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금강경 6장에는 “법문이란 뗏목과 같은 것이라고 깊게 아는 자들은 법들도 반드시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들이 아닌 것임에랴(kolopamam dharma-paryāyam ājānadbhir dharmā eva prahātavyāh* prāg eva adharmā, 法尙應捨 何況非法)”라는 구문이 나타난다. 이와 동일한 빠알리어 구문이 중부 제 22경(Alagaddūpama-sutta)에 다음과 같이 그대로 나타난다.
“오 비구들이여, 설해진 법은 뗏목과 같은 것이라고 깊게 아는 자들은, 법들도 역시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법들이 아닌 것임에랴.”<<kullūpamam vo bhikkhave dhammam desitam ājānantehi dhammāpi vo pahātabbā pageva adhammā.>>
여기서 본 경의 산스끄리뜨본과 빠알리어본의 주 차이점은 산스끄리뜨 본에서는 ‘다르마빠리야야(dharma-paryāya)’로 ‘부처님의 법문’으로 표현되었고 빠알리어본에서는 ‘담맘 데시땀’으로 ‘설해진 법’이라고 표현된 것이다.
이 중부 제 22 Alagaddūpamasutta(M22, 뱀의 비유경)는 아주 중요한 경 중의 하나이다. 독수리 사냥꾼의 아들이었던 아랏타라는 비구가 삿된 견해를 주장하자 세존께서 이를 책망하시면서 뱀의 비유와 이 뗏목의 비유를 설하시고서 6가지 잘못 된 견해를 척파하고 계신다.
어쨌든 비법을 이미 버렸고 법을 따라 수행을 했으면 법에도 집착을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간곡하신 말씀이다. 아·인·중생·수자의 네 가지 산냐에 집착하지 말 것을 거듭 설하고 법상(法相, 다르마산냐)에도 집착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잘 설해진 부처님의 법이 부처님 당시에도 이미 하나의 산냐 즉 관념, 이념, 인식으로 이해되고 있어서 부처님께서 직접 이런 산냐를 가지지 말고 버리라고 고구정녕히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26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가 법에 대한 거창한 산냐를 세우고 집착하여 서로 다투고 비난하고 매도하고 싸우는 것은 그 뿌리가 참으로 깊다고 하겠다.
산냐가 있으면 그것을 국집하고(grāha) 그것을 법으로 진리로 세우게 된다(dr*s*t*i, 見). 다시 말하면 산냐가 자리잡게 되면 그것은 강한 의도(sankhāra, 상카라, 行)를 수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진리, 그 신(神)을 수호하기 위해서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휘둘러 왔으며 지금도 얼마나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가.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의 우리 불교에서는 법은 사라져버리고 비법이 난무하는 것 같아서 이제 정말 법이 무엇인지, 정말 부처님은 어떤 가르침을 설하셨는지 초기 부처님의 생생하신 가르침을 찾아서 온갖 힘을 다 모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법을 법상(산냐)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법을 법 그 자체로 내 삶의 현장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발제자가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이 부처님의 가르침(Dhamma)이든 물심의 현상(dhamma)이든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삶 속에서 매순간 확인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놓쳐버리면 법은 모두 법이라는 산냐가 되어버리고 만다. 발제자는 이렇게 ‘지금 여기(현법)’ 내 속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법(현상)을 관찰하고 확인 것이야말로 산냐를 척파하고 산냐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부 143경 등에서
“과거를 되새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닥치지 않았다
현재에 [일어나는] 현상[法]을
[매순간] 바로 거기서 통찰하라”
atītam nānvāgameyya, nappat*ikankhe anāgatam
yad atītam pahīnan tam, appatta~n ca anāgatam
paccuppanna~n ca yo dhammam, tattha tattha vipassati.
고 강조하신다. 여기서 ‘통찰하라’로 옮긴 원문은 다름 아닌 위빳사띠(vipassati)인데 위빳사나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동사이다. 지금 여기를 놓쳐버리면 산냐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매순간 통찰지가 현현하는 것이야말로 隨處作主 殺佛殺祖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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