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주지스님

Ⅲ-3. 우리의 장례문화

자수향 2009. 5. 30. 08:50

 

세번째 꼭지

 

 

 

 

슬픔과 기쁨은 한 베게의 꿈이요

만남과 헤어짐은 십년의 정일래

말없이 고개 돌리니

산머리엔 흰구름만 이는구나.

                                  -----------청허 휴정

 

 

     비가 추적주적 오는 날에 깔리는 염불소리는 사람의 눈물 주머니를 더욱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염불을 시작하

     고 잠시 후면  '아이고 아이고' 하는 유족들의 곡하는 소리가 빗소리와 염불소리를 덮어버릴 정도의 통곡으로

     뒤바뀐다.

     고인이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편안히 저승길 가도록 부탁하면서 극락왕생을 염하는 것이 염불이다. 그러나

     유족의 떠나갈 듯한 통곡소리에 묻혀 염불하는 사람도 염불을 듣는 망자도 그만 혼비백산해 버리는 경우가 종

     종 있다. 더러는 염불하는 옆으로 와 쓰러져 땅을 치고 통곡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고, 극락왕생하게 해 주세요. 제발 천당에 태어나게해 주세요."

     이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고모나 술에 취한 오촌 당숙쯤 되는 사람들이다. 스님에게 염불을 청했으면 모두가

     정숙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고쳐지지 않는 모습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다.

     또 하나 참 난감한 것이 있다. 집중해서 염불하고 있는 중간, 경책 위에 천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진다. 이 지

     폐가 경을 온통 덮고 있으니 글귀가 보이지 않아서 염불을 할 수가 없다. 스님들이라 해서 긴 염불 내용을 다 외

     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폐를 한 쪽으로 치우면 돈이 적어 치우는 줄 알고 이제는 시퍼런 지폐 몇 장이 경

     책 위로 몸을 눕힌다. 참 어이없는 순간이다.

     망자의 저승가는 여비로 영단에 돈을 올리는 풍습은 우리의 오래된 장례문화 중 하나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자

     들이 망자에게 표하는 마음의 표시이다. 그 돈으로 망자가 저승길 가는 노자돈으로 쓰기를 바라는 소박한 믿음

     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굳이 염불하고 있는 경책 위가 아니라 그 옆에 조용히 놓던지 기도가 다 끝나고 놓

     아야 한다. 이 순진한 사람들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염하는 스님들이 무슨 큰 힘이나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지 기

     도 중에 보란듯이 돈을 얻어 놓는다. '아이고 극락왕생하게 해주세요.'

     우리나라의 초상집 분위기는 천태만상이면서도 천편일률적이다. 빈소에서 유족이 곡하는 모습 따로, 술이나 화

     투로 하객이 만들어가는 소란 따로, 하객접대에 바빠 슬픔을 잊어야 하는 모습 따로.... 아마도 슬픔과 애도가

     따로따로 표현되는 것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풍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것을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비록 몸은 벗어났지만 영가가

     있다고 믿으며, 저승 가는 여비를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하는 모습은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밤을 지새워 가며 친구, 이웃, 동료, 가족의 초상을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모습 또한 사람사는 인정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위의 게송에서 처럼 슬픔과 기쁨을 한 베게 꿈처럼 생각하는 한국적이며 자연적인 사고방식이 고

     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때론 진지한 표현방법도 필요하다. 염불을 청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간절한 애도의 마음이라면 정숙과

     엄숙의 예의도 갖추어야 한다. 조문을 하는 것 또한 때에 따라 정도를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문화는 다같이 만들어 가며 정착시킬 때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장례풍습도 지나친 것은 지양하고 좋

     은 것은 다같이 지켜가는 문화적 정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