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학문이나 사상의 세계에서는 스승도 또한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제자가 언제까지나 '스승의 제자'로서 멈추어 있어서는 사상의 새로운 전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타마는 차례차례 어느 스승이나 버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혼자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 가고자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것 또한 보리수 밑의 정각에 이르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각을 향한 길이 곧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가로 놓여 있었다. 스승의 곁을 떠난 고타마는 꽤 오랫동안 고행에 의해 목적을 달성해 보려 애썼다. 고행이란 육체를 약화시킴으로써 정신의 힘을 높힐 수 있다는 사고 방식에서 나온 수행이다. 고대에는 어느 민족이나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이 인도인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고질이라해도 좋을 것이어서 현재도 이러한 병폐는 그들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는 여러가지 고행을 했다. 또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것을 행했다. 그러나 뛰어난 경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손발은 겨릅처럼 바짝 여위어 갔다. 뱃가죽은 등에 닿을 정도 였다. 그래서 그는 '깨달음에 이르는데는 아마 다른 길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고행이 정각에 이르는 정당한 방법일 수 없음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는 드디어 고행을 버리고 우유로 쑨 죽을 먹고 또 밥도 먹었다. 그것은 매우 중대한 단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행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고대 사회에서 그 불합리성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상상조차 못할 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지금껏 그에 대해 찬탄에 마지 않던 사람들도 그가 고행을 중지 한 것을 보고는 타락해졌느니 사차해졌느니 하여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그런속에서 그는 다시 한번 체력을 회복하여 마가다국의 여기저기를 순회한 다음 우루베라의 네란자강 기슭에 이르러 그 보리수 밑에 풀을 깔고 앉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리에서 크나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그가 깔았던 풀을 '길상초'라고 부르고, 그 앉았던 자리를 '금강좌'라 일컬었다. 그리고 그가 거기이 앉은 다음부터 대각을 성취하기까지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미망 즉 가려져 있던 것들은 이미 차례차례로 제거되고 말아, 그 자리에 앉은 사카족의 아들 고타마의 눈을 가리는 것이라고는 이제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오래된 경전은 흔히 이 사실을 '눈이 생기고 지혜가 생겨 '라고 표현하고 있거니와 이리하여 가려진 것들이 제거됨으로써 활짝 열린 눈 앞에 존재가 그 진상을 드러내 보일 준비는 이미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저 결정적인 순간에만 넋을 빼앗겨서는 안 되리라. 오히려 눈을 돌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어떠한 장애물이 그의 눈으로 부터 제거되었는지를 고요히 생각해야 할 줄로 아는바이다.
(3) 보리수 밑에서의 생각
고생 끝에 얻은 이것을
어이 또 남들에게 설해야 되랴.
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세상의 상식을 뒤 엎은 그것
심심 미묘하니 어찌 알리오
격정에 메이고 무명에 덮힌 사람은
이 법을 깨닫기 어려우리라. [『상응부경전』 6:1 권청(勸請) ]
보리수 밑에서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도 붓다는 얼마 동안을 그 고장에 머물렀다. 그 기간은 아마 몇 주일에 지나지 않았으려니와 그 동안 붓다의 가슴을 오고 간 생각 중에는 참으로 중대하고 흥미 진진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첫째 것은 깨달은 내용을 마음 속에서 반복 음미하여 정리해 간 일이다. 그 때 붓다의 가슴 속을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지혜의 즐거움'으로 꽉차 있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사람으로써 맛 볼 수 있는 즐거움 중에서 최고의 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역시 지혜에서 오는 즐거움일 터이다. 그것은 제한없는 즐거움이요, 순수한 즐거움이요, 또 고요한 즐거움이다. 경전은 그당시 붓다에 대하여
'처음으로 정각을 성취하신 세존; 붓다를 일컫는 열가지 이름 중의 하나.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뜻.) 께서는 우루벨라의 네란자강 기슭에 있는 보리수 밑에서 결과부좌(오른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는 자세)하신 채, 이레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맛보시면서 앉아 계셨다.' 고 기록하고 있다.
그 고요한 즐거움은 이 담담한 표현의 행간에서도 배어 나오는 듯 느껴진다.
이야기옮기기 8회(09.3.6) (0) | 2009.03.06 |
---|---|
이야기 옮기기 7회(09.3.5) (0) | 2009.03.05 |
이야기옮기기 5회 (09.3.3) (0) | 2009.03.03 |
이야기옮기기4회(09.3.2) (0) | 2009.03.02 |
이야기옮기기-3회(09.3.1) (0) | 2009.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