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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옮기기 24회(09.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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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악한 이 마라는  "세존은 나를 알고 있다. 나를 간파하고 있다."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의기 소침해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이 경전이 전하는 붓다의 설법자로서의 태도를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악마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었으니까 우리는 그 표현을 넘어서 붓다의 심중을 살필 필요가 있으려니와, 여기에서 발견되는 붓다의 설법 태도는 다른 종교인들의 그것과는 썩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그것은 거칠게 부르짖는 예언자의 태도가 아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무반성하게 엮어 세우는 설교 태도 또한 아니다. 자기는 과연 사람들에게 설법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것에 정말 어울리겠는가, 또는  탐심이나 노여움에 사로잡히는 일은 없겠는가, 이런 인간다운 불안이나 반성이 마음에 오고 간다는 것은 도리어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붓다야 말로 그런 설법자였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연기(緣起)

 

        이것이 있음에 말미암아(연) 저것이 있고

        이것 생김에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이것 없음에 말미암아 저것이 없고

        이것 멸함에 말미암아 저것이 멸한다.

                                                                         ([상응부경전] 12:21 :19)

 

 이제까지 나는 10장에 걸쳐 붓다라고 부리는 사람을 여러 측면에서 관찰하고 또 사상의 성격에 대해서도 몇 개의 특징을 든 바 있거니와, 한 마디로 말하여 붓다는 여느 종교가의 유형과는 썩 다른 인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찌보면 종교가라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사상가 또는 철학자의 범주에 속했던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 인품을 말한대도 그렇지만 사상은 더욱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계시 따위와는 전혀 달라서 정현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기에 그 가르침을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는 그것이 지혜의 가르침인 점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상 체계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 이른바 '연기의 원리'이다. 그것은 이미 말했듯이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의 내용일시 분명하다.

정각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것은 바로 이 연기의 원리를 파악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의 모든 사상적 전개는 최초의 설법의 내요이 된 '사제'의 가르침을 비롯해서 모두 이 원리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을 터이다. 따라서 붓다의 사상을 파악하고자 할 때 먼저 이 연기 사상을 명확히 해야할 것이 요청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붓다의 사상을 파고드는 정공법인 것이다.그러나 이 원리를 파악하기란 그리 수월치가 않다. 이미 언급했거니와 붓다가 이 법을 설할 것인가 하고 주저했던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었던 것이다.

[상응부경전] 6:1 '권청'은 그것에 대해 이런 말을 기록해 놓고 있다.

 

      "내가 체득한 이 법은 심히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적연 미묘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하여, 심원하여 오직

       지혜로운 이 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연기 즉 모든 존재는 원인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생겼다는 이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을 잘 살펴보건대 연기설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두 가지 점이 기록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심히 깊다든지, 적연 미묘하다든지, 또는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능히 알 수 있다든지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둘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 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제 이 두가지 이유를 검토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먼저 첫째 이유로 말한 '사상이 심히 깊다.'함은 어떤 사실을 가리키는 것일까? 후대 불교 문헌에서도 우리는 흔히 "심심(深甚)'이니 '미묘'니 '난견(難見)'이니 하는 어휘에 부닥치게 되거니와, 불교 사상이 미묘해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떤 뜻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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