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혜 닦아 완전한 열반 성취
카필라 성 근처에서 수행하던 부루나(뿐나 만따니뿟따) 존자가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사위성을 방문하자 그의 명성을 들은 사리불 존자가 어느 정도 깨우쳤는지 알고 싶어서 법거량을 시도하였다. 사리불 존자가 “출가하여 수행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묻자 부루나 존자는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파발수레의 비유를 들어 일곱 단계의 수행방법을 제시하였다. 파발수레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꼬살라 국의 빠세나디 왕이 급한 일로 싸밧티에서 사께다 지역까지 가려고 한다면, 두 지역 사이에 일곱 개의 파발 수레를 배치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수레를 끄는 말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도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왕이 목적지까지 빨리 가려면 처음 파발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가 있는 지역까지 가고,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가 있는 지역까지 가고, 그렇게 계속 바꾸어 가면서 결국 일곱 번째 수레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즉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여러 대의 수레를 갈아타면서 달려야 한다.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파발수레의 예와 같이 “수행정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을 차례대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부루나 존자는 강조하였다.
“출가 수행의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
집착없는 깨달음 이르는 수행법 제시
이는 곧 차제수행을 말한다. 부루나 존자가 제시한 차제수행법은 “계행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견해를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른다”는 것이다.
또한 “견해를 청정하게 함으로써 의혹을 끊어 청정하게 하고, 의혹을 끊어 청정하게 함으로써 길과 길이 아닌 것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른다. 길과 길이 아닌 것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길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길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앎과 봄 즉, 지견(知見)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다.”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수행법”을 분석해 보면 지계 수행으로 청정범행을 닦고, 선정 수행으로 마음을 닦고, 지혜 수행으로 진리에 대한 의혹이 사라진 정견을 성취한다. 여기까지의 수행은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이다. 그렇게 정견을 갖추면 진리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끊어서 바른 길과 바르지 않은 길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른 길을 완전하게 알고 보는 눈, 즉 청정 지견을 갖추면 팔정도를 실천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해탈지견을 갖추어 완전한 열반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루나 존자의 설명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분석해 보면 계행의 실천은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는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계행이 갖추어져 있을 때 선정 공부가 가능하고, 선정이 갖추어져 있을 때 흔들림 없는 정견의 상태를 체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계정혜 삼학은 깨달음의 기본 조건이다. 또한 수행자는 의혹을 없애고, 바른 길과 그른 길에 대한 판단력을 길러, 바른 길에 대한 지견을 갖추어야 한다. 청정한 해탈지견을 얻었을 때 비로소 집착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부루나 존자는 사리불 존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이 대답을 듣고 나서 사리불 존자는 “부루나 존자를 볼 수 있고, 가까이 할 수 있는 동료 수행자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이에 부루나 존자도 “스승과 같은 존재인 존자 사리불과 함께 대화를 하고 볼 수 있고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고 최상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응철 / 논설위원ㆍ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59호/ 9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