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5. 벌거벗은 주지스님♧
다섯번째 꼭지
몸은 깨달음의 나무(보리수)요 마음은 밝은 거울이라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앉고 때 끼지 않도록 하세. ________신수 스님
상가 건물 한 칸을 얻어 작은 포교원을 얻어 신도들과 함께 생활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포교원은 화장 실도 다른 상가와 함께 쓰고 있던 터라 단독 샤워실을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사정으로 공중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고 그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안면있는 얼굴을 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몸을 담그러 가지만 운이 없는 날은 영락없이 그곳에서 포교원 신도들을 만나게 된 다. 맹색이 머리 깍은 출가승이 벌거벗은 상태에서 신도들과 눈인사에 합장 반배, 심지어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대로 삼배를 하는 신도를 대하는 일은 식은 땀 흐르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아는 척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희뿌연 수증기 속을 헤치고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확인하고는 큰 소리로 "주지스님" 하고 부르며 반가워 한다. 목욕탕 안에서 주지와 신도가 서로 합장하며 인사하는 모 습을 상상해보라. 목욕탕안에 있는 많은 눈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집중되던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 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며 웃은이 절로 나온다. 드디어 어느날 그 상황보다 더 화끈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도 또 새벽을 틈 타 목욕탕에 들렀다. 다행이 안면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요모 조모 나를 본다. 그리고 " 아이고 우리 주지스님 아니십니꺼? 목욕하러 오셨습니꺼? " 하고 인사를 한다. 칠십 노인이 앉을 자리를 손수 닦아 마련해 주며 신경 써주는 것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빨리 샤워나 하고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노인이 큰소리로 때 미는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 거기 총각!" " 어이 총각........" 몇 번을 크게 부른 후 총각이 다가 오자 노인이 말했다. " 여기 우리 큰 스님 깨깟이 해주소. 정성스럽게 해주소. 아주 훌륭하신 스님이시니께." 몇 번이나 만류를 해도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고 되려 화를 내는 탓에 나는 할 수 없이 때 미는 곳에 올라 누었다. 벌거벗은 몸이 민망하고, 미안한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당황한 모습으로 몸을 맡겼는데 노인은 나를 위해 치워준 자리 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 늙어 힘없는 몸을 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피가 머리로 몰리고 수많은 자성의 화살이 가슴에 내리 꼿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벌거벗은 고깃 덩이 같은 몸이 부끄러워 자연스럽게 대하지도 못했는데 칠십 노인은 몸의 눈이 아니라 사문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 자신을 위해서는 절 대로 쓰지 않을 돈을 아깝지 않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의 눈에는 중생이 모두 부처님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의 마음 이 항상 존경과 신뢰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내 모습이 어떻든 마음 속으로 존경하는 주지스님 그대로 였고, 나는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워 불안하던 터 였기에 스스로 벌거벗은 스님이었던 것이다. 나는 벌거벗은 몸이 아니라 벌거벗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눈을 뜰 수 조차 없었다. 나는 그 날 일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목욕탕에서 출가의 참 의미와 승려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 인가를 절실하고도 아프게 채찍질 당했던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시주의 공양을 참으로 받을 자격 이 있는가?' 하고 항상 스스로 경책하곤 한다. 옛 스님들 또한 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씻어내면서 마음의 때를 닦아 내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본래부터 비린재, 누린내 나는 것이 임시 모여서 이루어진 몸이라. 가죽과 털, 진액과 기름기가 끊 임없이 생겨나니 설사 바다를 기울여 아침 내내 씻더라도 나귀 해(12간지에도 없는해)가 될 때까지 깨끗해질 줄 모르리. 몸에서 일어나는 때는 그래도 잘 씻겨 나가지만 마음은 육신경계를 따라가 더 더욱 물이 든다. 불쌍하구나. 근원을 잊은 세상 사람들이여, 한갓 피부만 씻을 뿐 마음은 씻지 않는 구나. 물통 가득 넘치는 더운 물, 큰 국자로 씻는데도 시주들은 이익이 늘 것 만을 바란다. 뒷 생에 자기가 온 곳을 모른다면 복이 수미산 같아도 선 자리에서 녹아짐을 보리라. ----------- 인천보감
여러 환경에 노출되 몸의 각 물질은 본래 때가 잘 끼는 습성이 있다. 가죽과 털, 진애과 기름기는 물로 아무리 깨끗이 씻어 내어도 곧 오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때가 끼면 항시 닦아 내야하는 것 또한 인간 의 습성이다. 몸의 때는 아무리 닦아 내어도 곧 다시 때가 끼기 마련이다. 물로 닦을 때는 그래도 잘 닦 인다. 그러나 마음의 때는 그렇지 않다. 마음은 욕심의 대상을 만나면 끝없이 물들고 그 욕심은 곧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轉移)된다. 비단 출가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마음의 때를 벗고 씻어 내는 훈련을 평소 하고 살아야 한다. 옛 스님 들이 목욕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 그것은 무상한 허위와 가식을 버리고 우리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본 성을 보려는 훈련이다.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허상에 속아 넘어가는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된다. 이렇듯 옛 스님들이 목욕탕에서 생각하는 것과, 내가 목욕탕에서 느낀 깨달음을 다른 사람도 함께 생각 하고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생을 위해 우리를 위해 거울 속에 갇치신 저 분, 우리는 그 분을 오래토록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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