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6 07:26 손석춘
2009/03/16 07:26 손석춘
매운바람 불어 봄 아닌 봄이었다. 을씨년스런 주말에도 범국민추모대회는 열렸다. 칼바람으로 촛불이 자주 꺼졌어도 유족과 참가자들은 그때마다 다시 살렸다. 추모대회 내내 꺼지지 않고 촛불은 타올랐다.
참사 55일이 지났다. 유족들이 납득할 만한 진상 규명도, 참혹한 주검의 보상도, 정부의 진솔한 사과도 전혀 없다. 참사 현장에는 다시 ‘철거 용역’이 들어왔다.
참사 현장에 다시 들어온 ‘강제철거 용역’들
강제 철거에 나선 용역들에게 유족들은 항의했다.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고.
그들은 살천스레 답했다.
“작업을 하루 하지 않으면 손해가 얼마인지 아쇼?”
그래서다. 유족들은 추모대회에서 절규했다.
“정녕 사람의 목숨보다 개발이익이 중요한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산 4구역에서 죽어야 이 살인개발을 멈출 것인가?”
추모대회에 참여한 한 시민이 든 푯말은 상황을 압축해서 드러내주었다.
“이명박의 불도저는 국민의 피를 먹고 달리나?!”
추모대회를 주관한 용산범국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 인권운동가. 경찰의 체포를 눈앞에 둔 그에게 다시 감옥 가는 길은 고단하지 않다. 박래군 위원장은 내게 쓸쓸하게 말했다.
“시민들이 빈민의 문제로만 철거민 참사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는 세입자로 호프집과 식당을 운영하시던 분들이 있습니다. 용산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중산층도 결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다는 명백한 진실입니다.”
중산층도 안정된 삶 누릴 수 없다는 게 교훈
그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에 대한 시민들의 잘못된 인식에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끝까지 철거민들을 책임지는 헌신적 모습에 감동했다.
그렇다. 냉철히 톺아볼 때다. 왜 일까? 왜 적잖은 시민들이 용산 철거민 참사 앞에 무덤덤할까.
참사 직후부터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가 ‘전철연이 주도한 도심테러’ 따위로 몰아가서 아닐까. 그 뿐인가. 전철연의 ‘뒷돈’ 의혹을, 남경남 의장의 땅 투기 의혹을 앞 다퉈 제기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사실 확인도 없이 검찰과 경찰이 흘리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기한 저들이 철거민들의 억울한 참사에 ‘양비론’을 확산시킨 ‘주범’ 아니었을까.
언론의 전철연 마녀사냥으로 ‘양비론’ 퍼져가
기사와 사설로 남경남 의장과 전철연의 명예를 마구 짓밟은 저 부자신문들이 철거민들을 두 번 죽이고 끝내 추모촛불마저 죽여 온 게 아니던가.
그 결과다. 이명박 정권은 김석기 사퇴를 두고 되레 생색내고 있다. 울부짖는 유족들 사이로 ‘이명박 불도저’는 다시 강제 철거에 나섰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과 반민중성을 새삼 개탄하고 싶지 않다. 다만 냉철히 짚고 싶다. 용산 철거민들의 참혹한 죽음을 우리가 잊어갈 때, 저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얼마나 업신여길까. ‘이명박 불도저’가 더 사고 치기 전에 막을 길은 정녕 없는 걸까. 짙은 황사처럼 숨 막히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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