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전개의 으뜸 제자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제자들 가운데 으뜸”이며, “마음의 전개에 능숙한 제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알려진 수행자는 쭐라빤타까(Culla Panthaka)이다. 한문 경전에서는 주리반특으로 알려져 있다.
쭐라빤타까는 형 마하빤타까와 함께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라났다. 부유한 집의 딸이었던 어머니가 하인과 눈이 맞아 도망 다니면서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빤타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형은 큰 길에서 태어나서 마하빤타까가 되었고, 동생은 작은 길에서 태어나서 쭐라빤타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형인 마하빤타까는 할아버지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것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성장하면서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 동생인 쭐라빤타까는 형이 출가하는 것을 보고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결국에는 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건 더러워지는 변화 보면서
모든 것 변하는 무상진리 깨쳐
그러나 머리가 둔했던 쭐라빤타까는 비구스님이 된지 몇 달이 지나도록 게송하나를 외우지 못하였다. 함께 수행하던 형이 동생의 이러한 모습을 보자 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어렵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양의 초청과 관련된 소임을 보고 있던 형은 신자들의 공양 요청이 들어와도 동생을 명단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쭐라빤타까는 분한 마음이 들어서 수행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부처님께서 아시고 쭐라빤타까를 부르시었다. 그리고는 깨끗한 천을 하나 주시면서 마루를 열심히 닦도록 시켰다. 또한 수건을 밀고 당길 때마다 ‘라조 하라낭(rajo-haran.a, 먼지 닦기)’이라고 외도록 가르쳐 주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쭐라빤타까는 용기백배하여 열심히 걸레질을 하다가 때가 묻은 걸레가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건이 더러워지는 변화를 보면서 ‘조건 지어진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의 진리를 깨쳤다.
이러한 변화를 아신 부처님께서는 쭐라빤타까를 불러 구체적으로 설법을 해 주셨다.
“비단 수건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때가 끼느니라. 그 때란 무엇인가? 욕망, 갈망, 탐심, 증오, 악심, 진심, 무지, 어두움이 그것이니라. 그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한 무지(無智)의 때가 낌으로 해서 사람들의 마음도 때가 낀 걸레처럼 뻣뻣해지며 사악해지는 것이니라. 이러한 때를 완전히 제거하면 수행의 목표는 달성되나니, 그 때 그는 아라한이 되느니라.”
쭐라빤다까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용기를 얻어 더욱 현상 관찰에 마음을 집중시켰다. 드디어 존자는 “천이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탐욕이 때이며, 성냄이 때이며, 어리석음이 때”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존자는 욕계의 때를 벗어버리고, 색계의 사선정을 성취하고 마음의 전개에 능숙한 제일의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러나 어떻게 변하는 가는 지혜로운 선지식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의 궁극적 행복을 위해서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34호/ 6월14일자]
쭐라빤타까 존자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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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닦아내며 진리 깨쳐
쭐라빤타까 존자가 계법(戒法)조차 외우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은 것은 전생에 지은 악업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지와까 망고나무 동산에 계실 때 존자의 전생업(前生業)이 무엇인지 말씀하신 바 있다.
존자는 “전생에 과거불인 까사빠 부처님의 승가에 출가한 비구였는데 어떤 둔한 비구를 가리켜 바보라고 자주 놀려대곤 했기 때문에 그 과보로 현생에 둔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남의 약점이나 장애를 놀리고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행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가르침이다. 쭐라빤타까 존자 역시 그 인과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윤회를 거듭한 것이다.
그러나 금생에 부처님의 법을 만나서 쭐라빤다까 존자는 아라한이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설하신 부처님께서는 “영리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마치 작은 불씨를 불어 큰 불을 일으키는 것처럼 얼마 안 되는 적은 자본을 가지고도 큰 재물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을 사례를 들어 일러 주셨다. 그리고 죽은 쥐 한 마리를 팔아서 수십만 냥의 부를 축적한 사람의 예를 말씀하신 바 있다.
“옛날에 어떤 가난한 사내가 길을 가다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이 사람은 그것을 들고 가서 선술집에 고양이 먹이로 팔아서 1까하빠나에 팔았다. 그 돈으로 꽃 한 다발을 사서 다시 팔고, 사탕즙을 사서 화원에 팔아 8까하빠나를 벌었다. 그리고 다시 나뭇가지와 잎들을 모아서 옹기장이에게 팔아 16까하빠나와 다섯 개의 그릇을 받고 팔아서 24까하바나를 벌었다. 그리고 그것을 밑천 삼아 풀을 베어 모아 말 먹이로 팔아서 1000까하빠나를 벌었다. 그 돈으로 무역상들에게 물건을 구입하여 사고파는 것을 반복하면서 20만 까하빠나의 거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비구 놀린 업보로 우둔하게 태어났지만
선근공덕 쌓고 정진하여 아라한과 얻어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능력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얼마 안 되는 적은 돈으로 장사를 통해 이익을 남기면서 큰 재물을 모을 수 있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복을 늘려 결국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쭐라빤타까 존자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저능아로 태어났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복덕을 잘 활용하고 정진하여 아라한의 단계에 오르는 지혜를 깨우칠 수 있었다. 존자의 깨달음이 성취되기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큰 의지처가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존자 자신의 선근공덕과 노력이다. 부처님께서도 “근면하고 꿋꿋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라한의 경지를 달성한다”고 강조하신 바 있다.
그 가르침이 바로 법구경 제25 게송이다. 즉, “부지런하고, 깨어있고, 계율을 지키고, 감각을 제어하여서,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을 어떤 홍수도 범람치 못할 섬으로 만든다.” 여기서 홍수는 탐진치 삼독심이 넘쳐나는 것을 말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범람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도 해를 입힐 수 있다. 사성제라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국민과 나라를 홍수에 떠내려가게 만들 수 있다.
아둔한 쭐라빤타까가 먼지를 닦아내면서 흰 천이 걸레가 되는 것을 보고 깨우친 것은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정확한 관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현상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을 때 그 속에서 참다운 진리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욕심에 사로잡히거나 선입견과 편향된 생각이 진리의 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임을 불자들은 정확하게 꿰뚫어 알아야 한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36호/ 6월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