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다왕문경-귀경게---2
밀린다왕문경-귀경게(歸敬偈)
귀 경 게(歸敬偈)
최상의 법에 귀의합니다.
그 행위가 모든 세간에
이익을 주는 위대한 성자,
부사의(不思議)한 힘을 지닌
최상의 도사(導師)에게 귀의합니다.
그 행이 구족하면서도
출가하여 무상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가 공경하는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그리스왕 밀란다(Milinda)와 학승 나가세나(Nagasena) 사이에 오고간 대화를 엮은 불교 경전이다. 이 경전은 밀란다왕이 질문하고 나가세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경전 뒷부분에 밀란다왕이 304개의 질문을 하였다고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236개의 질문이 실려 있다. 영혼론과 윤회ㆍ선악ㆍ업보 등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지식론, 심리현상 고찰, 해탈과 열반에 대한 실천 방법 등 불교의 전반적인 문제까지 다루었다. 일반 경전이 출가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이 경전은 재가자도 출가자와 똑같이 궁극적인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점이 특이하다.
부처의 말이 아니므로 스리랑카에서는 팔리삼장에 포함시키지 않으나 미얀마 불교에서는 경장의 소부경전 속에 수록해 중요시한다. 한역본으로 《나선비구경》이 있고, 이본(異本)으로 스리랑카본과 트랜크너본·샴본이 전한다. BC 150년경의 그리스인과 인도인의 사유를 대비하여 동서양의 가치관과 종교관을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현대인과 미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의 해제
대론서(對論書)
이 경전은 파알리어(巴利語) 성전에 속한다. 성전이라 하면 경(經)으로 생각되는데 이 성전은 경이 아니라 대론서이다. 한역(漢譯)의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은 파알리어 본(巴利語 本)의 아주 오래된 것과 거의 일치하는데, 그 제명(題名)이 경(經)으로 된 것은 한문으로 번역한 역자가 불교에 관한 것이므로 붙였을 것이다.
스리랑카 불교에서는 이 미린다ㆍ팡하를 장외전적(藏外典籍)으로 취급하고 있다. 장외라는 것은 경(經)ㆍ율(律)ㆍ론(論)의 三장에 들어가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나, 버어마 불교에서는 경장(經藏)의 소부경전(小部經典) 속에 수록했으며, 대단히 존중되고 있다. 이같이 미린다ㆍ팡하가 三장 중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간에 성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성전은 서기전 150년 경, 서북 인도를 지배한 그리이스 왕 메난드로스(인도명은 미린다)와 불교경전에 정통한 학승 나아가세나(那先) 사이에 오고 간 대론서라는 점에서 당시의 동서사회의 가치관이나 종교관을 비교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뺄 수 없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그리이스 왕 메난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한 정복자로서가 아니라, 당시 유럽을 석권한 그리이스의 지성을 대표한 지성인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동과 서의 예지가 역사상 처음으로 교류한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대인을 위한 불교 입문서
{미린다왕문경}은 다른 불교 경전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그것은 불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고, 더구나 인도 문화권과는 전혀 다른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자란 그리이스 왕이 불교학승(學僧)을 향해 예리한 질문을 되풀이 하며, 불교를 이해햐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그리이스인의 왕 메난드로스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 노력은 흔히『불교는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쩐지 불교를 알고 싶어하고 불교의 본질을 파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의 불교 교단(佛敎敎團)을 보면, 여러 점에서 우리들의 생활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자진해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불교인들에게서 구해도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이 실제 현상이다 』라고 하는 말을 근래에 자주 듣는 일과는 대조적이다. 꼭 같은 현상이 이미 서기전 2세기 후반 그리이스인 메난드로스 왕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미린다왕문경}을 읽어 가면 질문의 하나 하나가 조금도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지금 자기가 질문 하여 의문을 풀고 싶다고 생각한 문제들이 바로 그리이스인 왕에 의해 던져지고 있다. 그래서, 나아가세나 장로의 해답도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방식은 인도 일반의 특색이지만, 유식한 학승이 알기 어려운 불교 교리를 아주 쉽게 해명하려고 하는 자세에 호감이 간다. 다만 2천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나아가세나의 해답에 초자연적인 비유도 있고, 또 우리들의 지성으로 수긍할 수 없는 설명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 핵심적인 상이점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왕자론(王者論)과 현자론(賢者論)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장로와 대론함에 있어 현자론에 근거하는 입장을 지켰다. 여기에서는 불교가 그리이스인에게도 개방된 종교였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도는 계급 제도를 고수하는 나라이므로, 외국인은 모두 오랑캐로 취급되어 아우트ㆍ카아스트(印度四姓階級外의 階級)에 속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현재까지도 그렇다.
따라서 외국인인 그리이스인은 종교나 종교관이 다르다고 해서, 인도인으로부터 천민 계급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오랑캐로 취급받는 그리이스인이 인도 사회와 문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바라문교 이외의 종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때,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종교이므로 그리이스인에게는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불교 교조인 부처님부터가 계급 제도를 타파할 것을 말했다. 사성계급1)(四姓階級)을 타파하고 모든 사람이 혈통이나 출신에 의해 귀하고 천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만민은 평등하며, 각자의 행위가 귀하고 천함의 기준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불교가 그리스인에게 합리적인 가르침으로 환영 받았으리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이스인 뿐 아니라, 그 뒤 인도에 침입한 여러 민족 가운데는 불교를 보호하고 불교신자가 된 예가 많다.
미린다 왕과 나아가세나 장로 사이에 대론의 근거를 고찰함에 있어 이 같은 사회적ㆍ문화적 상황과 교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메난드로스 왕은 제왕의 덕과 위엄을 가지고 통치에 임했던 것 같다. 그는 자기 스스로 정의 수호하는 왕임을 표방하고 있었다. 푸르탈코스가 쓴 그의 전기에 의하면『그는 정의의 통치자였고, 백성들 사이에 신망이 대단히 두터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죽었을 때, 유골을 여러 곳으로 나누어 갔고, 또 그를 기념하는 탑을 세웠다고 한다. 미린다 왕이 제왕의 위엄을 가지고 통치에 임했다 함은,『미린다왕문경』첫 편에 그것을 입증하는 문답이 있다. 이 문답은 대화를 성립시키는 기반을 밝혀 준다.
"대왕이여, 만일 그대가 현자로서 대론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왕자로서 대론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대론의 입장을 밝혔다. 결국 정치적 압력이나 제왕의 위엄을 가지고 문답한다면, 자기는 대론에 응하지 않겠다고 나아가세나 장로는 거절한다. 장로는 언론의 자유와 진리 탐구의 기치를 들어 양자가 대등하게 대론하는 현자(賢者)의 자세를 제시하고, 이 현자의 자세에 대론의 기반이 있다고 못박은 것이다.
다른 불교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활 사실
미린다 왕은 불교 교단이나 교리에 관하여 자기가 의문으로 삼고 있는 점을 솔직하게 물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대론이 있다. 불교의 출가자는 고행자(苦行者)라고 왕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은 잘못이다. 부처님은 고행주의(苦行主義)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 출가자들의 풍채(風彩)를 보면 인도 일반의 종교적 관습에 따르고 있었으므로, 그리이스인 왕의 눈에도 출가자라면 불교 뿐 아니라 어느 종교의 출가자도 고행자로 보였을 것이다.
불교의 출가자는 고행자가 아니고 두타행2)(頭陀行)을 지킨다. 그들은 부처님 이래 나무 밑에서 명상한다든가, 탁발로 얻은 음식만을 먹는다든가 하는 열 두 가지 두타행을 엄수(嚴守)한다. 이 두타행은 고행에 가까운 실천법이었다. 이 같은 출가자의 생활은 인도 종교의 어느 출가자에 있어서도 실행되고 있었으므로, 그리이스인 왕 쪽에서 보면 불교의 두타행자는 고행자로 보였을 것이다.
미린다 왕은 또『불교의 출가자는 고행을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지만, 한편 고행을 실천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은 재가신자(在家信者)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출가자가 되어 고행을 실천할 필요가 있겠는가』고 급소를 찔렀다. 이런 점에서 그리이스인 메난드로스 왕은 당시의 불교 교단이나 불교도의 생활을 관찰해서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인도 불교에 대한 그리이스인의 이 같은 관찰은, 다른 불교 문헌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다.
또 당시의 출가자의 생활 실태를 구체적으로 말한 문헌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불교 교단에서 출가(出家)와 재가(在家)의 실정은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펴는 사람은 출가자 뿐이고, 재가신자는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깨달음을 펴지 않더라도 사후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도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 시대로 들어오면 재가신자도 부처와 똑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승불교 이전에 재가 신자들은 어떠한 생활을 했으며, 어떠한 이상(理想)을 가지고 그 이상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었는지, 다른 경전상에는 별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이같이 감추어진 사항이 이『미린다왕문경』에 드러나 있다.
저작(著作)의 시기와 대승불교의 흥기(興起)
어떤 학자는 서기전 150년의 두 사람의 문답이므로 그 당시는 기록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문헌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 전후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단 관계의 일반 지식인들은 그 두 사람의 문답을 기억 속에 간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기억은 희미해지므로, 기록에 남겨 놓으려고 한 것은 백 년이 훨씬 지난 때가 된다. 그렇다면 기원전 50년 경이 된다. 그리이스인이 인도로부터 자취를 감춘 것은 서기전 80년에서 기원에 이르는 사이이다. 그리이스 문화가 실제로 인도에 꽃을 피운 것은 백 년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이스 풍의 불교미술, 소위 간다라 미술이 나온 것은 서기 전후 경부터이다. 대게 그러한 풍조(風潮)속에서『미린다왕문경』이 쓰여졌음에 틀림 없다.
또 어떤 학자는, 처음에는 그리이스 식민지인 서북 인도에서 엮어지고, 그것이 동쪽 마가다 지방으로 전해져 파알리어로 쓰여진 다음, 다시 깍이고 더해져서 스리랑카에 전해지고, 곧 버어마와 타이 등으로 전해졌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학자는, 이 성전의 오래된 부분은 혼합산스크리트(混合梵語)3)로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성립을 서기전 1세기 내지 서기후 1세기로 잡고 있다. 서기를 전후한 때는 곧 대승불교가 흥기(興起)한 시대이다. 이 시대는 고고학적 유품(考古學的遺品)ㆍ미술품ㆍ비명(碑銘)ㆍ그 밖의 문헌을 근거로 구명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또 이 시대의 전통 불교의 여러 파에 대한 연구도 복잡한 점이 아주 많다. 이러한 사정에서 볼 때, 이『미린다왕문경』은 유력한 근거 문헌으로 당시의 여러 가지 양상을 잘 밝혀준다고 하겠다.
대승불교가 일어났다고 하여 전통적 보수적 불교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인도 안에 공존(共存)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시기의 전통 불교의 여러 교파의 사정과 교단 계율들이 『미린다왕문경』을 통해서 분명해졌다. 따라서 초기 대승불교와 전통 불교사이에 가로 놓였던 문제가 어떤 것인가를 아는 데에도 이 경은 도움을 준다.
이 경의 특색
본서의 특색을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교단의 소원을 알아볼 수 있는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지적하고 싶다.
첫때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불교교단을 어떻게 지켜 후세에 전하며, 그럼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길이 전할 것인가가 중대한 문제였으며, 이에 대한 소원이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이 경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역사적 실재 인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배푼 부처님이 기원 전후의 시대에 와서는 손이 닿지 않는 절대자로 신격화(神格化)된 존재가 되었다. 신격화되고 절대화된 부처님에게 귀의해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교단을 지켜 나가려는 것이었으므로, 굳은 신념과 결의(決意)가 없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출가자의 지위가 강조된다. 그리하여 출가자 우위의 관념이{미린다왕문경}을 일관하고 있다. 출가자 우위를 강조하면서도 출가자에 대하여 출가자로서의 자각을 재촉하고, 교단을 지키는 재가신자에 대해서는 출가자를 보호하여 실천 수행을 도우면서 그들도 출가자와 동일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출가자 우위라 하여 출가자만이 위대하며, 또 깨달음의 경지에도 출가자만이 이를 수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교단을 지킨다는 것은, 부처님의 교법대로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출가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출가자를 그 같은 우위에 있게 하는 지지자들은 재가 불교신자들이며, 그 신자들은 출가자와 동일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요컨대 출가자는 출가자로서 생활하고, 재가신자는 재가신자로서의 일상 생활을 하면서, 똑 같은 궁극의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미린다왕문경』은 가르친다.
그런데, 대개 경전은 출가자만을 위하여 말하고 재가신자는 출가자에게 보시(布施)하고 예배 공양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성전은 출가자 우위를 표면에 내세우지만 재가신자도 출가 수행자와 같이 궁극의 목적에 이를 수 이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구별하지 않고 있다. 또 이 성전은 상좌부4)(上座部) 불교 교파가 부처님의 입멸 후 어떻게 불교 교단을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인가 하는, 높은 이념과 비원(悲願)을 들고 있다.
둘째는 당시 불교 교단 안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던 중요한 교리들, 이를테면 심리론(心理論), 선악업보론(善惡業報論), 윤회론(輪廻論), 해탈ㆍ열반론(解脫ㆍ涅槃論), 수도론(修道論), 아라한론(阿羅漢論), 불신론(佛身論), 재가자론(在家者論)등이 이 성전에 모두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성전을 통하여 서기 전후의 불교교단의 교리 해석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전불교(北傳佛敎)의 아비달마5)(阿毘達磨)등 논서에서는 심리론이나 수도론 같은 교리가 아주 난해하게 풀이되어서 초보자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물론 그 논서(論書)가 어려운 한문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성전의 대론에서는 날카로운 질문과 간명한 해답에 의해 아주 선명하게 문제점이 해명되어 진다. 현대의 우리들에게는 아비달마의 난잡한 논서를 읽기보다 미린다왕과 나아가세나 장로의 대화를 읽는 편이 불교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우리들의 의문을 소중히 하자
우리는 어릴적부터 서구적인 교양을 몸에 익혀 왔으므로, 그리이스인 왕의 질문이 실은 우리들 자신의 질문인 것처럼 느껴지는 점이 많다. 가령 부처님은 아라한6)의 깨달음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 일반 수행자도 부처님과 똑 같은 깨달음을 얻으면 아라한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아라한이라든가 부처님은 심신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궁극의 경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범인(凡人)들처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상해(傷害)에 의한 고통은 없느냐고 미린다 왕은 솔직하게 질문하고 있다.
이는 우리들도 질문하고 싶은 문제이다. 신격화되고 절대화된 부처님에 대하여 그리이스인 왕은 "부처님도 원래는 인간이 아닌가"하는 의식에서, 당시 교단이 품고 있는 불타관(佛陀觀)에 예리한 메스를 가하여 의문점을 해명하려고 한 것이다. 나아가세나 장로는 왕의 질문에 대해 당시 교단이 하는 정통적 해석과 설명으로 답변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했으므로 미린다 왕이 이해할 수 있는 해답을 고안하기 위해 아주 고심한다 우리는 장로가 고심하는 모습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불교인들은 일반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도 고심할 줄 모른다. 고심은 커녕 도리어 빠져 나갈 길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그런 것은 경전에 없다』는 식으로 피해버린다. 실은 그들의 소박한 질문이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불교인들은 상대방의 질문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와 함께 해답해 가는 나아가세나 존자와 같은 그러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여기 불교의 실천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큰 스님들은 모두 그렇게 노력해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인들은 선인이 남긴 문헌에만 의지할 뿐 자기 자신의 해답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역시 불교는 그 시대의 산 현실(現實)에 대한 해답을 항상 지녀야 한다. 그 문제와 해답들이 총집되면 불교 문헌이 되어 불교를 새로운 시대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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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성계급(四姓階級) : 인도의 사성제(四姓制)계급. (1), 브라흐마나는 승려계급. (2), 크샤트리야는 무사ㆍ왕족. (3), 바이샤는 평민. (4), 수드라는 노예계급.
2) 두타행(頭陀行) : 번뇌를 없애고 의식주(衣食住)에 집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 흔히는 수행을 뜻한다.
3) 혼합산스크리트(混合梵語) : 산스크리트 문법을 집대성한 사람은 파니니panini로서, 그 시기는 AD 4세기 경이다. 그 이전에는 체계적으로 쓰여진 문법이 없었기 때문에 구어체(口語體)였고, 그것을 총칭하여 혼합 산스크리트라고 한다.
4) 상좌부(上座部) :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교단 내에 형성된 보수파(保守派)의 일파.
5) 아비달마(阿毘達磨) : 경ㆍ율(經ㆍ律)에 관한 주석서(註釋書)로서 논부(論部)를 총칭하는 말.
6) 아라한 : 아라한(阿羅漢)은 소승불교의 성자(聖者)이며, 이 아라한은 공양을 받음에 마땅하고 다시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응공(應供), 또는 불생(不生)으로 한역(漢譯)한다. 소승 사과(四果) 중의 가장 높은 위(位).
계율행의 공덕을 갖추고
네 가지 과위(果位)에 이르며
무상의 복전(福田)이 되는
성스러운 승가(僧伽)에 귀의합니다.
이 세 가지 보배에
귀의하므로 복이 생기고
그 위력에 의하여
모든 장애는 끊어졌습니다.
미린다 경은 물음과 대답으로 이루어졌나니,
이 경은-그대들에게-복을 주리니
이 오묘한 물음에 귀를 기울이라.
미린다 왕문경(미린다팡아)
Ⅰ. 서장
- 종교적 주제가 아닌 세속적 설화 -
옛날 유명한 수도 사아가라의 미란다 왕은 세계에서 저명한 현인 나아가세나에게로 갔다. 마치 갠지스 강이 보다 깊은 바다로 흘러 들어 가듯이. 담론에 솜씨 있는 왕은 진리의 횃불을 들고 마음의 어두움을 쫓아버린 나아가세나에게 -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 여러 가지 점에 대하여 미묘하고 어려운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주어진 해답은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구를 즐겁게 하며 신기하고 오묘함을 느끼게 했다. 나아가세나의 담론은 수우트라경의 모든 그물코를 이루고 비유와 논증으로 강하게 반짝이며, 비나야와 아비달마의 신비한 심연에까지 스며 들었다. 오라, 그대들이여, 와서, 그대의 머리를 빛나게 하고 그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고 모든 의심의 실마리를 풀어 주는 이들 미묘한 질문과 대답에 귀를 기울이라.
1. 그리스인의 도시
전설에 의하면, 요나카 인 나라에 여러 가지 물건을 교역하는 중심지 사아가라 도시가 있었다. 산수가 수려한 아름다운 지방이었다. 도시에는 공원과 정원과 작은 숲과 호수와 연못이 갖추어 있었고, 산수와 숲이 아름다운 낙원을 이루었다. 솜씨 있는 기술자가 설계한 도시라 한다. 그리고, 모든 적과 반역자들이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 곳 사람들은 위험이라곤 전혀 모르고 살았다. 여러 모양의 튼튼한 망탑과 성벽이 있고, 우뚝 솟은 성문과 탑문이 있었다. 한가운데에 흰 성벽과 깊은 참호로 둘러싸인 국왕의 성채가 보였다. 거리와 광장과 십자로와 장터가 잘 나뉘어져 있고, 상점에는 값비싼 많은 상품이 수북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또 수백 개의 보시당도 화사하게 꾸며져 잇고, 수많은 커다란 저택이 히말라야 산봉우리처럼 늘어서 있었다. 거리는 코끼리와 말과 마차와 보행자들로 붐볐으며, 상냥한 남녀들이 짝을 지어 빈번히 출입하곤 했다. 온갖 신분의 사람들, 즉 크샤트리야와 바라문과 바이샤와 수우드라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모든 종족의 스승-수행자와 바라문-을 환대했다.
그리고 도시에는 여러 학파의 지도자들이 많이 왕래했다. 상점에는 카아시이와 코톰바라에서 짜낸 옷감과 갖가지 의류로 가득했다. 보시당에서는 향내가 흘러나오고, 온갖 종류의 꽃과 향의 그윽한 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많은 재보가 가득 차 있고, 화려한 상품을 진열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도시는 금. 은. 구리. 보석으로 가득 차 있어 눈부신 보물의 나라와도 같았다. 곡식과 재산과 일용의 물자가 창고에 가득했다. 부유하기로는 울타라쿠루 - 수미산의 북쪽에 있다는 이상향 - 에 비길 만하고 영광스럽기로는 미사문천의 수도인 알라카만다를 닮았다. 지금까지 사아가라 지방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제 우리는 두 사람, 즉 미린다 왕과 나아가세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이야기 할까 한다. ① 그 글의 전생이야기 ② 미린다 왕의 난문 ③ 특징에 관한 질문 ④ 반론에서 생기는 난제 ⑤ 추리에서 생기는 난제 ⑥ 비유에 관한 논의 등이다. 이 가운데 미린다 왕의 난문은 특징에 관한 질문과 의문을 없애기 위한 문제의 두 가지로 되어 있고, 반론에서 생기는 난제는 긴 대목과 수행론자에 대한 두 가지로 되어 있다.
2. 전생이야기
옛날 카아샤파부처가 불법을 펴고 계실 때, 갠지스 강 근방에 많은 비구들이 살고 있었다. 계율과 본분을 잘 지키는 비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긴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외우며 경내의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였다. 쓰레기가 모여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날, 한 비구가 사미에게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비구는 그를 아주 고집 센 풋내기로 알고 화를 내며 빗자루로 때렸다. 사미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울면서 그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사미는 최초의 발원을 세웠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한낮의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갠지스 강가로 목욕하러 나갔다.
거기서 그는 강물이 세차게 물결 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갠지스 강 물결이 파도 치는 것처럼 척척 대답하는 말재주와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주십시오.” 라고. 그런데 비구도 빗자루를 헛간에다 치워 놓고 목욕하러 갠지스 강가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그 풋내기 사미가 발원하는 소를 듣게 되었다. 그 때 그는 마음속으로 ‘사미도 저렇게 발원을 하는데, 나라고 어찌 발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어디에 태어나든지 갠지스 강의 세찬 파도와 같이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시고, 저 사미가 묻는 하나 하나의 질문과 난제를 환하게 풀어 줄 수 잇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십시요!” 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각기 천상과 인간계를 윤회하면서, 한 부처의 출현에서 다음 부처의 출현까지의 기간을 지냈다. 그런데, 카아샤파 부처에 의하여 이들의 미래는 다음과 같이 예언 되었다. “내가 죽은 오백 년 뒤, 두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오묘한 진리와 계율은 두 사람의 문답과 비유의 적용으로 풀기 어려운 실마리가 풀리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고. 뒷날 이 두 사람은 예언대로 각기 왕과 비구로 태어났다.
3. 해후
오랜 뒤의 어느 날, 미란다 왕은 사군으로 조직된 무수한 병력을 시외에서 사열했다. 사열을 끝낸 뒤 쾌락론자, 궤변론자들과 토론하기를 바란 왕은, 높이 솟은 해를 쳐다보고 나서 시신들에게 말했다. “날은 아직 훤하다. 이처럼 일찍 시내에 들어간들 무엇하겠는가. 현자든 수행자든 바라문이든 또는 교단이나 학파의 지도자든, 대중의 도사이든 - 심지어 부처라든가 정등각자라고 지칭하는 사람까지도 - 누구든 나와 토론하여 나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없을까.” 이 무렵 수많은 아라한들이 히말라야 산록의 랏기다라에 모여 나아가세나 존자를 만나고자 하였다. 아라한들의 만나고자 하는 전갈을 받은 나아가세나 존자는 아라한들 앞에 나타났다. 수 많은 아라한들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미린다 왕은 어려운 문제와 반대론을 가지고 질문하여 비구 대중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 미린다 왕을 굴복시켜 주십시요.” “존자들이여, 미린다 왕 뿐 아니라 전인도의 왕들이 나에게 와서 질문하더라도 나는 모든 난문에 대답하여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대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사아가라 시로 가십시오.”
그래서, 장로와 비구들은 사아가라로 돌아 갔다. 한편, 한 바라문을 난문으로 물리친 미린다 왕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정말 전인도는 빈 껍질이다. 정말 왕겨와 같다. 대론하여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출가자나 바라문은 한 사람도 없구나.” 그러나, 미린다 왕은 주위의 요나카 군중들이 아무 두려움 없이 침착해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아니다. 이 요타카 군중들이 조용히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나와 대론할 수 있는 박식한 비구가 있을 거야.” 그래서 미린다 왕은 요나카 인들에게 물었다. “신하들이여, 나와 대론하고 나의 의심을 없애 줄 수 있는 다른 박식한 비구가 있는가.” 이 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을 거느리고 촌락, 읍, 도시를 탁발하여 돌아다니면서 점차 사아가라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승단의 지도자요, 가나의 우두머리였다. 그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았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또 현자요, 학자이며, 지혜가 있고, 총명하고, 박식하고, 교양 있고, 자신 있는 수도승이었다.
미란다 왕의 신하 데바만티야는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아가세나라는 장로가 오고 있습니다. 그 분은 박식하여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용기 있고, 다문하며, 담론에 뛰어나고, 말솜씨가 시원시원합니다. 부처님의 정신과 가르침을 해설함에 있어서나 이단자를 굴복시킴에 걸림이 없고, 자재한 능력을 가진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분은 지금 상케이야 승방에 살고 계십니다. 대왕이여, 그 곳에 가서 그 분에게 질문을 해 보십시오. 그 분은 대왕과 대론하여 대왕의 의문을 풀어 줄 수 있을 줄로 압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에 대한 소개 말을 듣자, 갑자기 두렵고 불안하여 머리 끝이 오싹했다. 그리고 그는 데바만티야에게 다구쳐 물었다. “정말 그러한가.” “대왕이여, 그 분은 인드라, 마야, 바루나, 쿠베라, 푸라쟈, 아파티, 수야아마, 상투시타 등의 수호신들과, 또 사람의 조상인 부라흐마아와도 대론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과의 대론이겠습니까.” “그러면 데바만티야, 그 분에게 내가 찾아 뵈러 간다는 전갈을 보내라.” 데바만티야는 왕의 분부대로 전갈을 보냈다. 그리고 나아가세나 존자는 와도 좋다는 회답을 했다. 왕은 오백 명의 요나카 인을 이끌고 훌륭한 수레에 올라 거대한 수행원들과 함께 나아가세나 존자가 있는 상케이야 승방으로 갔다. 그 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8만 명의 비구들과 함께 뜰 안 정자에 앉아 있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와 거기 모인 무리를 멀리서 보고, 데바만티야에게 물었다. “데바만티야, 저 큰 모임은 누구의 회상인가?” “대왕이여, 나아가세나 존자의 회상입니다.” 그 때, 미린다 왕은 그 대회 중을 멀리 바라보자, 다시 두렵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미린다 왕은 마치 코뿔소에게 포위 당한 코끼리와 같이, 가루라새에게 포위 당한 용과 같이, 뱀을 만난 악마와 같이,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하다가 공포의 괴로움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만은 피해야겠다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용기를 내어 데바만티야에게 말했다. “데바만티야, 나에게 어느 분이 나아가세나 존자인가를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 일러 주지 않아도 나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알아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틀림없이 그를 알아보실 것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비구들 가운데서 앞쪽에 앉은 4만명의 비구보다 젊고, 뒤쪽에 앉은 4만 명의 비구보다 연장이었다. 미린다 왕은 멀리서 앞 자리와 뒷자리와 중앙에 앉은 모든 비구의 무리를 둘러보고, 나아가세나 존자가 바로 중앙에 앉아 있음을 알았다. 왕은 두려움이나 놀람이 없고, 공포와 전율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고, 그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임을 알아 차렸다. 왕은 데바만티야에게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저 분이 바로 나아가세나 존자입니다. 대왕께서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잘 알아 보셨습니다.” 왕은 남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슷로 나아가세나 존자를 알아 보았음을 기뻐했다. 그러나,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자마자, 두렵고 얼떨떨하고 또 불안해졌다. 이때의 정경을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현명하고 청정하며,
가장 훌륭하고 유감없이 자신을 잘 다스리는
나아가세나 존자를 보고,
마린다 왕은 이렇게 말했도다.
많은 논사를 만났고,
많은 대론을 해 보았으나
오늘처럼 놀람과 두려움으로
마음을 압도당한 일은 결코 없었다.
아마도 오늘은 내가 패배하고,
승리는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갈 것이다.
내 마음은 몹시 불안하도다.
Ⅱ. 대론
[1 장]
1. 이름에 관한 문답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공손히 예배 드린 다음, 다정하고 정중하게 인사말을 나누고, 예의 바르게 한 편에 비켜 앉았다. 나아가세나 존자도 답례로서 왕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을 시작했다. “존자는 어떻게 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대왕이여, 나는 나아가세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 수행자들은 나를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나에게 나아가세나, 수우라세나, 비이라세나, 시잉하세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아가세나라는 이름은 명칭, 호칭, 가명, 통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격적 개체 - 즉 육체속에 있는 영원 불변한 것 - 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 미린다 왕은 5백 명의 요나카 인과 8만 명의 비구에게 말했다. “나아가세나 존자는 ‘이름 속에 내포된 인격적 개체는 인정할 수 없다.’ 고 말합니다. 지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 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만일 인격적 개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대에게 의복과 음식과 침대와 질병에 쓰는 약물 등 필수품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계행을 지키는 자, 수행에 힘쓰는 자, 수도한 결과 열반에 이르는 자, 살생을 하는 자, 님의 것을 훔치는 자,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자, 술을 마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또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역 죄를 짓는 자는 누구입니까. 만일, 인격적 개체가 없다고 한다면 공도 죄도 없으며, 선행과 악행의 과보도 없을 것 입니다.
존자여, 설령 그대를 죽이는 자가 있더라도 살생의 죄는 없을 것 입니다. 따라서 그대의 승단에는 스승도, 계를 가르치고 전해주는 스승도, 비구의 계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대는 말하기를 ‘승단의 수행 비구들은 나를 나아가세나라 부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아가세나라고 불리우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존자여, 머리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대왕이여,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몸에 붙은 털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손톱, 살갗, 살, 힘줄, 뼈, 뼛골, 콩팥, 염통, 간장, 늑막, 지라, 폐, 창자, 창자 막, 위, 똥, 담즙, 담, 고름, 피, 땀, 굳은 기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 속의 액체, 오줌, 뇌들 중, 그 어느 것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이들 전부가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그 어느 것도, 그것을 전부도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존자여, 물질적인 형태나, 느끼는 작용이나, 표상의 작용이나, 형성하는 작용이나, 식별하는 작용이 나아가세나입니까.” 존자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렇다면, 이들 색.수.상.행.식을 모두 합친 것이 나아가세나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대왕.” “그러면 오온을 제외한 어떤 것이 나아가세나입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여전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존자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물어보았으나, 나아가세나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나아가세나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나아가세나는 어떤 자입니까. 존자여, 그대는 ‘나아가세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하였습니다.” 그 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미린다 왕에게 반문했다. “대왕이여, 그대는 귀족 출신으로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만일 그대가 한낮 더위에 맨발로 뜨거운 땅이나 모래벌을 밟고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걸어 왔다면 발을 상했을 것입니다.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산란하여 온 몸에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도대체 그대는 걸어서 왔습니까. 아니면 탈 것으로 왔습니까.” “존자여, 나는 걸어서 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미린다 왕이여, 그대가 수레를 타고 왔다면 무엇이 수레인가를 설명해주십시오. 수레의 채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굴대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퀴나, 차체나, 차 틀이나, 멍에나 밧줄이나 바퀴살이나 채찍이 수레입니까.” 왕은 이들 모두를 아니라고 대답했다.
“대왕이여, 나는 그대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다 물어보았으나 수레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수레란 단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타고 왔다는 수레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대는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씀한 셈이 됩니다. 그대는 전 인도에서 제일가는 임금님입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을 말씀했습니까.” 이렇게 물은 다음, 나아가세나 존자는 5백 명의 요나카인과 8만 명의 비구들에게 말했다. “미란다 왕은 여기까지 수레로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수레인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이것이 수레이다 라고 단정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대들은 대왕의 말씀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5백 명 요나카 인은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그래서 미린다 왕은 존자에게 다시 말했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이들 모든 것, 즉 수레 채, 굴대, 바퀴, 치제, 차틀, 밧줄, 멍에, 바퀴살, 채찍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반연하여<수레>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수레>라는 이름을 바로 파악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나에게 질문 한 모든 것, 즉 인체가 만들어 내는 서른 세가지 물질과 존재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반연하여 <나아가세나>라는 명칭이나 통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바지라 비구니는 세존 앞에서 이 같은 시구를 읊은 일이 있습니다.”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 요소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라는 이름도 생기노라. “훌륭하십니다. 존자여, 정말 희귀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한 질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훌륭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그대의 대답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잘 말씀하였습니다. 존자여, 정말 잘 말씀하였습니다.”
2. 나이에 관한 문답
“존자여, 그대는 출가하여 비구가 된 지 몇 년이 되었습니까.” “대왕이여, 일곱입니다.” “존자여, 그대가 말씀한 <일곱>이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그대가 <일곱>이란 것입니까. 아니면 수가 <일곱>이란 것입니까.” 바로 그 때, 온 몸을 화려하게 장식한 왕의 그림자가 땅과 물 항아리 속에 비쳤다. 존자는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그대의 그림자가 땅 위와 물 항아리 속에 비쳤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왕입니까. 아니면 저 그림자가 왕입니까.” “존자여. 내가 왕입니다. 그림자는 나로 인하여 생긴 것 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법의 햇수가 <일곱>이라는 것이요, 내가 <일곱>인 것은 아닙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그림자 경우처럼, 나로 인하여 <일곱>이 생긴 것입니다.” “훌륭하십니다. 존자여, 정말 희귀합니다. 나의 질문은 아주 어려웠는데 훌륭하게 해답하였습니다.”
3. 장로의 엄중한 약속 - 대화를 성립시키는 근거
왕은 말했다. “존자여, 나와 다시 대론하시겠습니까” “대왕이여, 만일 현자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왕자로서 대론을 원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지 않겠습니다.” “존자여, 현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대체로 현자의 대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해명되고, 비판 받고, 수정 받고, 반박 받지만, 그것으로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현자는 진정 이렇게 대론합니다. “또, 왕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왕자들은 대개 대론에 있어서 한 가지 일을 주장하고, 한 가지 점만을 밀고 나가며, 만일 그 일과 그 점에 따르지 않으면 ‘이 사람에게는 이러 이러한 벌을 주어라’라고 명령합니다. 대왕이여, 왕자는 바로 이렇게 대론합니다.” “좋습니다. 나는 왕자로서가 아니라 현자로서 대론하겠습니다. 존자께서는 마치 비구나 사미나 신도나 정원사와 대론하는 것처럼 마음 놓고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론해주십시오. 조금도 염려 마시길 바랍니다.” “대왕이여, 좋습니다.” 존자는 쾌히 동의했다. -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동서의 예지가 불꽃 튕기는 대론을 시작한다.
그 첫 대론은 참으로 기발한 대화이다. 그것은 팽팽한 활시위와 같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위대한 명작의 막이 오르기 전의 예고와 같은 전조의 대화는 아주 짧다. “존자여, 나는 이미 질문 하였습니다.” “대왕이여, 나는 벌써 대답하였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대답하였습니까.” 그러나, 곧 미린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비구는 위대한 현자다. 정말 나와 대론할 수 있다. 나는 그에게 물을 것이 많다. 그에게 모든 것을 묻기 전에 해는 서쪽으로 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일 궁정에서 대론함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데바만티야에게 말했다. “데바만티야여, 그대는 존자에게 내일 대론은 궁정에서 하자고 알려라.” 미린다 왕은 나아가세나 존자에게 작별 인사를 마치고 말에 올라 ‘나아가세나, 나아가세나’를 외우면서 돌아갔다. 데바만티야는 존자에게 그 전갈을 아뢰었다. 존자는 그 제의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데바만티야와 아난타카아야와 만쿠리오 삽바딘나는 미린다 왕에게 가서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나아가세나 존자가 오늘 오십니까.”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삽바딘나는 왕에게 말했다. “그 분더러 열 사람의 비구만을 데리고 오시라 하십시오.” 왕은 삽바딘나에게 다시 말햇다. “모든 준비는 다 되었다. 몇 사람이든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여라.” 삽바딘나는 왕에게 거듭 말했다. “그 분더러 열 사람의 비구만을 데리고 오라고 하십시오.”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너에게 거듭 말하노니 몇 사람이든 그 분이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여라. 삽바딘나는 나의 뜻을 어기고 사람 수를 제한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되면 내가 비구들에게 음식을 공양할 수 없는 것으로 그 분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듣고 삽바딘나는 무안해 했다.
4. 아난타카아야의 영혼에 관한 문답
데바만티야와 아난타카아야와 만투라는 존자에게 가서, ‘미린다 왕은 얼마든지 그대가 원하는 만큼 많은 비구와 함께 오시라고 하십니다’고 전했다. 존자는 그날 오전에 장삼을 입고 바루와 가사를 손에 들고서 8만 명의 비구와 함께 사아가라로 떠났다. 아난타 카아야가 존자에게 가까이 가 물었다. “존자여, 제가 나아가세나라고 말할 때, 그 나아가세나란 무엇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그대는 나아가세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나아가세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나간 숨이 돌아오지 않거나 들어 온 숨이 나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을 수 있겠는가.”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나팔 부는 사람이 나팔을 불 때 그가 내 쉰 숨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는가.”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피리 부는 사람이 피리를 불 때 그가 내 쉰 숨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는가.”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그들은 왜 죽지 않는가.” “저는 그대 같은 논자와는 논의할 수 없습니다. 존자여, 그 뜻이 어떠한가를 말씀 해 주십시오.” “호흡에는 영혼이 없다. 들이 마시는 숨과 내 쉬는 숨은 신체 구조의 계속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장로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에게 논을 설명해 주었다. 그 결과 아난타카아야는 승단의 시주가 되겠다고 서약했다.
5. 출가의 목적
나아가세나 존자는 미린다 왕의 궁정에 이르러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왕은 존자와 함께 온 비구들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음식과 옷을 공양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왕은 존자와 비구 열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 사람은 돌아가도록 하였다. 자리가 정돈되자 왕은 물었다. “존자여, 무엇에 관해 대론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진리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리에 관해서 대론하면 어떻겠습니까.” 왕은 물었다. “존자여, 그대가 출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그대의 최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우리가 출가한 목적은 괴로움을 없애고, 다시는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세속에 대한 집착이 없고, 완전히 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입니다.” “존자여, 비구들 모두가 그와 같은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출가하였습니까.” “대왕이여,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목적으로 출가하였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폭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어떤 사람은 도둑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생활 수단으로 출가하였습니다.” “존자여,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출가하였습니까.” “대왕이여, 실은 나는 어려서 출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 나는 궁극적인 목적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들 사문은 현자이다. 이 분들은 나를 공부시켜 줄 것이다’고 그리고 나는 그 분들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지금은 출가하는 목적과 자체하는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존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