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주 중요한 측면은 위에서 열거한 예류과를 증득한 사람의 특징을 들 수 있겠다.
첫째, 유신견(有身見, 개아가 있다는 믿음, sakkāya-dit*t*hi)을 극복한 경지이다. 즉 오온을 나라고 여기는 20가지 견해를 초월한 경지가 예류과의 특징이라 하겠다. 자아니 본성이니 불성이니 대아니 마음이니 자성이니 성품이니 영혼이니 생명이니 아뜨만이니 뿌루샤니 지와니 브라흐만이니 하여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품고있는 모든 본질론적, 존재론적인 발상을 뛰어 넘어야 비로소 예류과에 들게 된다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좀 극단적인 표현인지 몰라도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과연 한국 불교에 예류향이라도 되는 사람은 몇 사람쯤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둘째, 회의적 의심(vicikicchā: 불·법·승·수행의 필요성·연기법 등을 회의하여 의심하는 것)을 극복해야만 예류과의 경지가 된다는 말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특히 연기법을 철견하여 세상의 어느 경우 어느 경지·어느 가르침·어느 학문·어느 사상·어느 종교를 대하여도 지혜(반야)로써 걸림과 막힘이 없이 본질을 꿰뚫어 봐야만 참다운 불자의 반열에 든다고나 할 수 있겠다.
셋째, 계금취(戒禁取, 계율·의식에 대한 집착, silabbata parāmāsa, 형식적 계율과 의식을 지킴으로써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는 것. 특히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의례․의식(rites and rituals)만이 옳다고 집착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가 따르는 의식, 내가 따르는 스승, 내가 따르고 지키는 서원이나 계율을 통해서만 청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극복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참 같은 불교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너무도 다른 전통·체계·의식·수행법 등등을 보고 있다. 이런 모양에만 착(着)하여 너는 소승 나는 대승, 너는 이단 나는 정통이라는 식의 엄청난 고정관념의 늪에서 헤어나는 것이 참된 불자의 도리라 하겠다.
금강경의 주제가 산냐이니 덧붙여 사족을 붙이자면, 우리는 무엇이 대승이고 무엇이 소승인지 그 출발점은 어디에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개념이 정착되고 발전되어왔는지 깊이 고뇌해보지도 않고 그냥 대승․소승이라는 산냐에 빠져서 장님 줄서기 식으로 관념을 전승해온 측면이 강한 것 같다. 불교가 역사를 인정하는 이상 분명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있고 그것이 2500여 년을 남방·북방에서 발전, 변천하면서 대승·소승 내지는 상좌부·대승으로 변천되어 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이제 남북을 논하고 대·소승을 논하는 역사의 소음에서 벗어날 시절이 온 것이 아닐까. 세계의 뜻있는 스님들이나 신도들, 불교학자들이 지금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혜로운 주의를 항상 기울이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그를 실천하며, 무엇보다도 편견 없는 태도를 갖추어야 역사의 소음을 헤치고 부처님의 원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역사의 소음에 길들여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참된 불자의 도리로서 설하셨다는 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나는 유신견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산냐놀음을 극복했는가, 나는 회의적인 의심을 극복했는가, 나는 나의 전통에 속하는 법요와 의식과 가르침에만 집착하여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참으로 진지하게 돌이켜보고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다시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다른 가치체계, 다른 종교는 그만두고 세계의 여러 불교현상을 접할 기회를 가진 역자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보다는 이러한 자기 나라의 불교[문화]전통만을 국집하여 근본을 놓치는 여러 경우들을 보고서 안타까운 마음이 참 많다. 영가 현각 스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직절근원(直切根源)은 불소인(佛所印)이요 적엽심지(積葉尋枝)는 아불능(我不能)”이라고. 근본을 바로 자름은 부처님이 인치신 바이요, 이파리 모으고 가지 찾음에 나는 능하지 못하다는 스님의 가르침이 참으로 깊이 와 닿는다.
과학이라는 방법론을 개발한 현대인은 참으로 어느 시대보다 올바름[正]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역자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불자들은 어느 시대의 불자들보다 무엇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일까를 깊이 사유하고 실천궁행하는 기틀을 튼튼히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소승이라는 대롱을 치워버리고, 그리고 불교 역사를 통해서 무수히 입어온 법에 대한 산냐[法相]의 갑옷을 열어제치고 부처님이 고구정녕히 설하신 근본가르침을 사유하고 음미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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