다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깔라빠를 구성하는 기본 8요소인 지, 수 ,화, 풍, 색깔, 냄새, 맛, 영양소와 부차적 요소인 감성 물질 요소, 성 요소, 심장 토대 요소들까지 확인한다. 파아욱 사야도의 말에 의하면 이 단계까지 확인해야만 물질의 궁극적 실체를 확인한 것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위빠싸나를 진행할 수 있다 한다.
깔라빠의 요소들을 확인한 다음에는 한 깔라빠가 생멸할 때 17번 생멸한다는 심찰라를 확인한다. 또한 낱낱의 마음바탕과 마음부수들의 생멸을 확인한다. 이 단계까지 확인해야만 정신의 궁극적 실체를 확인한 거라고 한다.
파아욱 사야도는 ‘덩어리를 부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은 물질과 정신을 관찰할 때 그것들을 구성하는 궁극적 실체의 수준으로까지 들어가서 낱낱의 깔라빠나 심찰라의 생멸을 보아야만 진정한 위빠싸나 수행이 가능하다는 취지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 어느 시점에 작용했던 마음 상태에서의 마음부수들과 대상을 확인하는 훈련을 반복하며,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금생의 첫 순간, 전생의 마지막 순간의 마음 작용과 대상을 확인함으로써 전생의 어떠한 업으로 인해 금생에 이러한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확인한다. 말하자면 12연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단계인데 이러한 과정들이 다른 순수 위빠싸나 수행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과정이며, 그러기 위해서 선정을 통한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 두 과정이 보통 위빠싸나 지혜 16단계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되는 단계인데, 세 번째 단계부터가 본격적인 위빠싸나 수행 단계로서 깔라빠의 생멸과 심찰라 또는 마음부수법들의 생멸을 대상으로 무상, 고, 무아의 소위 삼 특성 관찰을 시작한다. 그 뒤로 위빠싸나 지혜가 계속 진전되어 11번째 단계인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에 이르고 여기에서 관찰을 깊게 해 나가면 마침내 모든 현상의 소멸을 체험하면서 열반을 증득하기에 이른다.
대개의 경우 처음 열반을 증득하기 전에 수행자는 색계 초선에 든다. 그 뒤에 색계 초선에서 나와 초선에 있었던 선정 요소를 반조하면서 그것들의 무상이나 고 무아의 한 특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열반을 체득하게 된다.
일단 열반을 증득한 사람은 그 뒤 수다원과 의식 상태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훈련을 받으며 이 훈련이 완료되면 사야도는 손을 떼고 그 뒤의 수행은 각자에게 맡기는 듯하다.
5. 순수 위빠싸나 수행에 대한 비판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상좌부 불교 수행에 있어 가장 바람직한 길은 먼저 사마타 수행을 통해서 충분한 집중력을 얻은 뒤 위빠싸나로 전환해서 수행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상윳타 니까야에서 붓다께서는 8정도 중 바른 집중을 설명하시면서 ‘바른 집중이란 색계 4선정’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도 위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본다. 파아욱 사야도는 선정 체험의 필요성과 특히 ‘덩어리를 부수어서’ 깔라빠와 심찰라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위빠싸나 수행만 계속할 경우 관찰이 피상적이 되고, 또 바왕가 즉, 대상을 놓친 무의식 상태에 떨어진 것을 열반을 증득한 걸로 착각하기가 아주 쉽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위빠싸나가 소개되고 필자가 처음 위빠싸나 수행을 접했을 때, 이 위빠싸나 수행 방법이 문제점 많은 간화선 수행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많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 뒤 10여년이 지난 지금, 위빠싸나 수행이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동안 주로 순수 위빠싸나 수행만 들어와서 보급되다 보니 그 힘이 약해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재가 신도들에게는 오히려 순수 위빠싸나가 더 맞을 수도 있겠지만,
출가 수행자의 입장이라면 사마타 수행이 주는 여러 가지 부수적 효능까지 고려해서 사마타 -위빠싸나를 닦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되며, 이 힘 있는 사마타 -위빠싸나 수행이 우리나라에 정착되면 간화선 수행에 잘 맞지 않는 많은 수행자들에게 확실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마타위빠사나와 순수위빠사나(미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