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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제자-가전연존자(마하깟짜나존자)

불교란 무엇인가요/불교입문

by 자수향 2008. 12. 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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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깟짜나 존자 ①



‘바른 법’과 ‘그릇된 법’ 통찰한 수행자 

 

 


 

깟짜나는 논의제일로 잘 알려져 있는 가전연 존자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이다. 존자는 인도의 마드야 프라데시(MP)주의 웃자인 지역에서 바라문 가문 출신인 궁중제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인도 최고의 성전인 베다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중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완띠 국의 짠다빳조따 왕이 부처님을 초청하기 위하여 깟짜나 존자를 특사로 선발하였다. 존자는 일곱 명의 친구들과 부처님을 모셔오기 위해 기원정사로 갔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무애행을 갖춘 아라한과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하나로 손꼽혔으며,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진리를 설파하는데 뛰어난 역할을 하였다.

<앙굿따라 니까야(증일아함경)>에서는 “(내가) 간략하게 설하는 것에 대해 상세하게 그 뜻을 설명하는 자들 가운데 마하 깟짜나가 으뜸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깟짜나 존자를 이와 같이 칭찬할 수 있었던 사례는 경전의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타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비법(非法)과 법(法)’에 대한 깟짜나 존자의 보충설법(A10:17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법을 하셨다. “비구들이여, 비법과 법을 알아야 하고,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

비법과 법을 알고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안 뒤에 법을 따라, 이로운 것을 따라 도를 닦아야 한다”라고 간략하게 설하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설법을 들은 비구스님들은 그 상세한 뜻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논의한 끝에 깟짜나 존자에게 좀더 상세한 설명을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깟짜나 존자는 상세한 내용은 부처님께 직접 듣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수행자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수행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도반들이여, 생명을 죽이는 것은 비법이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것은 법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나니 이것이 해로운 것입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여러가지 유익한 법들이 수행을 통해서 완성에 이르나니 이것이 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깟짜나 존자는 계속해서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 삿된 음행, 거짓말, 중상모략, 욕설, 잡담, 욕심, 악의, 그릇된 견해 등 십악업과 그것에서 벗어나는 십선업을 예로 들어 여법하게 설명을 계속하였다.

부처님의 간단한 가르침에 대하여 깟짜나 존자는 사례를 들어 ‘올바른 법과 그릇된 법을 분별하는 논리’를 매우 상세하게, 그리고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다른 수행자들에게 설명하였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악행을 하는 것은 그릇된 법이며, 악행을 벗어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올바른 법이다.

또한 악행을 조건으로 해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선행을 조건으로 이로운 것들이 생겨난다. 따라서 악행에서 벗어나고 선행을 실천하여 유익한 법을 깨우치는 것은 수행을 통해서 완성 된다”라는 점이다. 깟짜나 존자의 설법을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내가 설명을 해도 그와 같이 말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마하 깟짜나는 현자(賢者)이며, 큰 통찰지를 가진 수행자이다”라고 칭찬하셨다.

김응철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마하 깟짜나 존자 ②

난폭한 ‘아완띠의 왕’을 교화하다



아완띠국은 부처님 재세시 존재했던 16개국 중에서 마가다국, 꼬살라국, 왐사국에 이어 4대 강국에 포함될 정도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당시 아완띠의 왕은 빳조따(Pajjota)였는데, 성격이 난폭하여 짠다빳조따로 불렸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모국을 찾은 마하깟짜나(가전연) 존자는 왕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 불교에 귀의하도록 만들었다.

마하깟자나 존자는 난폭한 왕을 교화하기 위하여 왕에게 악행과 그로 인하여 형성되는 악업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삶의 방식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하였다.

깟짜나 “백성들에게 악행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악행을 시킨 사람은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은 자기가 지은 업에 얽매여 있습니다. 남의 말에 의해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고 남의 말에 의해 성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하늘의 신들도 우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설법을 분석해 보면 깟짜나 존자는 왕에게 악행과 그 과보를 먼저 설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저지르는 자발적인 악행도 나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도록 직접 교사하거나 간접적으로 방조하는 것도 악업의 원인이 됨을 강조하였다. 또한 악인이 되거나 성자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이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의 행위를 살펴보고 관찰할 것을 왕에게 설하였다.

 

 

악행으로 생겨나는 惡業 설해

지혜로운 지도자 자세도 제시


깟짜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밝게 깨닫는 이는 더 이상 죽이고 빼앗는 싸움에 연루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설사 재물을 잃더라도 홀로 살 수 있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졌어도 참되게 살지를 못합니다.”

여기서는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을 대비시켜 무상함을 깨우치고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그리고 지혜로운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득하였다.

깟짜나 “대왕이여, 장님이 보듯이 보고, 귀머거리가 듣듯이 들으며, 이미 알고 있어도 벙어리처럼 침묵할 수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약자처럼 낮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짓 없는 선행을 쌓게 되고 그 복을 잃지 않고 간직하게 됩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의 권력자들에게도 적절하게 해당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은 현상을 신중하고 냉철하게 볼 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국민의 고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국민의 소리를 신중하게 들을 뿐만 아니라 들리지 않는 고통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행사할 때는 국민의 입장에 서서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난폭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국민은 전쟁이나 폭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어리석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국민은 빈곤과 불안함에서 허덕여야 한다. 자애롭고 지혜로운 지도자가 쌓는 복덕은 곧바로 국민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사례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깟자나 존자는 난폭했던 짠다빳쪼다 왕을 교화하면서 2600년이 지난 오늘의 지도자들에게도 적절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01호/ 2월16일자]

 

 

마하 깟짜나 존자 ③

 

“모든 사람은 인과법칙 아래서 평등” 

 

 

 

 

마두라는 부처님 당시 슈라세나(Surasena)의 수도로 야무나 강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깟짜나(가전연) 존자가 마두라 인근의 군다(Gunda)동산에 머물고 있을 때 이 지역을 통치하던 아완띠뿟따(Avantiputta)왕이 이 소식을 들었다. 왕은 깟짜나 존자가 “현명하고 지혜롭고 총명하고 박학하고 다채로운 논쟁을 하고, 말솜씨가 있고 원숙하고 거룩한 이로 훌륭한 명성이 자자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왕은 존자가 머물고 있던 동산으로 찾아갔다.

 

  누구라도 악행 저지르면 惡果

  신분 관계없이 행위업보 받아 


<맛지마니까야> 제84경 ‘마두라 설법의 경’에는 마두라에서의 설법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경전을 보면 당시 인도 카스트 제도하에서 사성계급이 왜 잘못되었고, 왜 모든 사람이 계급에 관계없이 평등한지를 설명하는 깟짜나 존자의 논리체계와 설법방법을 알 수 있다.

왕은 존자를 찾아와서 “깟짜나 존자여, 오직 바라문만이 신의 후예요, 신의 입에서 태어났고, 신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신의 상속자이고 다른 계급은 그렇지 않다고 바라문들이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깟짜나 존자는 “그런 주장은 세상의 말일 뿐이며 바라문들의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일축하면서 그 근거를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논리적으로 증명하였다.

“바라문이나 왕족, 평민이나 노예 누구라도 부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부지런하게 일한 결과이다. 누구나 부지런하게 일하여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네 계급 사이에 그것에 있어서 어떤 차이도 없다. 또한 바라문이나 왕족, 평민이나 노예 등 누구라도 악행을 저지른다면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즉 악행을 저지르면 악과를 받고 선행을 행하면 선과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신분에 관계없이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업보를 받는 것은 곧 네 계급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누구나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과의 법칙 하에서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 깟짜나 존자의 설법논리이다. 즉 신분에 관계없이 노력하여 부자가 되었다면 신분이 더 이상 차별을 가져올 근거가 없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 설법을 들은 왕은 결국 “계급에 관계없이 도둑질을 하면 도적이라 불리듯이 계급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또한 악행을 벗어나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도 ‘수행자’라고 불려질 때 ‘계급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도 수용하였다. 그리고 왕은 “바라문이 신의 상속자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그렇게 주장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깨우쳤다.

설법을 듣고 난 아완띠뿟다 왕이 깟짜나 존자에게 귀의하려고 하자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오늘날의 종교인들 중에서도 종교적 신념이나 주장, 그리고 그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진리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사회에도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남에게 강요하고, 맹종하도록 요구하는 종교인들이 많아지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종교인들이 유일하게 믿어야 할 진리가 있다면 무상.고.무아의 삼법인과 더불어 “모든 행위는 그것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다”라는 것이다. 고도 정보사회가 심화될수록 종교 간의 교리적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결국 올바르고 보편적인 믿음과 모든 사람을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수행체계를 갖춘 종교만이 세계종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03호/ 2월23일자]

2008-02-20 오후 4:57:55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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