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향 2009. 4. 27. 10:41

거기에서 아힘사(ahimsa) 즉 불해의 덕목이 생겨나는 것이며, 자비의 덕목이 생겨나는 것이다. 왕에게 다른 사람을 해래서는 안된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아힘사(불해)의 덕목을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아힘사는  '불해'라고 번역된다. 또는 '불살생' 이니 '불상해'라고도 번역되는 수가 있다. 그 원어 역시 "해한다."또는 "죽인다."의 뜻인 himsa에 a라는 부정사가 붙은 말이다. 그러기에 아마도 이 덕목을 어딘지 소극적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전에 이 말로부터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은 큰 오류임을 누구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도리어 모든 덕목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불해임을 알게 될 줄 믿는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껏 누누히 말해 온 바와같이 이 덕목은 자타의 입장을 이성에 의해 조화시킬 때 생겨난다. 내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남들도 저마다 자기가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덕목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람마다 자기에게 가장 요망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을 드날리고도 싶으리라.

생활이 풍족했으면 하는 욕망도 있으리라.

또 자기와 가족의 건강도 당연히 바라리라. 그러나 그 어느 소원도 자기의 생존과는 바꾸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살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이요 가장 강렬한 소망이며,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인간 최대의 비원임이 분명하다. 이런 자기의 비원을 남에게까지 확장시킨것, 그것이 아힘사의 정신이다. 거기에서 사랑과 자비도 생겨나는 것이며, 평화와 번영도 그 위에 구축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 핵무기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도 이 이성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8) 자비 (慈悲) 깨달음의 의미

 

 

 

 

가르침의 도리를 잘 이해한 사람이

자유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 할 일은 이것이니,

유능, 솔직하고 그리고 단정할 것, 좋은 말을 하고 유화하고 거만하지 않을 것.

 

족한 것을 알고 과욕(과욕)할 것,

잡스러운 일에 매이지 않고 간소하게 살아갈 것,

오근(다섯가지 감각기관. 눈,귀,코,혀,피부)이 청정하여 총명, 겸허할 것,

단월(단월;시주. 즉 보시를 하는 사람)의 집에 가서 탐심을 내지 말 것.

 

더러운 짓을 하여 식자의 비난을 사지 말라.

오직 이런 자비심을 닦을지니,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과 평화와 은혜있으라고.

 

비록 어떤 사람이거나

두려움에 떠는 범부거나, 깨달아서 두려움 없는 성자거나

키 큰 사람이거나, 그 몸이 비대한 사람이거나

중간쯤 되는 사람이거나, 작은 사람이거나, 말하기에도 부족한 사람이거나

 

눈에 보이는 사람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이거나

멀리 있는 사람이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거나

이미 태어난 사람이거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이거나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있으라고.

 

서로 남을 속이지 말며

어디의 누구에게라도 경멸하는 생각을 지니지 말라

분하다든지 또는 미웁다 하여

남이 고통에 빠질 것을 원하지 말라

 

마치 어머니가 그 외아들을

자기 목숨을 걸어 지켜 가는 것처럼

일체의 생명 또는 사람에게

끝없는 자비심을 베풀라.

 

참으로 일체의 세간 위에 그 마음을 베풀라.

높은 데 깊은 데 또 사방에 걸쳐

원한 없는 적의 없는 그 생각을 쏟아라.

 

설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을 때나 누울 때나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은 한

힘을 다헤 이 생각을 지니라.

이에 '성스러운 경지'라 함은 이것이니라.

                                                                                                          ([소부경전] 경집 1:8 慈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