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붓다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그것을 놓고 생각할 때 마땅히 삼가해야 할 일은 저 보리수 밑에서 붓다가 설법을 결의하게 된 경위와, 아울러 마가다에서 최초의 설법에 성공한 붓다가 마침내 제자들을 향해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
을 위하여."
라고 말한 이른바 '전도선언'이겠다. 그 전자에 대해서는 이미 제 3장에서 그 미묘한 경위를 상세하게 서술해 놓았거니와 그것은 결국 상구보리의 길이 하와중생의 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보리수 밑에서 정각을 성취하기까지의 붓다는 명백히 자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심신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일단 문제의 해결이 성공하자 붓다는 뜻하지 않던 불안을 맛보아야 했다. 오직 자기 혼자 그 진리를 지니고 있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까닭이다.
이리하여 붓다는 마음의 한 구석에서 "고생 끝에 가까스로 깨달은 것을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설해야 하는가?"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결국은 "나는 이제 감로의 문을 여노라." 라고 선언하고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하여 겨우 설법할 결심을 하게된 붓다는 마침내 전도를 위하여 제자들을 떠나 보내게 되자, 명확히 그 목표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에 두었고 또 스스로도 45년에 걸친 긴 생애를 그것을 위해 바쳤던 것이다. 그 덕택으로 수 천 수 만명의 사람들이 진리에 눈 뜨고 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며, 그 여택은 멀리 오늘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붓다가 그 바라문을 설득하여 그 길이 많은 사람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고 납득시킨 것도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거슬러 올라가 어째서 그 바라문은 붓다의 길이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느냐고 한다면 거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붓다의 가르침에서는 자기의 개안, 자기의 해결, 자기의 확립이 항상 앞서는 까닭이다. 후세의 대승파의 말을 빌리자면 상구보리가 선행하는 것이다. 앞에 나온 '전도선언'에다가 덧붙인다면
"비구들이여, 나는 인천세계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너희도 또한 인천 세계의 모든 구속
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전도하기 위해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라는 논리가 되겠다. 즉 자기 자신이 선결 문제인 것이다. 자기가 자유를 얻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남을 자유롭게 하여 줄 수 있으랴. 만약 진리에 눈 뜨지도 못한 사람이 남의 손을 잡아 길을 인도하려고 든다면 둘이다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이 붓다의 논리였다.
(7) 불해(不害)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 된다.
([상응부경전] 3:8 末利)
'말리'라는 경의 제목부터 설명해 두고자 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번역할 때 '마리카'라는 팔리어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어쩌면 일본에서 '말리'또는 '말리화'라고 일컫는 관상용의 관목이 그것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고 나는 혼자서 추측하고 있다. 이제 옆에 잇는 사전을 펼쳐보니, 말리화는 인도가 원산인 목서과의 상록수 관목이며, 잎은 타원형이며 여름 저녁에 백색 분형의 향기 높은 다섯개의 꽃이 핀다고 되어 있다. 어쨋거나 여기서'말리'라고 한 것은 코사라국 파세나디왕의 왕비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그 왕비가 이렇게 불린 까닭은 그녀가 날마다 그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한역에서는 승만이라고 하여, 일찍부터 열렬한 신자가 되었던 사람이어서 경전에도 자주 그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이 경의 서술은 사바타왕궁의 높은 다락에 오른 파세나디왕과 그 옆에 자리한 마리카 왕비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 다락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장관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북쪽으로부터 동북쪽에 걸쳐 있는 눈에 뒤덮힌 히말라야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아득한 원경으로 보였을 것이다. 도 서쪽으로부터 남쪽에 걸쳐서는 코사라의 평원이 끝없이 발 밑에 펼쳐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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