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4. 큰 교훈을 얻은 남자의 이야기
네번째 이야기
저는 얼마 전 이 세상을 살아가늠데 있어 가장 값진 교훈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 써 보려는 지금 그저 작은 미담에 지나지 않을 까 망설이다가 내가 깨닫게 된 것들에 대 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입니다.
저는 중년을 넘긴 사업가입니다. 얼마 전 저는 사업에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 급하게 돈이 필요한 때에 건물이 처분되지 않아서 크게 마음 졸이고 살아야 했던 때입니다. 그 때 우리 부 부는 아내가 다니는 주지스님께 그동안의 어려운 사정들도 털어놓고 뭔가 좋은 방도가 없을 까 의논을 드 리고 싶어서 스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스님과 차 한 잔 놓고 마주앉아 이것 저것 넋드리를 풀어 놓았는데 스님은 저희 부부의 말을 다 들으시고 크게 여단치셨습니다. 뭔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왔는데 오히려 스님의 꾸지람에 내심 놀랐습니 다. 그러다 스님의 이야기를 다 듣고 저희의 큰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 년 전만 해도 저희 가족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 집은 아버님 살아 계실 때부터 줄곧 살던 집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던 형제들은 각자 가정을 꾸려 집을 떠났지만 저는 부모님과 함께 그 집에서 살았습니다.그 러다보니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고 아버남이 돌아 가신 후 자연스럽게 유산으 로 그 집을 상속 받게 되었습니다. 그간 어려움도 있었지만 심성 고운 아내 덕에 그런대로 잘 풀려 나갔습 니다. 그러다가 오년 전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해서 안양의 그 집을 처분하고 서울로 이사할 계획을 세 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님이었습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어머님께서는 막무가내로 이사를 반대하 셨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사시던 집이라 정도 들었을테지만 무조건 이사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시는데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작은 형님께서 모시기로 결정을 내린 후 어머님께 말씀드릴 때도 어머님께서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으시려는 어머님의 마음도 물론 아플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 저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가는 날, 어머님께서는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인사를 드리러 방으로 갔을 때, 문 을 걸어 잠그시고 열어 주지도 않으셨을 때는 마음이 천근처럼 내려 앉았습니다. 지금도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괴롭습니다. 어머님의 외면 속에 이사했던 우리 가족은 늘 마음이 무거웠지만 새로운 생활에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 니다. 그러는 동안도 어머님께서는 전화도 받지 않으시고 저희들을 철저히 외면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사겠다고 가계약까지 했던 사람이 건물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 건물을 팔아서 서울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저에게는 큰 어려움이 닥친 것입니다. 또 아내는 시름시름 아파 누워 있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괜히 이사를 했나 하는 불길한 마음 이 들었지만 우연이라고 밀어붙였습니다. 곧 지나면 팔리려나 했던 건물은 삼년이 지나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사면초가였습니다. 큰 도로변에 있는 멀쩡한 건물을 싼 값에 내놓아도 계약이 이루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업 때문에 서울집을 담보한데다 회사 자금사정도 넉넉치 않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갑자기 어려움이 겹치니 마음도 추스리기 어려워 매일 한숨 에 줄담배만 피워댔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내가 답답한 심정을 스님한테 털어 놔 보자고 스님을 찾게 된 것 입니다. 스님은 차근차근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은 단호함과 꾸지람이었습니다.
"죽은 사람 마음 풀기보다 산 사람 마음 풀기가 더 어렵다는 말 못 들으셨습니까? 부부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스스로 반성하십시오. 말씀들은 그렇게 하시지만 어머님과 떨어져 지내고 싶으셨죠? 하지만 부 부가 하기 나름입니다. 어머님을 찾아가서 무조건 엎드려 사죄하세요. 찾아가실 때, 어머님 당신이 베푸는 것처럼 해서 동네 어른 분들께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나눠 드리고 어머 님께는 고운 옷 한 벌하고 노리개 같은 패물을 준비해 드리세요. 그리고 안가시려 해도 서울로 모셔 가세요.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 "다른 것은 묻지도 말고 이유도 대지 말고 무조건 어머님께 참회하고 모셔가야 합니다. 짐승도 정들고 오래 살면 영물이 된다는데 사람도 연세 드실 만큼 드셨는데 뛰어난 영물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무리 이런 저런 핑계를 댄다고 해도 이 일을 해결하는데는 어르신의 마음을 처음처럼 풀어드리는 일 밖 에 없습니다. 당신을 버리고 갔다는 서운한 마음이 응어리지면 어르신이 돌아가셔도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 가시지 않겠습니까? 애지중지한 아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살아 계신 동안 최선을 다해 봉양해야 합니다. 어머님이 살아 잇는 부처러 생각하세요. 같이 그 집에서 살 적에는 자나깨나 아들 사업 잘되고 집안 화목하 라고 얼마나 바라셨겠어요? 그러던 어머님이 서운한 마음을 느껴 마음의 문을 닫고 계시는데 잘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한 마음이 우주를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기운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남에게 서운한 마음 들게 해서 잘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잘되어 보 여도 끝이 나쁘지 않습니까. 그것이 자식에게도 대물림 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되고 가정이 편안하시 길 원하시면 늙은 어머님께 잘해 드려야합니다. 고운 옷과 패물 준비하시고 일단 참회의 마음으로 모셔가고 보살님은 매일 금강경 한 편씩 독송하시고 그 러십시오. 그러면 곧 괜찮아질 것입니다."
저는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스님께서 지적하신말이 맞습니다. 어머님게서 안가시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이 제는 우리들끼리 편히 한 번 살아 볼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그 마음을 눈치 채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해버린 것을 크게 반성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서 사업이 나 가정 일을 떠나서 그간 어머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심하게 아려왔습니다. 저희 부부는 돌아와서 고운 옷과 좋아하시던 옥반지와 노리개를 사 가지고 어머님께 찾아갔습니다. 어머님 께서는 처음에 완강히 외면하셨지만 엎드려 진심으로 어머님께 참회하였습니다. 저희를 보시고는 차츰 응 어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고운 한복으로 갈아 입혀드렸더니 "이건 뭣하러 사왔어" 다음날은 동네 노인잔치를 열어 드렸습니다. 어머 님께서는 우리 효자 아들이 마련한 노인 잔치라고 자랑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의 아파트로 올라왔습니다. "여기가 너희가 사는 집이구나"하시며 좀 계시다 답답하 시다며 내려가신다고 하였습니다. 내려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저희들은 그간 잘못했던 일을 깊이 후회했습 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후 건물이 매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건물이 매각되자 회사 자금사정도 좋아지고 아내는 금강경을 읽으며 수양을 쌓고 있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감 사한 일인지 속으로 애써 기쁨을 감추었습니다. 지금도 스님께서 주신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행을 많이 하고 살지는 못해도 남에게 서 운한 마음이 들게 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경계에 부딪치고 참을 수 없 는 분노에 가슴앓이를 할 때도 많지만 이젠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돌립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 사람 입장에서는...." 스님께서 가르침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어깨에 평생 불효자라는 멍에를 지고 살 뻔 했습니다. 내 자식, 내 사업이 그렇게 중요해 어머님의 응어리를 모른 체하며 이사한 내 이기적인 마음이 평생 나를 길러주신 분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저는 이제 참회합니다. 모든 이에게 참회합니다. 부처님께도 참회합니다. 저의 이기심을 크게 일깨워주신 스님께도 참회하고 귀의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인연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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