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주지스님

Ⅴ-3. 혜련스님

자수향 2009. 6. 16. 06:48

 

세번째 꼭지

 

 

 

                    죽음이 몸과 마음을 무너뜨리는 곳에도 은혜로 베푼 보시의 복덕은 자기를 따르는

                    복덕이 되나니. 자기를 잘 거두어 단속하고 마음을 닦은 공덕을 의지하여 돈, 재물,

                    음식,등을 능력에 따라 널리 베풀며 게으르지 않고 항상 마음을 닦으면 비록 삶을

                    마친다 해도 그것은 결코 헛되이 산 것이 아니다.

                                                                                      ---------잡아함경

 

 

     우리는 가끔 이 생을 헛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가치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는 것인가.

     위 경문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베푸는 삶과 항상 마음을 닦는 삶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불교는 나누

     고 베푸는 것을 보시라 하고 타인에 대해 한량없이 사랑스러운 마음을 내는 것을 자비라 가르친다. 그것

     은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진실된 보시와 자비를 말하는 것이다.

     차별없는 마음과 타인을 나처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보시, 자비... 이러한 삶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의식을 성숙시킬 수 있다.

     혜련스님 말이 나온 김에 스님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스님은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스님이 경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이라

     야 겨우 바둑책이나 들여다 보고 그것도 보면 다 태워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스님이 의식에 쓰이는 염불을

     줄줄 외워대고, 새벽 도량석 시간에는 알 수 없는 경문으로 어두운 새벽을 깨우곤 했다. 그게 어디에 있는

     경문이냐 물으면 스님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그 뿐 아니라 스님은 크고 작은 절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절에 한 번이라도 온 적이 있는 신도들의 목소리

     까지 기억해 낸다.무심한 듯 아무일에도 관심없이 보이지만 혜련스님은 어떠한 인연도 함부로 흘려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어느 해이던가. 우리 절에 어린 진돗개 한 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다. 절에서는 본래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보니 개의 출현이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갈 데 없는 어린 개를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돗개가 아직 어렸으므로 누군가 보살필 사람이 필요했는데 어쩌다 혜련스님의

     차지가 되었다. 우리는 진돗개의 이름을 백산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백산이가 우리 절 식구가 된 후로 절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는 날이 있었다. 향 냄새가 나야할 도량에서

     이게 무슨 냄새인가? 여기저기 살펴보니 도량 뒤편에서 고기를 삶아 손으로 잘게 찟고 있는 스님이었다.

     "아니 스님! 고기를 가지고 뭐하십니까?"

     "백산이가 아직 어려서 잘 먹어야 하기 때문에........허 허"

     하루는 냉동실에서 뭘 좀 꺼내려니 동태가 꽉 차 있었다.이것은 뭔가 싶어 알아 보니 혜련 스님이 백산이

     먹이려고 꼭꼭 여며 놓은 것이었다. 내가 또 짐짓 말했다.

     "절에 동태가 다 있네. 이거 끓여다가 애들도 좀 먹이고 마을 사람들도 나눠줍시다."

     "스님! 안돼요. 백산이가 아직 어려서 고깃국을 끓여 먹여야 해요"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받던 백산이가 그만 장염에 걸렸다. 예상대로 혜련스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

     었다. 근심하던 스님이 절을 나섰다. 백산이를 데려가야 할 터인데 혼자 나서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하고

     있으니 오산 시내에 있는 동물병원까지 걸어가서 수의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스님! 백산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면 되지, 왜 비싼 왕진을 시킵니까?"

     "백산이를 데리고 가면 몸도 성치 않은 백산이가 힘들어 하잖아요.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 오시라고 한 거

     예요."

     혜련스님은 자신이 아플 때는 약 한 번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던 스

     님이 그나마 조금있던 돈을 백산이의 왕진비로 쓰고 있었다. 그 후로 두 번 더 수의사가 왕진을 왔다. 왕진

     비가 떨어지자 스님은 직접 수의사로 부터 주사 놓는 법을 배워 주사를 놓았다.

     혜련스님의 극진한 정성을 받고 자란 백산이는 얼마 후 말끔히 회복되었다. 부쩍 자라 윤기나는 흰 털에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절 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사방을 주시하는 모습은 도량을 옹호하는 신장처럼 그 몫

     을 톡톡히 해 내었다.

     그런 백산이가 어느날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정작 절 식구들은 백산이 보다 혜련 스님을 더

     걱정하였다. 백산이에게 그렇게 정성을 쏟았으니 스님의 상심이 무척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걱정하던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툴툴 털어 버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만남

     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는 법 다만 행복했거나 괴로워도 순간 순간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스님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간 혜련 스님의 백산이에 대한 정성을 지켜보며 출가자가 한갓 개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것이 우습고 한

     심해 보이기도해서 스님의 행동을 조롱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백산이가 없어진 이후에도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던 스님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스님의 행동을 조롱했던 좁은 소견을 크게 뉘우쳤다.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보시와 자비를 행함에 있어서 내 친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

     었다. 사람들은 자식에 대해서는 무조건의 사랑이다. 자식은 내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잇는 性情으로는 타인을 내 자식처럼 대하기는 어렵다.

     '나'라고 하는 기본적인 에고를 버릴 수 없는 한, 사람들은 내것과 남의 것을 가리는 분별심을 내게 된다.

     이 세상 모든 불평등과 폭력과 불합리의 근본이 '나'라는 집착에서 온다. 그러한 집착을 조금씩 떨쳐버리

     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평등, 자유, 평화가 나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

     고 있다. 보시와 자비도 마찬가지다. 알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한다.

     혜련 스님을 통해 '어떤 것이든 차별해서 바라보지 않는 평등심에서 무조건적인 자비가 나오며 그 자비에

     서 베푼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 참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혜련 스님은 백산이에 대한 무차별의 마음, 진정한 자비, 베품,무집착을 통해 타성에 젖어 사는 생각들을

     깨트려 주었다. 혜련 스님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고마운 스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