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인도 게르만 어족은 훨씬 예전부터 그런 행사를 가져 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반 달에 두번이라 함은 달로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반달을 단위로 1일, 8일,15일,23일처럼 대체로 1주일에 한 번 꼴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인도 특유의 주일제여서, 외도가 그것을 이용하여 행사를 해 오던 것을 붓다도 빈비사라왕의 제안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하여 포살의 집회가 결정되었으나 처음에는 단순한 집회에 그쳤다. 그러나 이익고 그 집회에 참가했던 신도들로 부터 새로운 제안이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법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모인 것인데 비구들이 모두 '벙어리 산돼지'처럼 침묵하고 있다니 말이 되는가. 부디 모인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해 달라. 이런 요청이었다. 그것도 그렇겠다하여 포살일이면 대중을위해 설법이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붓다 자신의 발기에 의해 계본을 그 집회에서 외도록 결정하였다. 계본이란 계율의 항목만을 나열한 것이니 그것을 해설하고 그 설립 과정을 서술한 것이 뒤에 이루어진 율장이다. 말하자면 여기에 계율의 근본이 있다는 뜻에서 이것을 계본이라고 번역하게 되었거니와, 포살일에 그것을 낭송케 해서 반성과 참회의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은 그것에 의해 포살에 새 뜻이 부여되고 그것이 불교 특유의 것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줄 안다. 그 양식 역시 그때 붓다의 손으로 정해진 것이어서, 그것은 대게 이렇게 진행되었다.
반 달의 14일이나 15일, 해가 넘어가고 등불이 켜지면 비구들이 모여 들고 조금 후 장로가 일어나서 목청을 돋우어 먼저 계본의 서문을 읽어 갔다. 그 부분을 나는 첫머리에 인용해 놓았거니와 그것은 " 대중이여, 들으시라. 오늘은 포살일 15일 포살일이니"로 시작되는, 말하자면 개식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는 이제 계본을 읽겠으니 죄 있는 사람은 참회하라고 전제한 다음, 계본의 낭송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한 항목마다 세 번 되풀이 되었다. 비구들은 그것을 자기 한 사람을 향해 묻는 것으로 알고 들어야 한다고 요구 받았다. 일대 일로 묻는다면 가부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 마음으로 세 번 반복되는 계본을 들으라는 것이다. 죄있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참회하지 않을 때는 '고망어(故妄語)'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도에 장애가 된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청정하기를 바라거든 그것을 고백하라. 고백하고 참회하면 마음의 편안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서문의 대체적인 뜻이다.
이 서문의 낭송이 끝나면, 계율의 하나하나의 항목을 세 번씩 왔다. 그 항목의 수효는 현존하는 계본에 따르면 대략 250(부파에 따라 다름)개 정도가 되거니와, 붓다 제세시에는 더 적었을 것이고, 더구나 포살의 제도가 정해지던 당시에는 훨씬 적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계율은 처음부터 한꺼번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무슨 사고가 있을 때마다 하나씩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요 부분, 이를테면 불사음(不邪淫), 불투도(不偸盜), 불망어(不妄語)같은 조목은 일찍부터 결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을 이를테면
"어느 비구라도, 만약 마을이나 숲에서 주지 않은 걸 취했다면....
그는 바라이(승려로서 자격을 잃고 교단에서 추방되는 무거운 죄)
에 해당하니 함께 있지 못하리라."
하는 식으로 낭독했다. 그리고 몇 조목이 끝날 때마다
"이제 나는 여러 대덕들에게 묻노라. 이 점에 대해 청정한가? 다시
묻노라. 이점에 대해 청정한가? 세 번째 묻노라. 이 점에 대해 청정한가?"
라고 대답을 재촉했다. 이런 물음에 대해 모든 사람이 잠자코 있으면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여러 대덕은 이 점에 대해 청정하시오. 그러기에 침묵하신다고,
나는 그렇게 알겠소."
이런 식으로 낭독과 재촉이 자꾸 반복되는 중에 포살의 행사는 끝나곤 했다. 그 무려쯤에는 밤도 깊어져서 천지의 적막이 그들의 주변을 감쌌다. 그것은 참으로 엄숙하기 이를데 없는 광경이었으리라.
또 하나의 행사인 자자(自恣)는 우안거의 마지막 포살일(15일)에 행해지는 더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집회였다. 자자란 자진해서 자기의 죄를 지적해 달라고 동료 비구들에게 청하는 일이니 현장(중국의 승려, 인도로 건너가 많은 경전을 갖고 와서 번역한 사람. 그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는 유명하다.)은 이것을 '수의(隨意)'라고 번역했다. 이것도 포살일의 행사라고 하여 '포살자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 역시 붓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인연은 [율장]의 대품4'자자건도'에 의하면 이러했다고 한다. 그것은 붓다가 제타의 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마침 여름 장마철이 되었으므로 코사라의 어느 고장에서 많은 비구들이 함께 안거에 들어 갓다. 안거란 본디 '비'또는 '장마철'의 뜻이니, 여름 장마철, 석달 동안은 비구들도 도저히 활동할 수 없음으로 정사나 동굴 같은데서 외출하지 않은 채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을 이렇게 불렀다. 그것은 비가 많은 인도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로 보이거니와 이제 코사라의 어느 고장에서 안거에 들어간 비구들은 그 석달을 화목하고 분쟁이 없이 지내기 위하여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생활하기로 약속하였던 것이다. 경은 그것을
"우리는 담화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으리라."
고 기록하고 있다. 문답을 하든지 남을 탓하든지 하는 것은 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무사히 우안거를 마친 비구들은 비가 개자 기원정사로 붓다를 뵈러 왔다. 그런데 붓다는 그들로부터 그 동안의 생활에 대해 보고를 듣고 나서 무엇인지 부자연스러운 것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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