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8 지옥에서 만난 사람
여덟번째 꼭지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어서 마음이 절대자가 되어서 지시한다. 마음 깊이 선한 일을 생각하면 말도 선해지고 행동 또한 착해져 복과 즐거움이 뒤를 따른다.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법구경
티벳에서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경전 중에 사후의 세계를 말해 놓은 책이 잇다. 그 책에 보면 죽은 후 영계에 들어가 어떤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일생을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볼 수 있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 이 그것을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자신이 살아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지은 온갖 행위들이 그대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가 생전에는 무의식에 가두어 두었던 자의식의 그림자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그 단계를 쉽게 지 나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부터 전해오는 죽은 후의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된다. 죽은 사람이 살아서 지은 죄를 한사코 부인할 때 그에게 업경대를 보여준다. 그 거울은 살아 생전 일 생동안 지은 죄의 실상을 모두 비춘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두려움에 떨고 지난일을 뼈져리게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극한의 지옥일 뿐이다. 어쨋든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재생산되고 있다. 그것은 꼭 사후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꾸며지고 만들어지는 경우 가 많다. 얼마전 작은 모임에서 신도들과 나누었던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작은 행사가 끝난 후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수고와 감사를 나누던 중이었다. 마침 그때는 유감스럽게도 종단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할퀴고 지나간 후였다. 전 불자들과 종단 또 사부대중 에게는 큰 시련이었고 모두에게 상처를 입혔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남긴 일이었다. 화제가 자연 그 쪽으로 집중이 되었고 나는 부끄러운 심정을 술회했다. "요즘은 법당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절하는 것도 부끄럽고 법석에 앉아 신도님들께 법답지 못한 말이나 하는 것 같아 많이 두렵습니다. 가람이 보호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신도님들의 시주가 무척이나 요긴하지만 그 러한 시주금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그 때 천주교 신자인 한 부인이 내 말을 받아이었다. "스님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보겠습니다." 불쑥 재미있는 이야기라기에 의아했지만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의도인가보다 하고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이 야기에 집중했다. "저희 교도 한 명이 지옥에 갔더랍니다. 그런데 거기서 같은 교당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데요. 하도 반가워서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래요. 그랬더니 그 교도가 하는 말이 '쉿! 조용히 하세요. 자매님, 저 쪽에 우리 신부님도 와 계세요' 라고 했대요." "............" "그게 끝입니까?" 그 짧은 우스게 소리에 모두가 웃었다. 그 이야기는 분명 나를 위로해주려는 의도가 있는 말이다. "보살님, 그런 이번엔 재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께요." "저희 절 신도 한 분이 지옥에 갔답니다. 그랫더니 같은 절의 신도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답니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왔노?' 하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 '쉿! 저 뒤에 정호스님도 계세요.' 라고 하더랍니다." 똑같이 우스게 소리를 낸 것이 싱거웠는지 모두 크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평소에 절에 잘 다니고 법문 열심히 듣고 기도 열심히 하던 신도들은 모두 극락에 가 있더랍니다. 스님이 일러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열심히 기도한 사람은 극락에 가 있는데 정작 좋 은 말을 일러준 스님은 지옥에 갔더라는 겁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 가르침은 참 묘한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경전을 이용해 사법을 이야기 하고 삿되게 행동하더라도, 그 삿된 법을 바르게 펴서 행한 이는 극락에 간다. 또 어떤이는 정법을 이야기 해주어도 사법으로 알아 듣고 삿된 행 동을 한다. 같은 물을 마셔도 누구는 독을 만들고 누구는 우유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처럼 천당과 극락과 지옥은 그 말을 설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생각하고 행하고 믿는 사람에게 있다.
이런 설명을 붙여주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시 숙연해지며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우리는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많다. 종교를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삼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한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이고 편집적인 신념에 대한 경 고였다. 사람들은 종교를 자신의 현실적인 삶 속의 기둥으로 삼지 못하고 종교를 의식의 도피처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종교와 교단이 생활의 전부가 되고 교주와 절대적인 지표로 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 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양상이다. 이것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능엄경에 이르길 허공은 변함이 없는데 담긴 그릇에 따라 허공이 달리 보인다고 하였다.
"아난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타난 인연이 있느니라. 햇빛은 해의 인연, 어둠은 구름의 인연, 통하는 것 은 틈의 인연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나 이 참마음의 성품은 아무런 인연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모난 그 릇 속에서 모난 허공을 보는 것과 같나니, 모난 그릇 속에서 보는 허공은 모난 허공이 아니니라. 똑같은 허 공을 둥근 그릇 속에서는 둥글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릇이 모나고 둥글지언정 허공은 모나지도 둥글지 도 않느니라."
이는 우리가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항상 어떤 그릇 속에 고정시켜 보려는 습관이 있음을 지적하신 부처님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