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전체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산냐가 집착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다시 견해로 고착이 된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에서 산냐 그 중에서 특히 법에 대한 산냐가 있으면 (물론 법이 아니라는 산냐도 포함해서) 그것은 아·인·중생·수자 등의 실체에 대한 집착이 되고 만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본 경에서는 수 없이 반복해서 법에 대한 산냐를 가지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집착이 생기면 이것은 나중에 다시 아·인·중생·수자 등의 실체가 있다는 견해(dr*s*ti, Pāli. dit*t*hi)로 자리잡는다고 나타나고 있다.(15-2장 8번 주해 및 31-1장 1번 주해 참조)
본 경에서 처음에 아·인·중생·수자의 산냐(s~nj~nā)가 설해지고 이것이 다시 6장, 9장, 25장에서는 아·인·중생·수자에 대한 집착(grāha)이라는 술어로 발전이 되었다가 여기서는 다시 15장에서 dr*s*tika라는 ‘견해를 가진 자’라는 술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고 31-1에서는 “수보리여, 어떤 자가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래는 자아라는 견해를 설하셨다. 여래는 중생이라는 견해, 영혼이라는 견해, 개아라는 견해를 설하셨다’라고 한다면 참으로 그는 바른 말을 한 것인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서시여. 그는 바르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설하고 있다. 산냐가 집착으로 이 집착이 다시 하나의 견해로 정립이 되어 가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초기경인 숫따니빠따 4장에서도 이 상과 견을 극복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계신다.
초기불교에서 볼 때 산냐는 오온 가운데서 세 번째이다. 이 산냐가 집착으로 발전하면 그 집착은 네 번째인 행(行, sankhāra, Sk. sam*skāra, 의도적 행위, 반응, 반작용)이 된다. 즉 산냐는 아직 의도적인 행위로는 발전되지 않은 마음속의 관념이나 이념 인식 개념 등이라 하겠는데 이 이념 이상 관념 개념 인식 등에 집착을 하게 되면 grāha(執)라고 하며 강력한 의도(상카라)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이라는 산냐가 생기면 내 집, 남의 집의 분별이 생기고 그 분별은 즉시에 엄청난 집착으로 발전한다. 내 집에 대한 집착, 내 집이 없는 사람은 거기서 오는 비애감이나 열등감을 일으키게 되고 … 참으로 이렇게 중중무진으로 얽히고 설키어서 중생의 삶은 순간순간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미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산냐다. 그런데 이 미인의 산냐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은 그리움, 사모, 애욕, 애정, 음심 등의 의도적인 행위로 발전하게 되고 그래서 미인이라는 산냐에 강한 착이 붙게 된다. 그런 과정과 경험을 거쳐서 미인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들 산냐와 집착과 견해의 셋은 동시적으로 생기고 작용한다. 산냐를 다만 산냐로 보고 거기에 집착이나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거기에 속지 않게 되고 그 산냐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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