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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6-2, 한 번 헹구어진 우주와 만나던 날♧

벌거벗은주지스님

by 자수향 2009. 5. 1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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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꼭지 中 둘

 

 

 

    

     2. 한 번 헹구어진 우주와 만나던 날

    

      북한산 망월사에서 첫 동안거를 지낼 때의 일이다.

      강원에서 일정한 습의(習儀)와 교리를 공부한 스님들은 지금까지 익혀왔던 교리를 체득하기 위해 참선 수행에 들어

      간다. 스님들에게는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각 석 달 동안 산문(山門) 출입을 금하고 성에만 몰두하는 안거 기간

      이 있다.

      안거라는 말은 본래 산스크리트어의 '바르샤' 비(雨)를 뜻하는 말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는 우기 동안 동굴이나

      사원에서 수행에만 전념했다.  비가 오면 출입에 불편하거니와 ,비 때문에 땅위로 기어나온 벌레들을 밟아 죽이지 않

      기 위해 그러한 규칙을 정하였던 것이다.

      결제가 시작되기 열흘이나 일주일 전 쯤에는 선방에 들어가겠다는 방부(房付)를 들여야 한다. 즉 결제가 시작되기 전

      에 미리 선장에 들어가기를 청하게 되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면 석 달 동안 대중과 선방에서 각자 맡을 소임을 정하

      데 된다.  이것을 방(榜)을 짠다고 한다.  (생략)  그 때 내가 맡은 소임은 선방에 군불을 때는 일, 화두(火頭)였다.

      그런데 소임이 결정되고 결제가 시작될 때까지 내게는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어쩌다보니 어른 스님께 공안(公

      案)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선은 간화선으로 화두를  근거로 공부하는 선풍이기에 선방에 들어가 공부하

      기 전에 천 칠백 개 공안 중 각자의 근기에 맞는 화두 하나를 받아야 한다. --- 그러한 화두를 아직 받지 못했던 터라

      무척 고민이 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새 한 철 공부가 시작되었다.

      몇 십명의 스님들이 모두 몸을 벽쪽으로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죽비를 든 입승(참선을 지도하는 소임) 스님이 죽

      비를 세 번 쳤다. 사위가 일제히 고요해 지고 스님들은 모두 화두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두의 의문을 풀어

      나가기 위해 고분분투해야 할 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어떤 화드를 들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조주스님의 '무(無)',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마조스님의 '시심마(是甚摩)'  동산스님의 '마삼근 (麻三斤) ' 등의

      수백가지 공안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어떤 화두를 들것인가?

       그 때 강주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천 칠백 개의 공안은 모두 하나지만 그 이름이 서로 다를 뿐이다. 또한 공안은 의문이며 우리 생활 전부가 의문 아닌

      것이 없다.  이를 일러 본지풍광 (本地風光)이라고도 하고 본래면목 (本來面目)이라고도 한다. 온 마음을 쏟아서 터득

      하려는 노력하는 것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나는 이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을 화두로 삼아 나가기로 결정했다. 어떤 화두가 떠오를 것인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벽에 걸어 놓은 시계 소리만 키게 들리는 것이었다.

        "째깍  째깍....."

      잠시후 그 소리는 더욱 또렷하고 크게 들려왔다. '이래서는 안된다' 하고 얼른 마음을 수습하고 다시 화두를 챙겼다.

      공적한 선방의 방문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 들었다. 간간이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제 낙엽은 방문으로 들어와 내 귓 속을 휘휘 돌고  다시 방문을 나갔다. 어느 스님들이 선방에 가면 개미가 대화하는

      소리까지 들린다더니 정말로 구름 흘러가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만 같다. 나는 다시 마음의 고삐를 바짝 끌어 당겨

      화두를 들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사위가 조용해지고  입을 다물자마자 봇물 터진 듯이 밀려오는 온갖 생각들이 화두를 참구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잡다한 생각들,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게 잊었던 생각들, 먹고 싶은 것들, 잊었던 사

      람들, 묻었던 아픔들....... 생각을 무너뜨리고 다시 화두를 챙겨도 다시 피어오르는 가뭇없는 생각들이 내부의 고요함

      을 깨고 있는 것이었다.

      선방은 겉으로는 조용한 듯 보이지만 안으로는 치열한 전쟁터였던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거기 앉아 있던 모든 스님

      들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열하게 치르고 앉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한 스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 누가 화두(火頭) 소임 삽니까?"

      "예 제가 맡았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스님!  불 좀 어지간히 때소. 방석위가 뜨거워서 오래 앉아 잇을 수가 없어요."

      " ........"

      그 말에 주위에 앉아 있던 스님들도 화난 고슴도치 마냥 불 때는 소임자에게 역성을 내는 것이다.

      날이 몹시 추웠기에 나는 스님들을 생각해 불을 넉넉히 지핀 것이다. 그것이 아랫목 스님들에게는 또 하나 수행의 장

      애가 되었다는 생각에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랫목 스님들의 불망의 소리를 들응 터라 저녁에는 아궁이에다 나무를 조금만 넣었다.

      다음 날도 죽비 소리가 세 번 울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루 같이 길게 느껴지던 참선 시간이 끝났다. 다리를 쭉 펴고 이리저리 주무르고 있자니 윗목에 있던 스님들이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 누가 화두(火頭) 소임 삽니까?"

      " 예 제가 화두 소임입니다."

      " 스님! 추워 죽겠소. 여기 스님들 오들오들 떠는 것 안보입니까?"

      " ........"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인가. 군불을 많이 넣자니 아랫목 스님들이 성화이고 , 군불을 조금 때면 윗목 스님들이 성화를

      대니..... 이도 저도 힘든 일이었다. 슬슬 화가 치밀기도 하였다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날 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화두가 주어졌다.

 

      '어떻게 하면 군불을  적당히 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군불을  적당히 뗄 수 있을까?'

 

      선방에 군불 때는 일이 내 화두가 되었다. 나는 항상 군불 때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항상 군불 때는 일에 대해 생

      각했다.  군불 때는 일에 열중하다가 숯검뎅이가 된 채 참선에 임하기도 하였다.그런데도 아랫목 스님과 윗목 스님들

      의 투정 방망이는 반결제 때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화두(?)에 대한 내 내부의 싸움도 치열해갔다.

      그러나 동안거 기간이 절반 쯤 지나면서부터는 사정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윗목 스님들과 아랫목 스님들의 군불

      에 대한 원성이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나도 어느새 군불에 대한 투정이 들려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이제는 참선

      중에 시계 걸어가는 소리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밀려오던 온갖 생각들이 화두 하나로 집중

      되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가온 봄소식처럼 어느새 코 앞에 곧 해제가 닥쳐오고 잇었던 것이다.

      사실 해제 몇일 전부터 선방 안팎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입춘이 지난 산에 새싹 움트는 것에  마음이 설레였는지, 아

      니면 새해를 맞는 스님들의 설레임 때문이었는지 ,스님들은 그간 입었던 옷을 깨끗이 빨아 널었다. 새 무명옷을 꺼내

      손질하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후 옷걸이에 쭉 널어 놓아 두었다.

      이제 곧 해제를 맞으면 새로운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은사 스님을 찾아 뵙고 인사도 드려야 하고 그간 만나

      지 못했던  도반을 만나 선담도 나누어야 할 것이며 세상 속에 나가 경계에 부딪치며 공부를 가늠해 보기도 해야 한다.

      생각이 먼저 바쁘게 걸어 나갔고 그만큼 마음이 설레였다.  그러나 스님들은 이제 정해진 규율을 벗어나 삶의 온갖 경

      계 속에서 수행하는 진짜 선공부, 만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제하는 날이 되었다. 스님들은 바랑을 하나씩 짊어지고 각자 만행길을 떠났다.

      산길을 내려오며 나는 선방에서 걸어 나오는 스님들의 수행공덕으로 오늘 하루 만큼이라도 중생의 번뇌가 모두 소멸

      되기를 부처님 전에 간절히 빌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먹물 옷에 바랑 하나 짊어지고 저만치 산길을 내려가는 수좌들의 뒷모습과 뒤를 따라오고 있는 수좌들의 발자국 소리

      를 들으며 분명 우주가 한 번 깨끗이 헹구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지럽고 신산한 중생의 온갖 번뇌 덩

      어리가 깨끗한 허공 속으로 확 놓여 나고 있었다.

    

       

 

 

혹시라도 위 사진 때문에 스님의 글이 손상될까 싶어망설였지만 추억 속에  사진이 생각나 올려 봅니다.

5년 전 미얀마 성지,온통 성전이 유리로 되어 있던(?)곳에서 본 개이다. 성전 안에서 그 개를  보고 놀라

기도했지만  한 순간 여행길에서 조주스님의 화두가 생각나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났었습니다.(구자무불성

-누구든 그 속에 들어가 보아라- 누구든 개새끼가 되어 나온다)         -   이 책의 저자이신 석 정호 스님

 

이 글과 관련된 좋은 사진이 있으면 좋았으련만 ...간절함...간절함... 세상을 맑히는 우리들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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