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주지스님

Ⅱ-9. 종교의 존재 이유는 희망이다.

자수향 2009. 5. 27. 07:29

 

아홉번째 꼭지

 

 

 

     저는 사십대의 전업주부로서 중학교에 다니는 외동딸 그리고 일 중독에 빠진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절에 다니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후 제 마음에 큰 희망의 등불을 하나 켜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평탄하게 살아왔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하기까지 특별히 어려웠던 기억이 없습

    니다. 남편은 인정 받는 회사원으로 일에만 매달렸습니다만 저는 남편의 바쁜 사회생활이 은근히 자랑스

    러웠고 우리에게는 예쁜 딸아이도 생겼고 교육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아이 키우는 일이 너무도 즐겁고 행

    복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의 도움없이도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

    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덧 딸아이도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지나친 간섭으로 생각하는 나이가 되

    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제게도 무엇인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움켜지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무기력해지는

    마음과 몸을 추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귀가가 늦고 출장

    을 자주 다니는 남편의 빈자리도 더욱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인가 큰 혼란의 소용돌이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한동안 보내다 보니 이제는 모든 일에서 어떤

    흥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들 중년기 우울증이라 말했고 나도 그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

    서 쉽게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나의 심정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

    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 내 몸은 혼이 빠져 나간 횅횅한 빈 집 같은 존재........사람이 살

     지 않는 빈집은 무성한 풀로 뒤덮히다 곧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나는 항상 무서웠고 그 때부터는 수면 유

     도제를 한 알 두 알 먹고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병원을 찾아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일시적이

     고 그렇게 균형이 맞지 않은 생활은 이년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크게 걱정하기 시작했습

     니다. 그 때까지도 저는 종교를 가질 생각을 내지 못했습니다. 종교는 자기 최면일 것이라는 고집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옆집 사는 분이 절에 한 번 같이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불면증을 고치신 일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 이야기는 더 믿기지 않았지만 머리도 식힐 겸 사찰 구경이나

     하고 와야지 하고 그 분을 따라 절에 가게 되었습니다.

     절에 가니 스님께서 저에게 합장을 하고 기도를 좀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라니요....... 저는 기도

     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기도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기도할 때는 어떤 미워

     하는 마음이나 원망하는 마음도 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는 것이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기도를 하다가 졸리우면 그 자리에서 자도 된

     다고 하시면서 나가셨습니다.

     저는 합장을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입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계속해서 불러보았는

     데 처음 얼마동안 머리 속에서 온갖 잡념들이 일어났습니다. 잡념을 털고 집중을 해보려는데 졸음이 밀려

     왔습니다. '어어! 이상하다. 계속 졸립다.' 했는데 저는 세 시간이나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낮잠을 잤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몸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잠에서 깨자 스님께서는  '잘 주무셨습니까?'하시며 웃으셨습니다.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는 잠을 잤습니다.'라고 ... 덜컥 말할 뻔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제 집에 가서도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시며 금강경 한 권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침

     열 시에 맞추어 금강경을 읽었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잠을 잘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또 이년을 넘었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잠을 잘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읽었던

     금강경 구절들이 머리 속에서 하나 하나 이해되고 ,이제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의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생각들을 허공으로 돌리는 노력을 하며, 남편의 삶도 아이들의 삶도 다 이해하고 인정했습니다.

     끊임없이 일던 왜? 무엇 때문에? 왜 나한테?........ 라는 의문도 사라지고 종교와 종교가 아닌 것 그런 것

     들을 가르고 분별해 의심하는 것도 사라지고 그저 오늘, 열심히 살고 무력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금강

     경에서 배운 큰 가르침입니다.

     불교는 항상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인연은 만남이고, 이세상 모든 만남은 나를 키우는 자양분입니

     다. 그것들과 만나야만 성숙하고 많은 것들을 만나야만 세상과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불면증을

     통해 스님과 금강경과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난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 중에서 가장 축복

     된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만남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인연의 그믈들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인

     연이 되어 줄 수 있는가를 항상 생각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음을 깊이 감사 드립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 종교의 시대는 지나 갔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종교를 과학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종교적 신념 자리를 대신하고 있

     는 것은 과학적 휴머니즘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만을 내세우고 '인간', 바로 자기 자신을 최고 우

     선 가치로 내세우는 이러한 사고 방식은 세속적인 가치관이다. 이런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인간을 이끌어 가는 최고의 가치가 인간의 정신과 인간이 만든 역사와 운명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의 위기를 떠나 인간이 과학을 맹신하면서부터 인간의 삶이 현세적이며 일회적인 것

     으로 흥청대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쾌락주의나 한탕주의로 살려고 한다. 또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하기 보다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을 하나의 정복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오늘날 생태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 자원은 고갈되고 환경은 급속도로 오염되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그들은 또 세속적인 가치, 즉 이성에 의한 것만이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결국 대나무 통

     속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아주 좁은 소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가치관에 함부로 잣대를 이용할 수 없다. 저마다의 가진 고

     통을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대로 느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그 고통의 무게를 가늠

     해 보려는 의지와 자비심없이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신앙의 근저에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경건하게 받아 들이는 넓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쾌유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의 길이며, 삶의 방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는 등불같이 환한 길잡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한 세계라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종교인들 또한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에 대해 명확한 분별력을 갖기 위해 이성적인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신념이 희망이 되는 것은 바로 그것을 발판 삼아 참된 자신을 찾는 뗏목의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한 그러한 사유가 걸러졌을 때 종교적 가르침은 그야말로 밝게 빛나, 우리의 삶을 인

     도하는 큰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잠 못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인생의 참다운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의 길은 길고 험해라

 

                                                                                  --------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