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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4. 탁발♧

벌거벗은주지스님

by 자수향 2009. 5. 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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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꼭지

 

 

  

  

   출가 사문을 일러 비구라 한다. 비구라는 말은 본래 걸식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써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이 말은 부처

   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차례로 일곱 집을 돌며 사람들이 주는 음식으로 공양을 드신 것에서 비롯되었다.  비구라는 말에 내포

   된 탁발, 걸식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연적인 의미만을 이해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오해를 불러 일으

   키기가 쉽다. 이러한 이유로 옛날 대지 율사는 비구정명(比丘正名) 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 참 뜻을 일러준 바 있다.

   범어로는 필추(苾芻= 比丘)이며 중국어로는 걸사(乞士)이니 안으로는 법을 빌어 성품을 돕고 밖으로는 밥을 빌어 몸을 돕는

   다. 부모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까이 할 사람이나 가장 먼저 인연을 끊고 , 수염과 머리카락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

   만 모조리 깎아 없앤다. 칠보가 가득한 창고에 넘치는 부도 초개같이 버리고 일품 벼슬에 달하는 명예도 구름이나 연기처럼

   보며 무상함에서 모든 현상을 캔다. 뜻을 높이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낮추어야 하니 잡고 있는 주장자는 마른 찔레나무요,

   들고 있는 발우는 깨진 그릇과 다를 바 없다. 어깨에 걸친 회색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이며 둘러 맨 걸망은 영락없는 푸대자

   루이다. 청정한 생활은 이미 팔정도에 맞고 검약한 처신은 사의행(四依行)에 맞으니 구주사해(九州四海)가 모두 내가 가는

   길이며, 나무 밑 무덤 사이 모두 내가 쉬는 곳이다.

   삼승(三乘)의 좋은 수레를 타고 부처님이 남기신 발자취를 밟으며 거룩한 가르침을 받아 지니니 진정한 불제자다. 세상 인연

   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으니 실로 대장부다. 마군과 싸워 이기고 번뇌 그눌을 열어 제쳐 만금의 공야도 받을 만하며 사생의 복

   밭이되는 것도 헛된 것이 아니니 걸사라는 뜻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한이 아니겠는가?

 

   이 글을 통해 볼 때 비구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무상을 철저히 깨달아 현상의 근본을 캐려는 의지,  둘째 깨달음의

   의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낮추는 하심의 자세, 셋째 소유하지 않는 청정한 생활.

 

    이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비구의 모든 행은 자연히 법에 들어 맞고 , 세상의 어떤 인연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으며, 거친

    번뇌의 그물을 찢어내

   천상과 천하, 사람과 사람 아닌 것 등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스승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구는 ' 어떤 공양도 다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자'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복을 짓게 하는 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탁발 행위는 스님들에게는 자기를 낮추는 하심을 배울 수 잇는 수행방법이기도 하다. 탁발을 나가면 온갖 형태로 살

   아가는 중생들의 삶을 직접 볼 수 있는데 , 거기서 모든 중생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마음을 기르고 또 중생들의 삶에 자비심

   을 내어 수행에 전념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탁발을 통해 다시 깊은 발심을 낸 적이 있다.

   서울의 미아리와 종암동에서 탁발을 하고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탁발의 진정한 의미가 변질될 수 있다 하여 금지되었지

   만 몇 십년 전만해도 탁발은 사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의 하나였다.

   탁발을 할 때 사문은 가난한 사람의 집이든 부잣집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이 주는 공양물을 받는다. 공양물의 양과 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와 행위의 과보를 믿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시주 받는 것이 매정해 보이기도 할 것이지만 복 지을

   기회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나 보시를 함으로써 배우고 얻는 것이 같을 것

   이므로 그러하다. 그러나 막상 탁발응 나가 보면 가진 것 없이 하루 하루 힌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경우가 더 많

   다 그러다 큰 상가가 있는 가게 같은 곳에라도 들어가 합장하고 서 있으면 곧 매몰찬 소리가 들려온다. 

   " 우리는 교회 다녀요"

   "........"

   이 말은 우리는 종교가 다르니 당신에게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며 탁발하는 것이 구걸하는 듯이 보여 은근히 사문을 비하하

   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합장한 채 머리를 숙이고 돌아 나오는 목 뒤로 뜨거운 피가 솟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굴 마져 화

   끈하게 달아올라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사실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면서 탁발하는 일은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헛된 그 자존

   심을 없애기 위해 탁발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치밀어 오르는 자존심을 꾹꾹 눌러 보지만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

   는다. 자존심, 그것은 결국 '내가 있다'는 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외부의 물질세계를 정신적 영역에서 받아

   들여 이루어진 거짓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된 그것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아상을 철저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스스로

   높히고 잘난 척하는 아만을 버릴 수가 없다. 나라는 생각과 집착이 있으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해탈 또한 멀다.  하

   심(下心) 그것은 무엇보다 아상과 아만을 버려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사문에게는 큰 관문이었다.

   그렇게 아상에 대해 생각하며 가는데 한 거사가 공손히 합장을 하며 내 앞에 멈춰섰다.

   "스님! ...........이 뜻이 무엇입니까?"

   "............."

   갑작스런 질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경전에 있는 무슨 게송같은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얼떨결에 손을 모아 합장하고는 거사를 지나쳐 버렸다. 그 때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용기조차도 없었다. 어찌나

    부끄러운지 먹물 옷과 가사를 벗어 버리고 싶은심정이었다.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자괴감이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많은 사람들, 이렇듯 가련한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 한 마디라도 마음 속에 새길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했지 정작 거사의 의문 하나 풀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때 스스로 실

   망하고 절망했던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나는 치열한 고뇌 끝에 월정사로 갔다. 다시 행자 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길을 떠났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나 걸식을 하고 길에서 정각을 이루었으며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문으로 일생을 살

   며 온 생명을 깨우치는 스승이 된 부처,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바로 걸식비구이다.

   우리 스님들은 부처님처럼 그 길을 따라 가며 곳곳에서 부처의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거리에는 항상 나를 깨우쳐주눈 부처

   거가있다. 그 얼굴은 성스러운신의 얼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얼굴일 수도 있다.

   조금 가진 것이지만 홍등가의 여인들이나, 하심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준 상인이나, 나를 부끄럽게 했던 그 거사가 아이었다

   면 나의 구도와 배움에 대해 조금이라도 돌아 볼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시장이나 저잣거리에 진짜 삶이 있

   고 그곳에 진짜 부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그만 것도 없는데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혼자 빈집에 앉았으니

                                              다시 남북과 동서가 없네 

                                              태양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복숭아꽃이 어떻게 한 모습으로 붉기만 하겠는가.

                                                                                                                                       --- 야부 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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