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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性이란 무엇인가

자수향 2009. 4. 13. 23:27

마지막으로 발제자는 불교 용어로서 연기와 무아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공이라는 표현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부처님께서는 이 두 단어만을 사용하셨다. 이 두 단어만으로도 부처님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다.

물론 4卷 ?楞伽經?은 ꡒ첫째, 현상(法)에는 자아(我)가 없는 관계로 일체의 망상을 떠났으며, 둘째, 그렇지만 지혜의 방편(智慧善巧方便)으로서, 어느 때는 如來藏을 설하고, 어느 때는 法無我를 설한다. 이것은 인연에 따른 결과이다. 셋째, 그러므로 如來藏은 바로 無我이고, 解脫門에 들어가는 경계인 것이다.(於法無我離一切妄想相 以種種智慧善巧方便 或說如來藏 或說無我 以是因緣故說如來藏 不同外道所說之我. -- 大正16, 489中, 인경스님의 위빠사나와 간화선에서 재인용)ꡓ라고 해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인용문에서 보듯이 여래장은 방편적인 언어일 뿐이다.

이처럼 불성, 여래장은 그 시대의 사조와 교감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술어들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시대에는 불성, 여래장이란 용어가 오히려 부처님의 근본 메시지를 왜곡시키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발제자의 견해이다. 발제자의 말을 무식한 사람의 과격한 언어구사라고 폄하하기 이전에 발제자의 고언을 조금은 귀담아 들어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

그리고 우주의 본체, 삶의 본질을 드러내니 성의 가르침이 더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철기시대적이고 전제군주시대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자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바뀌었다. 철이 상징하는 전제군주시대에서 신소재가 상징하는 민주시대, 개인의 시대, 자기개발의 시대가 되었다. 바로 내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먼저 관찰하고 그것이 무상고무아인줄 먼저알자. 부처님께서는 상응부에서 ꡒ인식과 알음알이를 가진 이 한 길 몸뚱이에서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본다ꡓ고 하시지 않았는가? 현실에 사무칠때 본질의 문제는 더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