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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쪽 패밀리에 박연차도 포함시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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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상념이 교차합니다. 망상까지도.
왕조가 끝난 지도 백년이 넘었고, 반상으로 표현되는 귀족제도가 폐지된 지도 역시 백년도 훌쩍 넘었습니다. 민주공화국인 이 나라에는 특권계급이나 문벌, 가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제 또한 나이 40이 넘고, 피선거권만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쿠데타만 아니면 되고, 국민의 선택만 받으면 됩니다. 대신 5년이 끝나면 단 1분 1초도 머뭇거릴 수 없습니다. 제대 명령을 받은 사병들처럼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마련해 두고 있는 동방예의지국입니다.

대통령의 가족은 그저 사적인 의미의 가족일 뿐입니다. 대통령의 형제도 그저 가족법상의 가족일 뿐입니다. 패밀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패밀리가 일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의 패밀리는 못됩니다. 전통적 의미의 가족, 그렇습니다. 그 가족일 뿐입니다.



노건평 씨의 ‘서로 대통령패밀리까지는 건들이지 않도록 하자. 우리쪽 패밀리에는 박연차도 포함시켜달라’는 말이 하루 내내 가슴을 후볐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7대 대선이 끝나고 불과 며칠 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민주당 대선캠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십여명 내외가 모인 일이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패배한 후보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돌아가며 패배에 대한 개인의 분석을 말하는 자리였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내 탓이고, 우리 탓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후보 탓이라고도 했습니다. 주장의 요지는 ‘권력에 대한 자기통제, 내부견제’가 없었다 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생각은 유효합니다.

잘못해서 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잘 못하고, 정책을 제대로 만들어 펼치지 못해서 졌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되어 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어’하며 그냥 바라보고만 있거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체면만 지키고 있었거나, 나 혹은 우리 예외주의에 빠져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뻔히 알고도 고치지 않았습니다. 여론이 공론은 못됩니다만, 바닥을 치는 민심을 보고도 우리 탓보다는 이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시민 탓을 했습니다.  야당 탓을 했고, 언론 탓을 했습니다. 우리를 먼저 되돌아보고, 우리가 먼저 예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색맹이었습니다. 이것이 패배의 원인이요, 비극의 근본이었습니다.

개혁성에 바탕을 두고, 정부와 대통령의 전횡과 미숙을 비판한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그런 축에 속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당정일치와 일사불란이라는 프레임 아래 이런 목소리는 ‘지방 방송’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튄다’는 말로 억제되었습니다. ‘상업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아야만 했습니다. ‘강경반미자주’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생래적으로 비판을 봉쇄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편승한 일부 여권 정치세력들은 마치 이이제이(以夷制夷)처럼, 도리어 보수언론과 손잡고 개혁과 내부견제의 목소리를 억압하곤 했습니다. 견제와 균형, 그리고 개혁을 외치던 이들은 차츰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민생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은 좋다는 식이었습니다. 권력은 늘 그러하듯 하나의 성역이 되었고, 민심은 차근차근 멀어져갔으며, 지방선거에서 대선으로, 다시 총선으로 연패는 이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권력의 자아비판, 그리고 내부의 견제와 균형입니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고 만다’는 정치학의 고전적 명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렇다고 참여정부의 대통령 권력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가장 좁은 의미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행정부와 의회의 다수를 차지했던 여당이라는 대립축의 관점에서,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당정관계라는 차원에서 균형의 원리는 결코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서만큼은 상대적이라는 말보다는 절대적이라는 용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 내부의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는 여느 정권 못지않게 취약했습니다. 권력내부의 자기통제 장치는 잠들어 있었고, 역시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도 절차적 측면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와서 민정기능을 비판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느 시대인들 민정의 돋보기가 내부기망 내지는 내부아첨을 향하기보다 엉뚱하게도 내부비판 쪽에 들이대어 있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이 글에 대한 오해 여부를 떠나 다시 강조커니와, 내 탓이요 당시 여당 정치인 탓입니다.
그럼에도 노건평 씨의 발언은 단순한 사인의 발언일 수 없고,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획득할 수밖에 없기에 이제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는 반성적 고려에서, 이 모든 문제가 우리 모두의 탓이고 내 탓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범민주개혁진영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물론, 꼭 이렇게 말했을까. 정말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본질적 의문도 있습니다. 혹여 언론플레이는 아닐까 하는 근심도 있습니다. 더구나 한나라당 현역 의원의 전언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일 사실이면 어떡하죠.

스스로 특권계급을 창설하려는 의도까지는 아니었겠지요. 굳이 이해하자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런 의미였겠지요. 그리고 국가의 명예와 위신이라는 측면에서 ‘털어서 먼지내는 식’의 수사는 자제되어야만 하고, 최소한의 예우는 지켜져야 한다 이런 의미일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왜 이 발언이 전직 대통령의 형님을 통해서 있어야만 했냐고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변론의 문장을 만들어낼 자신이 없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레더 전 독일총리의 동생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로타 포셀러라는 동생입니다. 2002년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관광안내원으로 새로운 일을 찾았다는 내용이 보도된 적이 있지요. 그 전까지 그는 총리의 동생이면서도 하수구 청소부 등으로 일했고, 실직한 뒤 실업수당으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국적 현실과는 다른 상황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이 발언을 보도한 기사를 보고 역시 들었던 생각은, ‘참 순진하기도 하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과연 전직 대통령의 패밀리와 현직 대통령의 패밀리 간에 ‘보이지 않는 약속’이 성립되고 계속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약속은 유효할까요. 옛날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불가침 협정처럼 그런 식의 대등관계나 신사협정이 가능한 건가요. 무기평등 원칙이 존재할 형편이 되나요. 처음부터 약속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준수를 담보할 만한 아무런 책임장치도 없지 않나요. 법률가적 시각에서 정리하자면, 원인무효인 약속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무리한 청약에 불과했던 셈이지요.

탈권위를 누구보다도 강조했고, 모든 반칙과 특권을 타파하겠다던 행정부였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더욱 신뢰했고, 그 신뢰에 대한 실망 또한 클 것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모든 문제가 대통령과는 ‘법률적으로’ 무관하다는 데에 방점의 여지를 남겨두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믿음입니다. 한편 지지했던 우리자신들에게 스스로의 신뢰일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지근거리에 있던 일부 정치인들의 문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믿고 싶습니다.

21세기의 현대가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다들 인정할 것입니다. 한탄하자면 도덕의 불감입니다. 법 앞의 색맹증입니다. 이런 둔감이 범개혁진영의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정치보복에 대한 염려를 넘어 과잉사법에 대한 비판을 넘어, 패밀리라는 카테고리에 어떻게 노 씨 성도 아닌, 노 씨 사위도 아닌, 박연차 씨를 포함시켜달라고 했을까요. 박연차 씨가 어떻게 전직 대통령의 일가에 포함될 수 있는 거죠. 대통령 패밀리가 가령 치외 법권 지역이라고 합시다.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동네인가요. 사법피난처가 될 수 있나요. 수많은 망상이 교차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주변에 대한 최소한도의 예우는 법이전의 문제일 것입니다. 도덕적 권위에 대한 예절일 것입니다. 우리나라건 다른 나라건 법적 차원을 넘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도의일 것입니다. 입으로 약속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서로에 대한 양해로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굳이 확인하고 과장할 필요가 없었던 일 아니었나요.

마지막으로, 지극히 당연하게도 정치보복은 없어야 합니다. 후임 권력이 전임 권력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먼지 털 듯 청소하는 한국현대사의 비극도 이제는 끝장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작업이 도덕성에 바탕을 둔 참여행정부의 몫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 주변에 대한 사법심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한 가족으로서 정치보복에 대한 염려, 형사사법과잉에 대한 비판과 걱정은 충분히 이해될만 합니다. 그 피로감,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연차 씨도 패밀리에 포함시켜달라는 말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노건평 씨의 말이 아니길 바랍니다. 차라리 추부길 씨가 만들어낸 말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말이 와전되어 언론에까지 이어졌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그 와전된 언론을 보고 이 글에까지 이르렀음을 자인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까지도 제 희망이 그러한 듯합니다. 여전히 덧없는 이기적 속성으로 내편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자백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나 덜 비판하고 덜 삿대질하고, 가능하면 회피하고 싶다는 것 또한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망합니다. 어느 때인가 노건평 씨의 이 발언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만들어낸 생각과 자음과 모음이 마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흩날리기를 기원합니다. 어쩌면 그 길만이 못내 지지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할성싶기 때문입니다. 슬픈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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