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주지스님

Ⅱ-4 낮도깨비 ♧

자수향 2009. 5. 19. 06:23

 

네번째 꼭지.

 

 

                  

                    봄이 찾아오면 맞이하고 돌아가면 보낼 뿐

                흐리면 흐린대로 개면 갠 대로 좋거늘, 무엇을 좋아하고

                워하랴

                  마음이 빛나면 어두운 방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마음이 어두우면 낮에라도 도깨비가 나타나는구나.

 

              

      사람의 한 평생 너무 적막하기 이를데 없다. 알 수 없는 사이에 어린시절을 보내고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가 지나면 곧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기가 다가온다.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었는데 정신없

      이 살다 보면 그 많은 날들은 슬프고 기뻤던 기억만을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이

      세상이 무상하다 무상하다 하는 것이다.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내가 귀신 쫓아내는 영험한 스님이라는 말이 퍼져 무던히도 많은 사람들이

      절에 찾아오던 어느날이었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두 명의 딸이 찾아왔다.

      노모가 일주일 전에 무당집에 다녀와서는 그 후로 한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딸들은 어머

      니가 심지어 물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식음 조차 전폐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니 답답하다고 했

      다. 저러다가 돌아가시지나 않을 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으니 혹시 귀신의 장난이 아닐까 해서 찾

      아 왔다는 것이다. 내가 노모의 손을 잡고 "보살님' 하고 부르니 대답이 없다. 

       " 보살님 무슨 일인지 말씀 좀 해보세요."

      그렇게 말해도 멍하니 앉아만 있다. 실어증에 걸린 것인지 그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말할 의욕을

      잃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딸들에게로 돌아 앉아 말을 시켰다.

      "어머니 용돈은 좀 넉넉히 들이세요?"

      " 예, 용돈은 넉넉히 들이고 있습니다."

      " 여행은 자주 시켜드리나요?"

      " 그럼요, 저희가 바빠서 못 가드려도 어머니 친구분들 하고 이곳 저곳 많이 여행 보내드렸어요."

      "그럼 흑산도도 보내 드렸어요?"

      " 예, 흑산도도 다녀 오셨어요."

      " 그럼 제주도랑 울릉도도 다녀 오셨어요?"

      " 거기도 다녀 오셨어요."

       딸이 그렇게 대답하자 노인의 관심은 더 커진다. 당신이 눈으로 보았던 풍경들을 선명하게 머리

       속에 그리고 잇는 것 같았다.

       " 와~ 보살림 안다녀 오신 곳이 없네요. 근데 흑산도에 가면 돌이 모조리 다~ 까맣다던데 그게 사

       실이에요?"

       " 아니요."

       이 답은 딸이 한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개미만한 소리로 대답한 것은 노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딸들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능청스레 질문을 이어갔다.

       " 아 그래요 나는 그것도 몰랐네. 근데 누가 또 울릉도에는 섬이 하도 작아 공을 차면 바다로 빠져

         버린다던데 그게 사실이에요?"

       "  아이고 아~녀요."

      그 말이 우스웠는지 할머니가 피식하고 웃으면서 한 대답이다.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말문이 티이게 되었고, 나는 물 한모금 먹지 않은 노인이 분명 목이 마를 것

      이라는 생각에 내가 목이 마르다며 물 좀 가져오라고 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것을 본 할머

      니가 당신 또한 물을 큰 사발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킨다. 딸들 눈은 더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그때부터 잊었던 말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할머니는 그동안 맺힌 외로움과

      쓸쓸함을 쏟아 냈다.

      할머니는 아들 없이 딸 둘을 낳고 홀로 되었다. 지금은 늙어 큰 딸하고 살고 있는데 딸 내외는 슈

      퍼마켓을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바쁘다고 한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혼자 지내다가

      딸이 늦게 돌아오면 이것저것 말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딸이 너무 피곤해 보이고 지친 모습이

      안타까워 그냥 자라고만 하고 자리를 피해 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무당집에 들렀더니 일주일 안에

      죽는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삶이 하도 적막하고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오고

      물도 안 넘어 갔다는 것이다.

      나는 노인의 말이 끝나자 딸들에게 말했다.

      " 잘 아셨죠, 이제 모시고 가세요.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십 년은 더 건강하게 사실 것 같네요.

       걱정하지 마시고 자식들하고 오손도손 사세요."

      " ................."

     귀신이 있어서 할머니가 말을 잊고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면 그 귀신의 정체는 외로움의 귀신이다.

     이 외로움의 귀신이 할머니의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꼼짝 못하게 한 것이다. 딸들은 하루종일 바빠

     노모에게 신경 쓰지 못했고 그것이 미안해 이곳 저곳 여행을 보내 드렸지만 허사였다. 노모가 원하

     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오손도손 그날 있었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정을 느끼고 싶

     은 기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어떤 좋은 구경도 마음을 채워 줄리가 없었다.

     또 딸들은 어머니가 병이 들자 병원이나 무당집에 찾아 다니느라 장사를 못하게 되니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 현실적인 것만 눈에 아른거렸다. 그러니 딸들을 결박한 귀신은 바쁨의 귀신

     이다.

     앞의 게송에서 선사는 마음이 빛나면 어두운 방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마음이 어두우면 밝은 낮이

     라도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이처럼 외로움의 귀신, 바쁨의 귀신 뿐만 아니라 한 마음

     미혹한 생각에서 여러 가지 귀신에 사로 잡혀 있다. 즉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물질을 모으고, 무엇인가 성취하는 것만이 진짜 가치가 아니다. 자신을 돌아 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이 바쁨의 귀신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정체성을 상실하지는 않는가. 또 외로움의 귀신에 둘러싸

     여 한 세상 헛되이 마감하려 하지 않는가.  어떤 가르침이 내 삶을 바르게 비춰줄 수 있는가를 살피

    는 것이 보람되고 가치있게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무덤보다 깊은 고독을 모르면 고개 숙이고 핀 모습에 말을 마오...' 어느 시인의 글 중에서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깊은 외로움을 미쳐 몰랐습니다. 내게 찾아 올 외로움인 것을 미쳐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