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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푸는 공의 세계와 반야바라밀 -공으로 비추어 본 현실참여(김성철)

호법 그리고 포교

by 자수향 2009. 5.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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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참여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불교인으로서 어떻게 조망하고 불교적으로 해결
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공(空)’, ‘무아(無我)’, ‘연기(緣起)’등의
불교교리를 통해 알아 봅니다. 그리고 선행을 위한 진정한 자비심 무엇인지, 그 자비심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동국대 김성철교수님의 강의 요약본)

 

1-1.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현실 참여의 차이
○ 현실참여는 왠지 불교와 거리가 먼 개념 같이 느껴지며 불전에서는 세속적 삶으로부터의 이탈
을 권장 합니다.
소승불교의 경우 불교수행자가 세속인의 현실에 참여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신자가 봉양
한 시주물을 받아 주는 것이고 대승불교는 현실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고
따마 싯다르타의 성도(成道) 전 구도행을 재현하여 살고자 하면 소승이고, 승속에 관계없이 ‘본생
담(本生譚)’에 등장하는 보살의 이타행을 실천하고자 하면 대승으로 두 가지 모두 위대한 삶입니
다.
○ 십 수 년 전부터 다양한 성격의 시민운동 단체가 설립되어 대승적 이타(利他)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데 상구보리를 통해 얻어진 불교적 조망이 하화중생적 현실참여의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불
교적 안목을 갖추지 못한 현실참여는 반향 없는 외침이 되거나 평지풍파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불교적 현실참여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이 위선이 되지 않고 억압
하는 자에 대한 비판이 증오가 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될 마음자세는 무엇인지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1-2. 불교의 현실참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십 수 년 전부터 다양한 성격의 시민운동 단체가 설립되어 대승적 이타(利他)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데 상구보리를 통해 얻어진 불교적 조망이 하화중생적 현실참여의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불
교적 안목을 갖추지 못한 현실참여는 반향 없는 외침이 되거나 평지풍파로 귀결되기 쉽습니다.
불교적 현실참여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고통받는 자에 대한 동정이 위선이 되지 않고 억압
하는 자에 대한 비판이 증오가 되지 않기 위해 갖추어야 될 마음자세는 무엇인지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2. 참여의 패러독스
2-1. ‘공의 논리’로 해석한 패러독스 현상
○ 인류의 정치사를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패러독스(paradox)에 빠지는 상황
은 종종 발생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유와 세계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인간의
모든 사유에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용수(龍樹)는 『중론(中論)』이나 『회쟁론(廻諍論)』등을 통해
‘공의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데, 다양한 패러독스를 지적하는 논법도 ‘공의 논리’에 속합니다.
‘공의 논리’는 불교의 중심교설인 연기설(緣起說)에 토대를 두고 연기를 위배할 때 발생하는 논
리적 오류를 지적하여 연기와 공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하게 해줍니다.
○ 우리의 사유는 개념과 개념, 사태와 사태를 ‘분할’함으로써 구사됩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연
기적(緣起的)으로 얽혀 있는 한 덩어리로 분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할하여 배척된 것은
순수타자가 아니라 자기를 내함(內含) 타자이며 ‘분할’이후의 언행은 ‘자기지칭’을 초래하게
됩니다.

2-2현실참여의 패러독스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정의 대상’과 ‘동정하는 자’, ‘비판의 대상’과 ‘비판하는 자’의 분할을 전제로 하는
시민운동의 행위도 자기지칭의 패러독스를 초래하게 됩니다.
참여는 이타심(利他心)과 비판정신에 토대를 둔 사회적 활동으로 고통을 받는 계층에 대해 도
움을 주는 것과 고통을 주는 집단을 비판하는 것이 현실참여의 양대 목표입니다. 참여 행위에서
발생하는 패러독스는 분할(=분별)을 통해서만 구사되는 우리의 ‘생각’과 연기적으로 얽혀 있는
‘세계’의 본질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참여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는‘자신을 위함’과 ‘남을 위함’의 선후 관계가 바뀌지 말
아야 하며 비판 대상의 정체가 명확해야 합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문제점에 대한 진단이 잘못
된 경우 그에 대한 부분별한 비판적 선언은 사회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해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대사회적 비판은 패러독스를 야
기함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비판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 문제에 대한 전문적이고 치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며 참여의 범위에 걸맞는 참여 주체의 권위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3. 하나의 분별
3-1.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 모든 불교교리는 진리의 차원에서 교시된 진제(眞諦)와 일상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속제(俗諦)로
양분됩니다. 진제란 엄밀한 이치에 토대를 두고 발화되는 불교적 진리를 말하고 속제란 일반인들
의 관습적 인식에 순응하여 발화되는 불교적 진리를 말합니다.
시비를 가리지 말라든지, 분별을 버리라는 불교적 금언(金言)은 진제의 관조를 위해 수용되는
경우에 한해 유용할 수 있으며 이런 금언들이 속제적 행동의 지침으로 강요되는 경우 우리는 모든
가치판단이 상실되는 악취공(惡取空)의 나락에 빠지기 쉽습니다.
진제적 교설은 깨달음을 구현하는 과정에서만 통용될 수 있을 뿐이며 현실참여란 일반인들의
관습적 인식의 차원, 즉 속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입니다. 속제의 차원에서 우리는 옳고 그
른 것을 엄정히 가려내야 하고 문제가 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치밀하게 분별해내야 합니다.
3-2. 불교인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조언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
○ 불교의 진리를 진정으로 터득한 사람은 분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매순간 그 상황이 요
구하는 최상의 분별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최상의 분별을 하기 위해서는 반야적 공성
(空性)과 화엄적 다면성(多面性)에 대한 철저한 조망을 체득해야 합니다. 반야와 화엄의 세척을 거
치지 않은 치우친 사고에 의해 고안된 정책은 악순환을 야기하기 쉽습니다.
○ 화엄과 반야의 이치에 비추어 보면 갈등하는 다양한 사안들을 모두 해결하는 하나의 지침이 반
드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상(萬相)은 일상(一相)으로 수렴하고 일상은 만상으로 확장되니 상호
갈등하는 그 어떤 사안(事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해 주는 하나의 분별은 반드시 존재합니
다. 만법(萬法)이 일법(一法)으로 수렴한다는 화엄(華嚴)의 진리는 이 세상 그 어떤 현상에 대해서
도 통용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안에 대한 분석이 치밀하지 못하고 그 해결을 위한 숙고가 부족하며, 정책을 입안하는
당사자가 타성적 사고에 젖어 있기에 최적의 분별을 고안해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M.Y리더스클럽 6기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는 시대정신을 갖춘 불교 리더의 양성에 달려 있습니다.


4. 동체대비
4-1. 무아(無我), 동체(同體), 자비심(慈悲心)

○ 현실참여는 이타심과 비판정신에 토대를 둔 사회 활동으로 불교적 견지에서는 동체대비적(同體
大悲的)적 조망과 심성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지는 동정과 비판만이 진정한 선행이라고 불릴 수 있
습니다.
불교의 무아(無我)-그 어디에도 내가 없다. 그 어떤 것도 내가 아니다-를 뒤집어 해석하면 온
우주와 온 생명이 모두 나의 몸이라는 말이 됩니다. 온 세상은 한 몸이다(同體)이며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싫어하고 안락을 추구합니다(離苦得樂). 따라서 동체의 진리를 자각한 보살은 모든 중생에
대해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자비행을 시현합니다.
○ 모든 중생에 대한 동체적 조망은 불교적 수행을 통해 체득되며, 대비심은 그렇게 체득된 동체
적 조망의 자연적 귀결로 무아의 체득을 지향하는 상구보리의 수행을 거쳐야 우리는 진정한 동체
대비적 조망과 심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살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참여의 주체는
현실참여적 활동과 아울러 참회와 기도와 좌선과 간경(看經) 등으로 이루어지는 상구보리적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2. 동체대비적 선행
○ 동체 대비적 선행은 자기 자신에게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나와 남을 분할한 비판은 증오심에 가득 찬 공격이 되기 쉬우니 억압하는 자에 대한 비판 역시
동체대비심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떤 특정 인격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비판활동을
하는 경우 우리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행위를 시정하도록 준엄하게 요구하되 상대방의 인격은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압제하는 권력자도 사실은 무명(無明)에 싸인 가련한 중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5. 맺는 말
○ 가시적(可視的)인 현실참여가 초래하는 패러독스는 죄악이 아닙니다.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 수
만 있다면 우리는 패러독스의 발생에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현실적 문제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야 합니다. 참여의 주체는 현실의 문제점이 진정 해결되기만 한다면 심지어 자신의 개인적 불명예
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명예와 권위를 추구하지 않고, 엄정한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비판의 대상에 대한 파악이
명확한 참여는 가시적 참여라고 하더라도 불교적 참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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