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5. 가난해지는 사람들
다섯번째 이야기
금년에는 작년보다 더욱 가난해졌으니 길 떠나는 그대에게 줄 물건이 없네 오직 뜰 아래 잣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대에게 주려니 때때로 마음에 묻어 두고 뼈에 새기라. ----------기암 법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삶의 고단함을 하소연하고 갈 길을 묻는다. 모두 저머다 사연이 있고 무거운 짐 이 있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바른 길을 일러주고 몇 마디 조언 밖에는 해 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사람에게는 그 말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도 되지 않고 무엇도 해 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서울 조계사에는 종종 정신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 법당을 기웃거리고 경내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소란 스럽게 하는 때가 있다. 스님 법문 중에 혼자 중얼거리며 법회를 방해하기도 하고, 법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위를 산만하게 해서 그들의 원성도 높다. 하루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직원들이 들락달락 하면서 정신 나간 여자가 법당에서 나오질 않는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몇시간 째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고집을 부릴 뿐 꿈쩍도 하지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도가 방해되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법당에 들어서니 과연 그녀가 혼자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한 쪽 구석에 서 있었다. 알록달록 색색옷을 겹겹이 껴입고 화려한 색깔의 모자와 신발, 비닐가방을 들고 있었다. 몸에서는 온통 악취가 풍겨 아무도 가까이 가려 하지 않고 그녀 또한 잔뜩 경계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보살님, 밖으로 나갑시다. 여기는 법당입니다." 대뜸 그녀가 나에게 쏘아 붙였다. "공주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 말에 놀라 다시 한 번 차림새를 훝어 보니 정작 공주 차림새로 꾸민 것 같다. 그녀는 공주였던 것이 다. 공주인 것을 몰라주는 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갑자 기 그녀를 밖으로 이끌 묘안이 머리 속에서 반짝였다. 내가 머리를 숙여 공손히 말했다. "공주님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이곳은 법당이니 밖에 사무실이 있으니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진작 그럴것이지" 그녀의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녀가 공주걸음 걸이로 법당 문을 나서니 직원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놀란 모습으로 서 있던 여직원에게 짐짓 장난 섞인 말투로 지시했다. "공주님 가방 좀 들어 주세요." 우리는 공주를 모시는 하인들 처럼 그녀를 밖으로 모셨고 겨우 사무실로 데리고 와 앉혔다. "차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나는 식혜아니면 안먹어." "법당에는 왜 자꾸 들어가세요?" "..............." "부처님께 기도하려고 법당에 들어가시나요?" "..............." 그 녀 앞에 식혜를 갖다 놓자 그녀는 식혜에만 집착할 뿐 다른 말에는 전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또 그 녀 손에 뭘 꼬 쥐고 잇어 자세히 보니 담배 한 개비였다. 또다시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리는 통 에 대화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다 그녀를 데리고 나올 때 써먹은 방법이 생각나서 넌지시 운을 띄웠다. "아유 공주님 얼굴도 이렇게 예쁘시고 자태도 훌륭하신데 몸에서 냄새가 나서 사람들이 싫어 하잖아요. 목욕 좀 하셔야 겠어요." 그 말에는 분명한 초점으로 내 눈을 응시한다. "돈이 있어야 목욕을 하지" 아주 또렷한 반응이었다. 외모와 돈에 관련해서는 분명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연속적 반응인가 궁금했다. " 제가 공주님한테 이만원을 드릴테니 목욕 좀 하세요" " 공주가 어떻게 이만원으로 목욕을 해, 십만원은 있어야 하지." " 무슨 십만원씩이나요? 저 그렇게 큰 돈 없어요. 그럼 못 드려요." " 그래, 그럼 이만원만 줘" ".........." 참 신기하지 않은가. 자신을 공주처럼 대우해 주는 것과 돈에만 정상적이고 긴 대화가 가능하고 그 외 에 어떤 물음이나 대화도 차단해 버렸다 법당은 기도하는 곳이니 자꾸 들어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어 야 할 텐데 그런 말은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고 혼자서 자기말만 중얼거린다. 나는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 뭔가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사람들을 정신병자나 미친 사람이라 부른다. 우리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놀리 고 무시한다. 그러나 우리가 미쳤다고 하는 그녀의 행동을 돌이켜 보며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 보자. 우리와 같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끄는 이 사회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잇는 제일의 가치, 온전한 정신으로 논리적인 사고와 육체활동을 하는 정상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 어쩌면 그것 또한 우리가 미쳤다고 하는 그 여인과 같이 외형적 미의 가치와 돈의 가치, 자만의 가치가 아닌가. 우리 도 유독 그런 것들에만 관심을 보인다. 돈만 있으면 대접을 받는 사회가 되었고 돈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삶을 파괴하고 존엄성을 짓밟아 버리는 그런 사회, 돈, 명예, 권력....그런 것들만 성취하고 손에 쥘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목 숨 쯤이야 얼마든지 헌신짝같이 취급해 버리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도 정신을 놓아 버린 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만 몰두하여 순간순 간 의식을 놓고 살거나 또 매 순간 그런 고착된 생각에 빠져 살아가는 것은 정신병적 징후를 가지고 살 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빗장을 걸고 사는 우리의 살림살이는 해가 갈수록 가난해질 뿐이다. 영혼의 가난은 결국, 공동 체 사회를 이끄는 구심점없는 국가적인 가난을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는 온통 정신 병적 증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사회적 현상이 앞으로 계속되어 가난하고 아픈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해 줄 대안을 찾지 않으면 언젠가는 공멸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앞에 붙여놓은 게송을 보며 가르침을 하나 얻어보자. 먼 길을 떠나는 지인에게 줄 것이 없다. 작 년보다 살림실이가 곤궁해진 탓이기도 하지만 선사가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 뿐이다. 물질은 없어질 것이나 가르침은 마음 속에서 계속 재생산 될 것이기 때문이다. '뜰 앞의 잣나무'라는 말은 선가에서 사용하는 화두 중의 하나이다. 뜰 앞의 잣나무, 한 수좌가 큰 스님 을 찾아가 도를 물으니 큰 스님 왈,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한 화두이다. 게송에서 선사 는 뜰 앞의 잣나무 한 그루를 길 떠나는 이에게 주었다. 이 화두는 이해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 육체를 받고 살고 있는 생명과 그 삶에 대해 큰 의문을 내고 잘 성장시키라고 준 것이다. '도라는 것,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해탈이 왜 뜰 앞의 잣나무인가' 하고 의심을 내는 것은 좁은 논리와 분석과 체계적인 의심으로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환하게 열린 사고 의식 속에서 직관적으로 풀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의문이다. 화두를 챙기는 것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허방한 세속의 가치에 끌려 다니지 않고 생명과 생을 이루는 본질적인 가치를 잊지 않는 방법이다. 먼 길을 떠나는 지인에게 선사가 준 선물, 혹은 삶의 멀고 고단함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스님이 줄 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이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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