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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옮기기 7회(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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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정각의 사상적 내용은  앞에 든 『자설경』의 게에 의하건대 연기의 법칙이었다고 한다. 그 상세한 것은 뒤로 미루겠으나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관계성의 법칙이요, 相依性의 법칙이며 원인 .결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법칙성의 것이라면 그것을 사실에 맞추어 보아서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검토해야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의 몇일 동안을 붓다는 이런 음미로 소일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일체의 존재는 남김없이  이 법칙에 의지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다시 이것을 인간 존재에 적용시켰더니 그것 역시 환히 풀렸다. 이리하여 '지혜의 즐거움'은 마치 샘물처럼 끝없이 솟구쳐 나왔던 것이겠다.

 

그러나 이런 어느날 붓다의 가슴 속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불안이 그림자를 나타냈다. 경전은 그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으로 존경할 데가 없이 사는 것은 괴롭다. 나는 어떤 사문이나

또는 바라문을 존경하고 의지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일까?"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다. 특히 후세의 불교인들의 상식에서 본다면 정각을 성취한 붓다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 것이다. 왜냐면 그 말이 뜻하는 바는 존경하고 섬길 사람이 없는 생활은 괴롭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이 경(『상응부경전』 6:2공경 한역 동본,『잡아함경』 44:11 존중)을 문제 삼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잘 음미해보면 거기에는 중대하고 미묘한 계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종래의 불교인들은 그것을 바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람은 이 세상에 혼자 살아가지 못한다. 물질 면에서도 그러러니와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사랑, 동정, 공명, 이해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쓸쓸해지고 말 것이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도 혼자서라면 처음부터 존재할 의미가 없어진다. 비록 어떤 기막힌 사상이 어느 사람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해도 그것이 남에게 표현 전달되고 이해되지 않는 다면 , 마침내 그것은 무와 같은 것이 될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표현에 의해 객관화됨으로써 누군가에게 이해될 때 비로서 사상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의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제 붓다는 가리는 것이 없는 눈으로 일체 만유의 진상을 꿰뚤어 보았다. 그것이 정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그 한 사람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을 뿐 이다. 이른바 내중(내적체험)이다.

 

그 내중을 가만히 맛보고 고요한 즐거움에 잠기면서도 그는 갑자기 이상한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 자기와 같은 사상을 지니고 있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에게 찾아가서 함께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는것을 어쩌랴.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라고는 스스로 깨달은 법(진리)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여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는 것, 그것만이 인간 고타마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길이었다. 이에 전도의 문제, 즉 설법의 문제가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운문을 되새겨 주시기 바란다.

거기에는 '고생 끝에 겨우겨우 얻은 이것을 어이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라는 구절이 있다. 붓다는 설법의 문제를 앞에 놓고 우선 주저했음이 분명하다. 이것 또한 후세의 불교인들의 상식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붓다가 중생제도를 위해서 출가했다고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와 결과를 엇바꾸고 있음이 분명하다.

 

붓다가 출가를 감행했을 때 , 그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 것은 분명히 자기의 문제, 자기의 고민이었다. 최근에 정밀한 연구로 밝혀진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을 위해'라는 문구가, 바꾸어 말하면 중생제도를 목적으로 표방하는 말이 비로서 경전에 나타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라는 점이다. 최초의 설법이 베풀어지고 제자들도 이미 60명으로 불어나 전도를 위해 그들을 처음으로 떠너 보낼 때 붓다의 말씀 속에 이 구절이 비로서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출가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드디어 크나큰 해탈에 이르렀을 때도 아짖 이 문제는 상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갑자기 설법의 형태로서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니, 붓다의 마음이 먼저 부정 쪽으로 기울어졌던 것도 당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그 게의 뜻이기도 하다. 같은 경에서는  또

 

그때 세존의 마음이 침묵으로 기울고 설법으로 기울지는 않았다.

 

고도 말하고 있다.

 

그 주저함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앞에 든 운문의 후반 부분의 내용이다.  

만약 법을 설한다 해도 사람들이 과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가 깨달은 사상의 내용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세상의 상식을 뒤 엎은 그것,

深甚(심심)미묘 정세하니 어찌 알리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도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히고 격정과 무명에 덮혀 있다. 그렇다며ㄴ 내가 기껏 설해 보았자 나만 지치고 말리라. 그것이 붓다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설법이 중요한 문제가 되면서도 이렇게 붓다의 마음은 쉽사리 그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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