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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2부-2회(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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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1부:근본불교(生→열반후100~200년)경전그대로 암송

*불교2500여년의 변화: 당시는 실천적 수행,우리는 관념적 신행(유일신과 혼동,기복)

                             타종교는 민는 종교,유일신, 불교는 실천종교(自作自受-자기수행)

前 : 1차결집- 마하가섭이 불교교단의 필요성(법,제도개선),암송결집(합송)

                   아난존자(여시아문~)

 

2차결집(입멸100년경 재결집)

 

아난존자의 제자 야사비구의 지적

바이살리 비구의 10가지 위반된 계율(10사)

 

1,가겸정:음식을 저장하면 안됨(저장을 허용)

2,이지정:비구는 정시에 식사(정오~3,4시를 허용)

3,수이정:1번 탁발 후 다시 오전 중에는 탁발 안됨

4,주처정:각 주처에서 따로 포살할 수 있다.

5,수의정: 승가의 일을 논할때(결정 후 허가)

6,구사정:스승이 해온 일 해도됨

7,낙상정:오후에 음료,과즙허용

8,치병정:발효안 된 술,병의 치료(술허용)

9,자구정:자구를 만들때 취향을 허용

10,금은정:금 은 돈 보시허용

 

바이살리비구의 정법 주장과 700명 장로의 비법 주장 갈등, 승가의 분열초래 ,

계율의 해석문제로 분열 

☞수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하지 말라

자기 수행을 위한 행동의 절제(5계)

*중생구제와 더불어 화합이 더 중요

2차 결집 이후 진보, 보수 ;경의 해석도 부파마다 다름

 

 

 

제2차 결집
기원전 383년경 제2차 결집이 이루어졌다. 바이샬리(Vaisa-lI-)결집 또는 700결집이라고도 불린다.

붓다의 입멸 후 100년경, 아난다의 제자였던 야사(Yasa, 耶舍) 비구는 바이샬리의 브리지(vr톔i)족 출신의 비구들이 계율에 위반되는 10가지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700명의 비구들을 바이샬리에 소집하여 그러한 10가지에 대해 심의했다. 그 때 회의에서는 10가지의 사안, 즉 ‘10사(事)’가 옳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행하는 자는 이단이라고 간주하였다. 하지만 팔리 율장에서는 10사를 심의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스리랑카의 왕통사(王統史)인 『디파방사(DI-pavam톝a)』와 『마하방사(Maha-vam톝a)』에는 이 심의 다음에 성전의 결집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 때의 일을 제2차 결집이라고 부른다.

그 당시에 논의되었던 10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소금을 뿔 속에 담아서 지니는 것.
둘째, 정오가 지난 뒤 공양하는 것.
셋째, 한 마을에서 탁발을 한 뒤 다른 동네에서 탁발하는 것.
넷째, 한 구역에서 포살을 두 곳 이상 나누어서 하는 것.
다섯째,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나중에 허가를 받는 것.
여섯째, 선사(先師)들의 행적을 관행으로 삼아 따르는 것.
일곱째, 공양 후에 발효된 우유를 마시는 것.
여덟째, 발효된 과즙을 마시는 것.
아홉째, 앉거나 눕는 자리 깔개를 사용하는 것.
열째, 금이나 은을 시주 받는 것.

이상의 열 가지가 모두 정법(淨法)으로서 범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이들에 대해서, 결집을 통해서 모두 비법(非法)이라고 결의하였던 것이다. 다만 아난다의 직제자로서, 그 당시 법랍 120년에 이르던 최고의 장로 사르바카마는 9가지는 비법(非法)이지만, ‘선사(先師)들의 행적을 관행으로 삼아 따르는 것’은 경우에 따라 인정할 수도 있다고 판정하였다고 전한다. 이로써 그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분분하였던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하여 율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더욱 첨예한 대립을 낳았고, 분파를 야기시키는 큰 요인으로서 작용하게 되었다. 또한 제1차 결집은 단순히 경과 율의 결집이었으나, 제2차 결집은 율에 대한 해석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상 차이가 -------원각사 블러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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