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옮기기 58회(09.4.25)
그런 대자연 앞에 서게 될때, 사람이란 번거로운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무엇인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쉬운 법이거니와, 그 날의 왕과 왕비의 대화에도 분명히 그런 점이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잠시 조망을 즐기고 있던 왕이 갑자기 생각한 것은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경전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자세한 경위에 대해 별로 말하고 있지 않으나 ,왕의 생각은 대게 이런 경로를 더듬지 않았나 추측된다.
저 히말라야의 연봉은 참으로 장관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가령 너는 히말라야를 보면서 하루를 살겠느냐, 아니면 히말라야가 없는 곳에서 백년을 살겠느냐고 할 때 어느 누가 전자를 택하겠는가. 아니 한 끼의 밥과도 안바꾸려고 할지도 모른다. 또 눈앞에 펼쳐지는 이 코사라의 평원! 그것은 얼른 보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이 나라의 왕이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자기야말로 히말라야나 코사라평원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권세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그러기에 나라는 존재가 나에게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저 땀을 흘려 일하는 농부나 상인들은 어떨까? 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여야 한다. 그들은 자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까? 자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도 역시 자기를 더 없이 소중하다고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느냐고 할 때, 역시 무엇보다도 자기의 몸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왕은 마침내 옆에 있는 왕비를 바라보았다.
"중전, 그대에게는 자기 자신 보다도 더 소중한 것, 사랑스러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뜻하지 않은 질문에 좀 놀랐지만 마리카는 잠시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저에게는 저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는 듯 생각합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어떠십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묻는 말이오."
왕도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하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동의하였다. 이런 그들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보아야 하겠다. 저 고대의 왕과 왕비의 대화가 이런 결론을 이끌어 냈다는 것은 매우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여야 될지는 모른다. 이 결론은 현대의 우리에게까지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에고(자아)의 진상이 있으며, 이 에고이즘(자아중심)을 무시한 사상이란 결국 인간관계의 원리로서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말것이다. 그런데 왕과 왕비는 그들의 결론에 대해 약간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붓다가 평소에 그들에게 가르친 것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세나디왕은 급히 마차를 달려 기원정사로 붓다를 찾아 갔다. 무엇인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붓다에게 묻는 것이 이 왕의 버릇이었다.
급히 달려온 왕이 이야기 하는 것을 흥미있게 듣고 난 붓다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들이 도달한 결론을 그대로 긍정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설해준 게가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일절의 운문이다.
그 내용은 그들의 결론을 일단 인정하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을 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거니와 구태여 해설을 붙이자면 대게 이런 뜻이 될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참으로 자유자재한 것이어서 어디라도 달려 갈 수가 있다. 여기 앉은 채 멀리 유럽이나 미국으로 날아갈 수도 있겠고 달이니 금성이니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있다.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고, 제왕의 영화를 부러워 하는 것도 생각의 작용이다. 그러나 생각이 어디로 달리든 간에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이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우리가 이리저리 생각을 달리어 많은 재물과 재왕같은 권력을 꿈꾸는 것도 결국은 자기라는 존재가 더 없이 소중한 까닭이다. 자기가 소중한 까닭에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더 큰 권력과 명예를 획득함으로써 자기를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그 왕이나 왕비보다도 더 명확하게 그 사실을 긍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그 게의 후반에서 설명하였다.
그와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어쩌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리라. 사실 누구라도 마음 속에서 생각할 수 잇는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매우 슬펐던 어떤 체험을 통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의 심전을 공감해 줄 수 있다. 공감뿐 아니라 함께 울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다소간 누구에게나 있기에 동변상련이라는 말도 잇지 않은가.
이제 파세나디왕과 그 왕비가 자기처럼 소중한 것은 다시 없다고 생각한 데 대해 붓다는 그것은 그렇다고 인정해 주고 나서 그런 생각을 남에게까지 확장시키라고
충고했다. 이것은 사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원래 그런 능력이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