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 금강경과 티베트 금강경의 차이(2)
전재성(한국 빠알리 성전협회 대표)
3)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의 차이
여래실견분에는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아주 유명한 "무릇 모든 상(相)이 다 허망한 것이니라(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 말의 범어 원문은 구조적으로 한역과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지만 둘다 문법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다른 현대어 번역에 있어서도 상이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문구이다. 이 말의 범어 원문은 아래와 같다.
"쑤부띠여, 상을 갖추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며 상을 갖추지 않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지 않습니다 (yāvat subhūte lakʃaɧasampat tāvan mɻʃā, yāvat alakʃaɧasampat tāvan na mɻʃeti)". 여기에 비해 서장의 대장경에서는 "쑤부띠여, 삼십이상호를 갖추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며 삼십이상호를 갖추지 않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지 않습니다(rab byor ji tsam du mtsan phun sum tshogs pa de tsam du brdzun no, ji tsam du mtsan phun sum tshogs pa med pa de tsam du mi brdzun te)."라고 되어 있다.
우선 구마라즙의 한역과 범문을 비교하면, "무릇 모든 상(相)이 다 허망한 것이니라(凡所有相 皆是虛妄)."라는 말은 범어의 "상을 갖추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며 상을 갖추지 않는 만큼, 그만큼 허망하지 않습니다."를 번역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의미상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기영 박사는 "수보리여, 특징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며,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라고 했으나 이 번역은 애매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것이다.
티베트의 금강경에서는 '쑤부띠여, 삼십이상호가 갖추는 한 허망하며, 32상호를 갖추지 않는 한 허망하지 않다.'라고 되어 있어 32상호를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상호를 갖춘 것'을 진제라고 하고 '상호를 갖추지 않은 것'을 속제라고 하면, '진제인 한 속제이며, 속제인 한 진제이다.'라는 그럴 듯한 대승교리가 생겨나지만 아무래도 너무 사변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카루파하나 교수를 만나 '쑤부띠여, 특징을 갖추는 만큼, 그만큼 혼란스러우며 특징을 갖추지 않는 만큼, 그만큼 혼란스럽지 않습니다.'라는 해석을 얻었으나 그 의미도 역시 애매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문장에 관해서 무착의 주석서에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투찌 박사의 언급대로 '사람들은 (보시 등의 공덕에 의해서) 부처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정을 논박하기 위해) 조건지워진 몸에 특징적인 완전성은 부정된다. 사실상 법신은 생성되지 않고 특징이 거기에 부과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말은 '상호를 갖추는 한 허망하고, 상호가 없는 한 허망하지 않다.'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4)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의 문제
만약 모든 상(相)과 상아님[非相]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니라(佛告須菩提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러므로 우리는 상 - 비상을 통해 여래를 보아야 합니다(hi lakʃaɧa -alakʃaɧatas tathāgato drāʃʍavyaɅ). 그러므로 우리는 상호와 상호가 아닌 것을 통해서 여래를 보아야 합니다(de ltar de bžin gśegs pa la mtsan daɥ mtsan ma med par blta'o).
이 부분에 대한 전통적인 한역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구마라즙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와 현장의 '여시이상비상 응관여래(如是以相非相 應觀如來)'가 있다. 그러나 범어 원문이나 한역만으로는 상-비상(lakʃaɧa-alakʃaɧatas; 相-非相)의 복합어의 해석 방법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므로 그 뜻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상이 상이 아닌 것을 보면, 여래를 본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범어에서 보다 정확히 번역했으리라고 추측되는 서장어역에서는 한역식으로 하자면, '여래를 상과 비상으로 보아야 한다(de bžin gśegs pa la mtsan daɥ mtsan ma med par blta'o).'라고 되어 있다. 콘즈의 영역은 전자의 해석(Hence the Tathagata is to be seen from no-marks as marks.)을 취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서장어역이 보다 정확하며, 하나의 현상을 볼 때 그 원인[因]과 계기[緣] 그리고 결과[果]를 동시성을 인식하는 인식방법론으로 밝힌 것이다. 이 문구에 대하여 조금 중도적이긴 하지만 2년 전에 하와이 대학에서 만난 카루파하나 교수는 '상의 비상을 통해서 여래를 보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5) 사구게(四句偈)의 문제
금강경 사구게라고 하는 것은 금강경에 나오는 슬로까라고 하는 게송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란 말은 게송이 아니라 단지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산문에 불과하다. 구마라즙역에서 첫번째 등장하는 사구게는 "만약 색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니 능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는 시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구게 다음에 범어나 서장어의 금강경에는 다른 사구게가 하나가 더 첨가되어 있다. 그 첨가되어 있는 사구게는 구마라즙역에는 누락된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에서 깨달은 님 보아야 하리. 스승들은 법신에서 현현하네. 법의 성품은 인식될 수 없으니 또한 아무도 파악할 수 없으리(dharmato buddhā draʃʍavyā | dharmakāyā hi nayakāɅ | dharmatā ca na vijñeyā | na sa śakyā vijānituɣ || )." 위의 범문시는 각 팔음절의 사행시인데 이를 사구게라고 하는 것이다. 그 시가 서장어로는 saɥs rgyas rnams ni chos ñid lta | 'dren pa rnams ni chos kyi sku | chos ñid śes par bya min pas | de ni rnam par śes(3) mi nus || 라고 칠음절 사행시로 번역된다. 이 시는 현장역에는 다음과 같이 "應觀佛法性 卽導師法身 法性非所識 故彼不能了"라고 등장한다.
그밖에 나머지 하나의 사구게의 범어나 서장어를 직역하면 이와 같이 "별들처럼, 허깨비처럼, 등불처럼, 환상처럼, 이슬처럼, 거품처럼, 꿈처럼, 번개처럼, 구름처럼, 이처럼 지어진 것 보아야 하리."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구마라즙역에는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이라고 되어 있어 유위법(有爲法)에 대한 비유에서 세 가지 비유가 누락되어 있다. 무착의 범본 주석에도 아홉 가지 비유가 언급되고 있어 아홉 가지의 비유가 정통적인 금강경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구마라즙의 한역본에 누락된 것은 첫번째 시행인 "별들처럼, 허깨비처럼, 등불처럼(skr. tārakā timiraɣ dīpo, tib. skar ma rab rib mar me daɥ)"에 등장하는 세 가지 비유이다.
콘쯔는 별의 의미를 네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별은 멀리 떨어져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모든 법도 소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우주의 광대한 허공에서 볼 때 별은 보잘것없어 없는 것과 같다. 셋째, 별은 태양이 없을 때, 즉 무지의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것이다. 넷째, 별이 유성을 의미한다면 순간적으로 존속하는 무상한 것이다. 세친은 주석에서 "태양이 빛날 때에 별이 사라지는 것처럼, 모든 정신적인 요소들은 올바른 인식이 실현될 때에 사라진다."라고 하고 있다.
허깨비는 현장역에는 예(欦)라고 했다. 이것은 눈병환자가 보는 허깨비를 의미한다. 현장은 번역에서 눈병환자로 하여금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게 하는 가리개 정도로 해석한 것 같다. 따라서 이 단어는 철학적으로 무지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어둠'이나 '백내장'을 의미한다. 세친은 주석에서 '백내장이 눈을 압도하는 것처럼 무지는 통찰력이 없거나 잘못된 통찰력으로 존재들을 압도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지한 자는 탐진치에 가려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여기서 등불은 비유에 잘 맞지 않는 인상을 주지만 등불은 연료가 공급되는 한 타오른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우리의 갈애가 남아 있는 한 타오른다. 또한 등불은 바람에 의해 꺼지기 쉬운 것으로 무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마라즙이 위와 같은 세 가지 비유를 누락시킨 이유는 별이나 허깨비나 등불이 무상한 환상을 들어내는 데 적절하지 않은 비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금강경 사구게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위에서 논한 세 개의 시를 말한다.
5) 서장 금강경의 말미의 진언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로 수보리와 여러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 인, 아수라가 부처님의 설하시는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며, 믿고 지녀 받들어 행하니라(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라고 구마라즙역의 한역 금강경은 끝난다. 범본 금강경에는 그 뒤에 "고귀한 끊음의 금강석인 숭고한 지혜의 완성은 끝났습니다(ārya-vajracchedikā bhagavatī prajñāpāramitā samāptā)."란 말이 추가되어 있고 서장본 금강경에는 다음과 같은 진언이 부가되어 있다: 'namo bhagavate | prajñāpāramitāye | oɣ na tad ti ta | I li śi | i li śi | mi li śi | mi li śi | bhi na yan | bhi na yan | namo bhagavate | pra ty aɣ pra ti | i ri ti | i ri ti | mi ri ti | mi ri ti | śu ru ti | śu ru ti | u śu ri | u śu ri | bhu yu ye | bhu yu ye | svāhā |.' 또한 이 진언 뒤에는 '금강을 능단하는 이 정수를 한번 염송하는 자는 금강경을 만구천번 읽은 자와 같을 것이다. 길상이 있기를 바란다(rdo rje gcod pa'i sñiɥ po 'di lan gcig bzlas pas rdo rje gcod pa khri dgu stoɥ bklags pa daɥ mñam par 'gyur ro. bkra śis).'라는 말이 부가되어 있다.
IV. 결론
구마라즙은 경전을 번역할 때에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압축해서 유려한 문체로 번역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러나 때로는 철학적으로 정교한 문장이라도 논리적으로 애매하거나 애매할 소지가 있으면 그 문장을 지나치게 압축하거나 다른 문장으로 대체함으로써 그 의취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것은 구마라즙 번역의 한역장경이 갖는 애석한 결점에 해당한다. 심지어 구마라즙이 번역한 반야심경도 여기서 거론했던 것과 흡사한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측면에서 학자들에게는 주의를 요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티베트 금강경은 범문과 일대응 대응되게 정교하게 번역했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복합어 등은 해석학적으로 쉽게 번역해서 그 의미를 명료화했다는 측면에서 불교 경전의 원전어 연구에 필수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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