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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6. 올해의 고추농사

벌거벗은주지스님

by 자수향 2009. 5. 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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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꼭지

 

 

 

 

      처마 끝에 떨어지는 뚜렷한 빗방울소리

자신을 모르는 중생들 아우성 소리

     나 또한 요사이 물욕을 따르는 일 많아

     봄날의 베게 위에 단꿈 꾸기 어려워라.

                                        

                                                          ---------- 행가스님

 

 

      선사는 처마 밑에 요란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가 저마다 아우성치는 소리와 같다고 생

      각한 모양이다. 중생들의 삶이 아우성치듯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은 그들이 저마다 지향하는 물욕 때문이다.

      처음에는 장난 삼아 다리를 걷고 시작한 것이 곧 온 몸을 적시는 물장난으로 변하는 것처럼, 욕망은 어느사

      이 깊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이 꿈 같이 허망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는 일은 아무리 훌륭한 선사에게도 힘든 일이다.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기관이 물질에 반응하도록 장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더 나은 것을 보기를 원하

      고 더 좋은 소리를, 더 맛있는 음식, 더 부드러운 감촉...... 이 모든 것이 물질에 대한 욕망을 선명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봄날 화창한 날씨에도 기분 좋은 단잠을 잘 수 없고 꿈마져 시끄럽다.

      그렇다면 화창한 봄날의 꿈마저도 시끄럽게 하는 욕망과 욕심을 제어하고 항상 깨어 있는 모습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

 

      평택의 작은 절 만기사에서 고추농사를 짓던 때의 일이다. 만기사는 야트막한 산 아래 대웅전, 종각, 산신각,

      요사채가 있고 그 밑에 텃밭이 있는 고즈넉하고 아늑하여 친근감을 주는 절이다.

      농사를 짓은 일은 많은 시간의 노동과 세밀한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절 일이 없는 틈틈이 해보려던 것이

      었으나 곧 많은 시간을 밭에서 보내야 했다. 고추모를 심고 얼마 지나지 않자 고추꽃이 피었다. 비가 온 후

      에는 이랑 사이사이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다. 잡초를 뽑느라 온 이랑과 고랑 사이를 누벼야 했다. 온 몸이

      땀에 젖고 오랫동안 엎드려 있으니 허리가 여간 아픈게 아니었다.

      그럴 때면 허리라도 필 겸, 그늘을 찾아 간다. 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따가운 햇살이 내리비치는 높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면 한 점 욕심이 없는 무욕이라는 말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

      어떤 것도 욕심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고, 그러한 여여(如如)함에서는 어떠한 삿된 욕심이 일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잠시 쉬다가 다시 밭에 들어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저녁이 되고 날은 이내 어두워졌다.

      여러날이 지나 고추 꽃이 떨어지고 아주 조그만 고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자연의 경이로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해 절집의 고추농사는 대풍이었다. 공교롭게도 마을 집의 고추농사는 탄저병이 돌아 수확이 아주 적었고

      상대적으로 품질이 나빴던 것이다. 처음 지은 농사였지만 이러저러한 요인이 작용하여 노력 보다는 소득이

      컷으니 많은 사람들이 뛸 듯이 기뻐했다. 신도들이 모여 앉아 역시 부처님이 계신 절 밭에 심은 고추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해가 가고 다시 봄이 돌아왔다. 작년 풍작을 이뤘던 밭에 다시 밭갈이를 하고 더 많은 양의 고추를 심었다.

      작년에 대풍을 맛보았던 사람들이라 더욱 정성을 기울였다. 신도들의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금년에도

      부처님 계신 절집의 고추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러 날이 가고 꽃이 피었는데 어쩐지 작년보다 실하지 않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추는 수확을 할 때까지

      도 생기를 되찾지 못했고 겨우 열 근 정도만 거둬들일 수 있었다. 올해의 고추농사가 그렇게 되니까 여기 저

      기서 불만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추농사를 지어 손해만 보았다는 것이다.

      "스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적자입니다. 적자."

      "적자가 아니지요."

      "왜 적자가 아닙니까. 따져보세요. 모종값에 품삯에 그간 스님하고 신도들이 고추 밭에 들인 힘과 노력과 정

      성만 해도 적자라니까요."

      "아닙니다. 다시 계산해 봅시다. 소 빌린 값, 모종값,품삯, 우리들이 그간 들인 노력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모종을 판 사람은 제대로 값을 받았고 밭에서 일해준 사람들도 각자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각자 필

      요한 일에 썼을 테니 좋은 일 아닙니까?........ 또 올해 고추농사가 작년에 비해 못하지만 신도들이 무공해

      고추를 먹었고 절에서는 그 고추가루로 반찬을 만들어서 맛있게 공양하지 않았습니까? 보세요 이제 적자가

      아니지요?"  

      "그래도........."

      신도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손해가 뻔한 일을 두고 손해가 아니라니 납득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허나 본질적으로 내 계산법은 그의 계산법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했던 고추 농사의 계산법은 나눔을 수행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절 집의 계산법이다. 따스한 햇빛과 물, 정성이 있어야 식물은 자란다. 이러한 것들을 우

      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게 받고 있는 모든 인연을 지나치지 않는 세밀한 배려가 있어야만 가능한

      계산법이다. 욕심을 내지 않으면 마음이 조용하다. 욕심이 어디서 부터 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터무니 없

      는 과욕 때문일 때가 많을 것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새 옷을 입었을 때이며, 텔레비젼을

      보면 소비를 부추키는 온갖 광고도 함께 본다. 그것을 자꾸 보다보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시시각각 더

      세련되고 편리한 신제품이 나오고 내가 가진 것은 금방 낡은 것처럼 여겨진다.

 

      눈과 귀를 조금 쉬어 보자. 그리고 햇빛 짱짱한 날 나무 그늘에 앉아 욕심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고요함

      을 느껴보자. 하루 몇 분 동안만이라도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이나 참선에 잠겨 보자. 버리는 연습, 

      온갖 욕망을 버리고, 악한 감정을 버리는 일........ 그것이 참선이다.

      봄날 단 꿈을 꿀 수 있는 비결, 그것은 버리고 또 버리는 연습, 비우고 또 비우는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저 "비"의 번짐을 푸는 방법은 없을까?  행가 스님은 빗방울 소리를 중생들의 물욕의

소리라 하셨고 나는 김훈욱님의 "아름다운 조형"을 감상하는 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 슬픔이 밀려왔다. 엄청난 빗방울 소리가 온 몸을 뒤흔들어 버렸다.

 참으로 기가막힌 슬픈 소식이  이 나라, 이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모두가 미워진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슬픈 백성이다.

 한 나라의 전직 대통령의 살인을 우리는 본 것이다.

물대포와 화염과 죽창을 들어야만 하는 극단적인 선택 속에 사는 우리는

슬픈 백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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