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각은 어떤 쓰임새로 가람 앞에 서있는 것일까?
고려시대는 평지에 사찰이 있으므로 대웅전 뒤 편에 보편적으로 법회장소가 지워진 것을 보면
조선시대 숭유억불로 인해 사찰이 산 속으로 들어 가면서 산의 지형에 맞게 건축되다 보니
대웅전 앞의 지형이 가파르는 형상을 보이므로 집회 장소로 산이 내준 자리에 누각이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다.
누각은 가람 가운데 법이 머무는 자리이다.
은해사 |
보화루 |
부석사 범종루 |
운부암 보화루 |
선암사 강선루 |
신흥사 보세루 |
봉정사 운부암 보화(만세)루 |
은해사 백흥암보세루 |
누각의 기능; 대웅전 앞에 둠으로 법회 장소로 의 기능,법고나 종루의 기능
자연의 흐름이 그대로 투영된 공간
법회장소는 아니더라도 사찰 근처에 둠으로 자연풍광을 감상
안과 밖을 나누지 않은 소통의 공간 ,가람을 열어 자연과 법음이 교차 경계에 있는 누각
이 곳에서 부처님의 법음을 만난 이가 얼마나 많았을 까?
누각의 형태 ; 마음의 자로 지은 가장 한국적인 집, 동양 수리관(태극음양오행)의 이치를 담은 집
특이한 점은 누각의 이름이 불교적 언어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왜일까? 그것은 사찰
안 팎의 모든 문화를 꺼리지 않고 수용과 조화를 이루는 우리 불교적 정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