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야기옮기기 16회(09.3.14)

본문

그 경은 붓다가 카필라바스투의 성 밖, 니그로다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에 계신데서 시작된다. 마침 그 때 사캬족 사람들은 새 회당을 지은 참이라 , 그 낙성식에 붓다가 꼭 오셔서 처음으로 입장하는 이가 되어 주십사고 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쁘게 응락한 붓다께서는 낙성식에 참석하시고 밤에는 그 회당에서 늦게까지 사캬족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그 다음이 앞에 인용한 대목이거니와, 붓다는 피곤했던 것일까. "나는 등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설법을 아난다에게 맡기신 다음, 물러가 주무셨다는 것이다.

 

"나는 몸이 아프다." 붓다의 이 말씀은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절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어떤 기쁨같은 것을 느꼈던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붓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붓다는 인간의 숙명이라고나 할 생노병사를 두 어깨에 걺어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도 감행한 것이기는 하였다. 그것 역시 인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이 겠다. 그러나' 생로병사'라고 할 때 그것은 어느 정도 추상화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에 의해 느껴지는 붓다의 인간성 역시 추상성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붓다는 '나는 몸이 아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은 매우 애처롭지만 , 그것에 의해 나는 직접 붓다의 육신에 접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이상한 체험이었다.  그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붓다의 모습이 이 일절에서의 감명 이래 나에게는 훨씬 친근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붓다의 사상 또한 왜 그런지 아득한 저 쪽에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붓다의 현신(육체를 지닌 현재의 몸)에 관한 경의 서술이 이 이상한 매력으로 나의 관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테면 [상응부 경전]22:87에 보이는 바카리에 관한  대문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붓다가 라자가하의 교회에 있는 베루바나 정사에 머물고 계시던 때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때 한 비구가 어느 옹기장이 집에서 앓고 있었다. "바카라'가 그의 이름이었다. 그의 병은 매우 중해서 도저히 회유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간호해 주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할 몸이다. 만일 붓다를 다시 한번 뵈옵고

인사 드릴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그러나 이 몸으로  그 정사

까지 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베루바나에 가서 여기까지

행차해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붓다께 여쭈어 주었으면 고맙겠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붓다는 기꺼이 옹기장이 집을 찾아 갔다. 바카라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었다.

 

"바카라야, 고요히 누워 있어라, 일어날 필요는 없다."

붓다는 굳이 그를 눕게하고 그 머리말에 앉았다. 바카리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붓다여, 저는 가망이 없나이다. 병이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니,

얼굴을 우러러 뵈오면서 붓다의 말에 정례 (이마를 땅에대는 경례,최대의 존경의 표시)하도록 하여 주시길 바라나이다."

 

그때 붓다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씀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그만두라 바카라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바카리야, 법(진리)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리라."

 

그것은 참으로 엄한 말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기에게 예배하겠다는 청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파악하려 힘쓰고 진리만을 의지함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불교의 본질이 엄존하다고 하여야 되리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썩을 몸을 보아 무엇하겠는가?'고 한 붓다의 말이 나에게는 이상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또 이를테면 장부  경전16이나 [대반열반경]은 노쇠한 붓다에 대해 이런 서술을 남기고 있다.

 

"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팔순이 아니냐? 비유하자면 아난다여, 낡은 수레는

가죽끈으로 얽어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 끈으로 얽어맨 수레 같으니라."

 

이 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붓다의 마지막 전도여행과 그 고요한 죽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한역에서는 [유행경]이라고 했고, 팔리어 동본에는 [대반열반경]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크나큰 죽음의 경'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그것에 의하면 라자가하에서 마지막 여행 길을 떠난 붓다는 갠지즈강을 북으로 건너 베사리 근방인 베루바나 마을 (竹林村)에서 우안거(인도에서는 장마철이 길므로 이 동안은 외출을 금하던 것 4월16~7월15일 까지 석달동안) 에 들어 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붓다는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냄으로써 가까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래간만에 집 밖으로 나가 응달 쪽에 앉아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던 참에, 아난다가 오는 것을 보고하신 말씀이 이 일절이었다.

'아함경 > '아함경이야기'-마스타니 후미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야기옮기기 18회  (0) 2009.03.16
이야기옮기기 17회  (0) 2009.03.15
15회 이야기옮기기(09.3.13)  (0) 2009.03.13
이야기옮기기 14회  (0) 2009.03.12
이야기옮기기-13회  (0) 2009.03.1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