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그들의 생활은 사제자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서의 하루하루였기 때문이다. 붓다가 설하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몸에 구현해 가는 일, 그것밖에는 그들이 해야할 일이란 없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면 그들은 곧 위의를 갖추고 거리나 마을로 갔다. 탁발을 위해서이다. 탁발(托鉢)이란 불교가 중국에 들어간 다음에 생겨난 말이지만 매우 재미있는 말이다. 탁이란 손으로 받는다는 뜻으로 발을 손에 들고 음식을 받는다는 것이니까, 탁발이란 걸식이요 밥을 비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그 발우에 음식을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생존은 이 발우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지처럼 애걸 복걸하여 가면서 음식을 얻는 것이 아니며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발우에 음식을 넣어 주시오"하는 것이 그 심정이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비구는 이 탁발에 비구로서의 생명을 걸고 있는 셈이 된다. 토겐(道元(1200~1253);일본 조동종의 개조. 중국에 유학하여 여정에게서 도를 배우다. 저서에 <정법안장>등이 있다)이 [정법안장수문기]에서 의량(衣糧)의 두 가지 일은 소연(小緣)이긴 하지만, 행자의 대사이다. 라고 한 것도 그러한 뜻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그것은 법식을 좇고 위의를 갖추어 엄숙한 태도로 행해져야 했다. 한 경 ([상응부경전] 4:18 단식. 한역동본, [잡아함경] 39:15 걸식)에 의하면 붓다도 어떤 날에는 깨끗이 씻은 발우를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붓다가 마가다국의 시골, 판차사라라는 마을에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 날은 마침 젊은 남녀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축제
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붓다는 그 아침에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탁
발을 위해 그 마을을 찾아 갔으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축제에 마음
이 가 있기 때문인지 아무도 붓다를 공양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기서
부터 경의 서술은 악마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게 되거니와, 그 돌아오는
길에 마라(악마)가 모습을 나타내어 붓다에게 말을 걸었다.
"사문이여, 음식을 얻었는가?"
"얻지 못했다."
"그러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라. 이번에는 공양을 얻을 수 있도록
내가 해주겠다."
그러나 붓다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했다.
"음식은 비록 얻지 못했다 해도
보라, 우리는 즐겁게 사나니,
이를테면 저 광음천(인도의 전설에 나오는 천상 세계의
하나. 이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음성이 없고, 말할 때에는 입에서
광명이 나와 언어를 대신 한다고 한다.)모양
기쁨을 음식삼아 살아가리라."
여기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붓다의 내부에서 일어난 식욕의 유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라고 해도 시장하면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리라. 지금 다시 간다면 이미 선물의 교환도 끝났을 것이니까 공양을 얻을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붓다의 머리에 떠올랐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 하지만 탁발이란 그들에게 그런 것일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의연히 지켜야 할 법식이 있었고, 더 소중한 마음씨가 있어야 했다. 법에 의해 얻지 못하는 것과 법에서 말미암지 않고 얻는 것은 어느 쪽이 존귀한가? 그들로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법에 의하여 얻지 못하는 쪽이 훨씬 존귀하였다. 여기에 "기쁨을 음식삼아 살아가리라."고 한 구절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생활을 더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포살과 자자(自恣)라고 불리는 두 행사였다. 앞에서 말한 바와같이 그들의 교단에는 종교적인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구태여 의식에 가까운 것을 찾는다면, 그것이 포살과 자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두가지 행사는 그들의 생활이 무엇을 목표로 영위되었나 하는 점을 참으로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포살이란 무엇인가? 포살이란 말은 아마도 산스크리트어의 '호사다(poshadha)'의 음사이리라. 팔리어로 말한 다면 '우포사타(uposatha)'가 될 것이다. 그것의 유래를 따지면 원래 외도 즉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 행해지고 있던 의식을 채택한 것으로 그 소식은 [율장] 대품(大品)2 '포살건도'라는 대목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그것은 붓다가 라자가하 교외의 '깃자쿠타'라는 산에 있을 때의 일인데, 앞에서 언급한 빈비시라 왕으로부터 붓다에게 한 제안이 들어왔다. 그 왕은 불교 교단의 성의 있는 보호자였거니와, 그때 라자가하 부근에 있는 외도의 교단에서는 반 달에 두 번씩 집회를 열어서 그 기회에 일반 신자들을 위해서도 설법을 베푸는 바, 그것은 매우 좋은 행사인 것 같으니 불교 교단에서도 그와같은 것을 시행해 봄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붓다가 그 제한을 그 자리에서 받아들인 결과, 불교 교단에서도 포살행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그 기원은 훨씬 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포살은 '우파바사타upavasatha'그것은 본래 소마(soma:신에게 바치는 술)의 제사가 있는 전날에 행해지는 단식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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