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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팡하(4,5,6,7)

밀린다팡아경/밀린다팡아경

by 자수향 2009. 5. 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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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다팡하(4) 윤회의 주체-1


명칭에 고정적 개체가 있지 않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업(業)을 짓고 윤회(輪廻)를 하게 되는 그 윤회의 주체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의문이 간다.

왕의 물음과 비구의 대답이 계속 이어진다.

"사람이 죽은 후,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현재의 육체와 정신이 새로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현재의 몸과 마음에 의해 선업이나 악업이 이어지면 그 업에 따라 새로운 정신과 육체가 새로 태어납니다."

만약 현재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다음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나'와 내생의 '나'가 다르니까 악업에 따라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현재의 '나'와는 관계가 없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비구는 비유를 들어 자신의 업은 자신이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어떤 이가 수박밭에 가서 수박 한 통을 훔쳤다고 합시다. 그 밭 주인이 그 사람을 붙잡아 왕에게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저는 저 사람의 수박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이 심은 수박씨와 제가 따온 수박과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면 왕께서는 그 사람을 그냥 방면해 주시겠습니까?"

수박도적은 기괴한 논리를 세운다. 밭 주인이 심은 수박씨와 자기가 따온 수박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는 괴변이다. 이 말은 사람이 '나'라는 명칭만 있을 뿐, 실제적인 '나'가 없고 현재의 '나'와 다음 순간의 나는 끊임없이 다르기 때문에 앞 순간의 '나'가 뒷 순간의 '나'에 대해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단절의 논리이다. 즉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그 과보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수박도둑의 주장에 대해서 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처벌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 수박도둑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처음의 수박씨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수박을 훔친 것에 대해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구가 말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육체와 정신에 의해 선악의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따라 새로운 육체와 정신으로 다른 세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을 때의 수박과 훔칠 때의 수박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수박을 훔친 행위는 분명하듯이 현재 악업을 짓고 있는 주체자로서의 '나'와 그 악업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의 악업을 짓고 있는 행위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박을 훔친 죄로 벌을 받아야 하고 악업을 지은 죄에 대해서 과보(果報)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왕은 다른 비유를 들어서 다시 한번 업을 짓고 그 과보를 받는 윤회의 주체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비구는 다른 비유를 들어준다.

어떤 사람이 쌀이나 고구마를 훔쳤다고 하는 경우에도 수박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추울 때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나서 불을 끄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불이 번져서 남의 산을 태웠다고 합시다.

산 주인이 그 불낸 사람을 왕 앞에 데리고 와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산을 태운 사람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산을 태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끄지 않은 불과 이 사람의 산을 태운 불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대왕은 그 사나이에게 죄가 있다고 하겠습니까?"

대왕이 "그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처음의 불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 다음의 불에 의해 죄가 있기 때문에 죄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비구가 왕의 답을 받아서 설명한다.



밀린다팡하(5) 윤회의 주체-2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육체와 정신에 의해서 선악의 행위를 짓고 그 행위에 따라서 또 하나의 새로운 육체와 정신으로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난 인간은 그 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료가 다르면 불도 달라진다. 불이 타고 있는 한 항상 새로운 연료를 태운다. 새로운 연료를 태우고 있는 한 항상 새로운 불이 될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한 불길이 다른 연료로 옮겨 붙어서 새로운 불길을 만든다.

앞의 불과 뒤의 불이 다르기는 하지만 앞의 불이 없으면 뒤의 불이 나올 수 없다. 불길이 계속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동일한 '나', 동일하고 고정적인 주체가 없이 계속 달라지는 임시의 주체가 생긴다는 뜻이고, 불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앞의 불이 없으면 다음의 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무아(無我)임에도 불구하고 업(業)의 힘이 옮겨져서 새로운 유체와 정신을 만든다는 뜻이다. '불길이 다르지만 연결된다.'는 말은 '무아(無我)이지만 업(業)과 윤회(輪廻)가 있다.'는 말이 된다.

왕은 또 비유를 들어서 무아의 업과 윤회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사나이가 한 소녀에게 구혼하여 값을 치렀습니다. 그 소녀가 자라서 처녀가 되었을 때, 다른 사나이가 값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하자 먼저 사나이가 와서 '당신은 왜 남의 아내를 데리고 갔소.'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나중 사나이가 '나는 당신의 아내를 데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구혼하여 값을 치른 어린 소녀와 내가 구혼하여 값을 치른 신부와는 동일한 여성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고 합시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대왕 앞에 나가 재판을 요구한다면 어느 쪽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물론 왕은 먼저 돈을 치른 사나이가 옳다고 말한다.

"나중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해도 장성한 처녀는 어린 소녀로부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비구가 말을 받는다.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육신과 정신이 저 세상에 태어날 것과 다르기는 하지만 저 세상의 것은 이 세상의 것으로 인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대화가 있을 당시의 결혼풍습은 남자 쪽에서 신부집에 돈을 치렀던 것 같다. 먼저 사나이가 돈을 치를 때의 소녀와 나중 사나이가 다시 돈을 치를 때의 처녀가 분명히 다르기는 하지만 소녀로 인해 처녀가 나왔기 때문에 소녀에게 돈을 지불한 처음 사나이가 그 처녀와 살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몸은 순간순간 변하고 자라거나 늙어간다. 기본적인 골격의 뼈나 살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하게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한 번 먹은 음식을 두 번 먹을 수는 없다. 한 번 숨을 쉬어서 태워 버린 공기를 두 번 태울 수는 없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공기를 숨쉬며 산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앞의 것과 뒤의 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앞의 것과 뒤의 것이 동일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것으로 인해 뒤의 것이 생겨나기 때문에 앞의 것이 지은 업의 결과를 뒤의 것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녀와 처녀가 다르다는 것은 '고정적인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무아(無我)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소녀가 없이는 처녀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무아(無我)이기는 하지만 앞의 원인으로 인해 뒤의 결과가 생기는 윤회가 있다.'는 무아(無我)의 윤회(輪廻)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밀린다판하(6) 출가의 목적-1


밀린다 왕은 우리를 대신해서 출가의 목적에 대해서 나가세나 비구에게 물었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비구를 궁중으로 초청했고 나가세나 비구는 많은 비구대중과 함께 공양을 받았다. 왕은 비구들에게 맛있는 공양을 대접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비구들에게 옷 한 벌씩을 선사했다.

대접하는 일이 끝난 다음에 왕이 나가세나 비구에게 물었다.
"스님이 출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또 스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비구가 대답했다.
"우리가 출가한 목적은 괴로움을 없애고 다시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세속에 대한 집착이 없이 완전히 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입니다."

출가의 목적에 대해서 비구는 원칙적인 답변을 한다. 괴로움을 여의고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요즘의 불교적인 술어로 말하면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다. 이고득락은 세간의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다는 뜻이다. 고통을 여의는 것이 출가의 목적이 되고 열반의 고요와 해탈의 자유를 얻는 것이 수행의 최후 목적이 된다. 이 출가의 목적은 불법을 공부하고 닦는 목적도 된다. 현재 한국불교에 있어서 불교신자들에게 불교를 믿는 목적을 말하려면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불자들은 인사할 때 '성불하십시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상대방의 궁극 목표는 성불이 목적일 터이니까 그 목표를 성취하라는 인사이다. 아주 좋은 뜻이다. 그런데 인사하는 사람이나 인사 받는 사람의 마음속에 성불을 목표로 하는 생각이 없으면 그 인사는 서로에게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성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위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성불하는 것이다.

성불하는 목적은 내가 좋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를 좋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다른 이를 좋게 하는 것이 나를 좋게 하는 것이다. 성불의 목적은 보살행(菩薩行)이다. 부처님은 우리처럼 작은 마음이 아니라 큰 마음을 가졌다. 우리도 그 큰 마음을 가지고자 한다. 부처님은 밖으로 얻어지는 재물, 이성, 명예, 음식, 안락에 의해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얻어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안으로부터 행복의 샘물을 파내려고 한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행복해지려고 한다. 성불하겠다는 마음을 낼 때 참다운 불도에 들어가게 한다. '나는 부처가 될 마음도 없고,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면 아직 진정한 불심이 아니다.



밀린다팡하(7) 출가의 목적-2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비구의 출가목적에 대한 원칙적인 답을 듣고 더욱 추긍해 들어간다.

왕이 묻는다.

“출가의 목적이 고통을 여의고 고통의 뿌리를 뽑아서 해탈을 이룩하는 것이라면 비구들은 모두 그와 같은 고상한 이유로 출가했나요?”

왕은 중요한 질문을 한다. 나가세나 비구가 출가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했는데 비구들이 모두 그러한 목적으로 출가했느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이고 해탈(解脫)이고 성불(成佛)이라고 하는데 너희 불교신자들은 모두 그 목적으로 불교를 믿느냐?'고 묻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비구들이 다 나가세나 비구가 말하는 원칙적인 목적으로 출가했느냐?'라는 왕의 질문에 대한 나가세나 비구의 대답이 중요하다.

“대왕이시여, 모든 사람들이 다 열반(涅槃)과 해탈(解脫)을 위해서 출가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성불(成佛)할 목적으로 출가했지만 또 다른 사람은 폭군 임금에 대한 공포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도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생활수단으로 출가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스님, 스님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출가했습니까?”

비구가 대답했다.
"사실 저는 어려서 출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단지 '이 비구스님들은 현인이다. 그들은 나를 공부시켜 줄 것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배워서 지금은 출가하는 목적과 욕망을 자제하는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습니다.

나가세나 비구는 처음 출가할 때 출가의 목적을 자세히 몰랐다고 한다. 단지 승단(僧團)에서 배울 것이 있으리라고만 기대하고 출가해서 이제는 출가의 목적을 확실하게 알았다는 대답이다.

너무도 솔직한 대답에 왕은 "그렇습니까? 잘 알았습니다."라고 인사한다.

나가세나 비구처럼 처음에 출가가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모르고 출가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많이 있어 왔고 현재에도 많이 있으며 앞으로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들이 처음에 목적을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후에 궁극의 목적을 깨닫고 그것을 향해서 수행하게 된다.

불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타종교를 믿는 이들도 불교를 믿고싶은 생각도 없고 오직 천도재(薦度齋)만을 모시기 위해서 절을 찾았다가 천도재도 잘 모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불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절을 관상사주 보는 곳으로 잘못 알고 절에 들렀다가 절에 다니면서 차츰 불자의 바른 길을 터득한 사람들도 있다. 불교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고 오직 부모, 형제, 자녀, 남편이나 부인만을 위해서 공이나 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차츰 불법을 알면서 열심히 치성을 드릴뿐만 아니라 불도를 닦는 바른 목적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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