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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7 마음을 비웠다는 거짓말

벌거벗은주지스님

by 자수향 2009. 5. 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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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꼭지

 

 

 

 

 

                            큰 도는 그 바탕이 넓고 커서

                            쉬운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는데

                            좁은 소견으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두르면 더욱 늦어진다.

                                                                                  -------신심명

 

 

 

 

     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 사랑에서 실패하는 것과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아니다.' 여기서 들

     어 있는 석 뜻은 자신의 마음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 남의 마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이르는 말이다.

     굳이 속담을 인용하여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기 어렵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마음이란 놈을 잡으러 그렇게도 애쓰는 것이리라.

     그런데 마음 수련을 조금 했다 하여 이미 모든 우주의 이치와 세상의 이치를 다 알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조계사는 여느 큰 절들처럼 산중에 깊이 자리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가장 한 복판에 있다. 산사의 고요하고 청량한

     맛이라곤 전혀 없다. 조계사를 선사로 비유하자면 중생 속으로 뛰어 들어, 중생들과 더불어 불법을 공유하기 위해

     무애행하던 원효 대사와 같은 모습이라 할까. 그러기에 조계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전국의 불자들, 국내외관광객, 걸인들, 노숙자들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들, 절 마당을 통과해 다른 길로 접어

     들기 위해 지름길로 이용하는 행인들, 점심 도시락을 싸와서 한 곳에서 쭈그리고 먹는 직장인들...... 수많은 사람

     들을 조계사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윽한 눈으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신의 존재에 의문이 많은 사람

     들이  조용히 거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느날 일요일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한 청년이 오랫동안 대웅전 앞의 탑을 바라보며 무언가 깊이 생각하

     는 듯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골똘이 생각하고 있던 청년이 지나가던 나를 붙잡아 세웠다.

     "스님, 저는 이상하게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뭔지 모르지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년이 불교에 관심이 많다니 참 좋은 일이군요."

     이렇게 이어진 대화를 시작하며 청년은 집안 식구가 모두 다른 종교를 믿고 있으며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이끌리게

     되었는데 관절념을 핑계로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자신의 발걸음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어느덧 조계

     사 마당을 향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밖에서 스님들 법문을 듣곤 하다가 용기를 내어 법당 한 구석에 앉아 보기도 했

     다. 그동안 불교를 너무 몰랐고 궁금하기도 하여 몇권의 기초교리책도 읽었다면서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청년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전에는 관절이 몹시 아팠는데 절에 관심을 가지고 다닌 후부터 아주 좋아졌습니다. 항상 마음을 비우라 말씀을 하

     여서 마음을 비웠더니 아픔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나는 얼른 오른손으로 청년의 팔을 꼬집었다.

     "아얏"

     청년이 한 발 물러서며 어이없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을 비웠다면서 꼬집는 아픔을 느낀 것은 무엇인가?"

     "............"

     "아! 스님 그럼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스님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요?"

     "비우기는 뭘 비우나 채우는 일부터 해야지."

     ".............."

     "그럼 채우는 일은 무엇으로부터 해야 합니까?"

     "먼저 남을 위해 배풀고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

     "............."

     청년이 내가 바라는 뜻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또렷하고 깊이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참 가상하고 기특해 보여 봉향각에 데리고 가 금강경을 하나 사주고 헤어졌다. 청년은 깊이 허리를 숙여 합장하고

     절 문을 나섰다.

     부처님의 말씀을 알고 이치를 조금씩 이해해 가다 보면 기쁜 마음이 나고 차츰 그 가르침을 따르고 행하고 싶은 마

     음이 생긴다. 그러나 비우라 비우라 하니 그 말에 치우쳐 자신의 마음이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것으로 착각해 그

     로 인해 관절념도 깨끗이 치유되었다는 망심을 낸 것이다. 청년의 경우로 보면 마음 비우기라는 말에 대한 강박증

     이 공부를 더욱 방해만 한 꼴이 되었다.

     마음을 비우는 공부는 생생내어 일부러 하는 일이 아니다. 선인들은 앉고 눕고 걷고 일하는 일상 중에 도가 있다고

     말하였다. 남과 어울려 살아가는 동안에 남에게서 받고 남을 위해 베풀고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잘 쓰는 것이다.

     청년에게 금강경 한 권을 사준 것은 그 속에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한 것이다. 금강경에 무수히

     있는 공(空)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그의 몫이다. 그 속에 있는 공을 추상적인 공으로 설정하여 찾

     을 것이가, 아니면 베풀고 보시하며 더불어 사는 중에서 찾을 것인가.

     청년의 공부가 향상되기를 기원한다. 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는 조계사가 진정한 불법을 조금이라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오래된 추억 속 한장의 CD안의 기억들, 세상 저편 이편 삶의 모습들...그리고 바라보시던 그윽한 눈.

                                             인도의 어린이들이 귀찮을 정도로 구걸하던 곳, 한 아이가 지금도 생생하다. 무조건 1달라만 달라고 쫒아 다니던

                                             아이들과는 다르게 조그만 부처님 조각상을 보이면서 스님께 거래를 했던 아이, 구걸이 아닌 댓가를 받고 싶어했던

                                             아이, 스님의 커다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그 부처님 상을 제가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그 때도 지금도 그 아이가 당당하게 잘 지내길 기원합니다. 이 땅에 아이들이 꿈을 이루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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