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주지스님

Ⅲ-2. 죽어서도 버리지 못하는 애착

자수향 2009. 5. 29. 08:09

 

두번째 꼭지

 

 

 

 

                                                         사랑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에서

                                              근심과 두려움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이 없는 곳에

                                              무슨 근심과 두려움이 있겠는가.

 

                                                                                                               ---------법구경

 

    사랑하는 마음과 기쁨에서 왜 근심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일까. 오히려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에서 근심

    과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

    苦)의 말은 원리로 보면 같은 말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때문에 견딜 수 없이 싫은 것도 그렇지만 나를

    남겨두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도 또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과 괴로움이 아닐 수 없다.

    매사 집착하는 것이 큰 병으로 작용한다. 사랑에도 집착하고 원한에도 집착해 죽어서도 저승에 못 가는

    영혼들이 많다.

    절을 찾는 사람 중에는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몸에 병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오래전 보명사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늘이 아주 맑고 아름답던 가을날이었다. 한 남자가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창백한 여자를 부축해 절 문에 들어섰다. 여자는 그의 동생이었다. 여동생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지 일 년이 넘었다고 했다. 어디가 정확히 아픈 것이 아니라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고 좋다는 약도 다 써 보았고 무당집을 찾아가 온갖 비방

    을 다 써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아픈 여동생에게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켰다. 십여분이 지나자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그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 장면을 본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여동생에게서 나는 이상한

    소리는 중국말이며 그 목소리가 예전에 알고 잇었던 사람 목소리 같다고 했다. 여동생은 계속 분노하는

    표정, 서러운 표정, 갖가지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는데 그녀의 오빠가 그 말을 내게 통역해 주었다. 나는

    영가에게 물었다.

    "영가는 중국사람인가?"

    영가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물론 그의 여동생의 몸이다.

    "영가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여자"

    "영가는 무슨 인연으로 그 몸에 깃들어 있는가?"

    이렇게 물으니 영가는 오빠와 인연이 있다고 한다.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거주할 때 중국여자와 잠시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

    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그 여자와 헤어진 후로 연락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 영가는 남자와 헤어진 후 혼자 외롭게 살다가 이년 전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고향에도

    못 가보고 헤어진 남자에게 할 말도 많고 보고 싶기도 해서 남자의 곁에 머문다는 말을 했다. 내가 다시

    영가에게 물었다.

    "영가는 살아 있는 몸에 들어오면 몸의 주인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가?"

    "그것은 알지만 남편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커서.........."

    "영가여 들어라. 남자를 남편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영가의 몸으로는 사랑할 수 없으니 어

    서 미련 버리고 다른 몸을 받아 오도록 해라.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기도할 것이니 미련을 버리고 좋은 곳

    으로 가거라.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영가 때문에 괴로운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니 맺힌 마음을

    놓고, 집착을 버리고 어서 갈 길을 떠나라."

    "................."

    이렇게 이르고난 잠시 후 여동생의 떨리던 손이 멈추었다. 여동생은 의식이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졌다고

    했다. 남자는 여동생과 함께 법당으로 가 깊이 참회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모두의 기도 공덕과 참회의 마

    음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랫동안 외로웠을 그녀의 길에 도움이 되길 서원했다.

    여동생의 몸에 깃든 영가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살았을 때의 기억을 놓지 못해 죽어서도 죽음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떠돌다가 여동생의 몸에 깃들어 인연을 연장시키려 했다. 남자는 여동생의 병이 자신 때문

    이었음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남자는 일본에서 맺었던 인연을 기억이나 했을 것인가. 남자는 진심으로

    놀라고 참회했다.

    업의 그림자는 수미산을 돌고 돌아 숨어도 쫓아 온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어디에도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한 때 사랑하던 사람과 즐겁던 기억에 얽매여 저승길도 못가는 것이

    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의 정반대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쏜 화살은 곧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러기에 항상 참회와 용서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모든 집착,

    사랑도 미움도 원망도 두려움도 한 순간에 놓아버리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며 살자.

 

 

 

 

 09.5.29일 노무현 전대통령 발인날에...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