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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10대제자-아누룻다존자

불교란 무엇인가요/불교입문

by 자수향 2008. 12. 1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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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룻다 존자 ①




석가족 출신으로 부처님과 사촌지간



아누룻다(Anuruddha, 아나율) 존자는 석가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슛도다나대왕의 동생인 쑤꼬다나였다. 따라서 아누룻다와 석가모니 부처님과는 사촌지간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아버지 슛도다나왕의 형제는 모두 7남매로 숙부가 4명, 고모가 2명이 있었다. 이 중에서 쑤꼬다나의 아들로 마하나마와 아누룻다, 아미또다나의 아들 아난다, 큰고모인 암미따의 아들 띳사, 그리고 작은 고모인 빠미따의 자녀로 데바닷따와 야소다라 등이 있다.

석가족은 카스트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꼴리야 족과의 통혼 외에는 주로 족내혼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도 왕족들의 출가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사촌형제들이었던 왕족들의 대부분이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하여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마하나마를 비롯하여 출가하지 않은 다수의 왕족들은 꼬살라국의 침입 때 죽고 말았다. 다행히 아누룻다는 부처님께서 카필라 성을 방문하셨을 때 아난다와 데바닷다 등을 비롯하여 우빨리 등과 함께 출가할 수 있었다.

아누룻다는 본래 출가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형인 마하나마가 출가하려고 집안일을 부탁하자 일하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형 대신 출가를 결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출가초기에 아누룻다는 마음공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출가동기가 확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처님 설법시간에 자주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서 부처님으로부터 질책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적극적으로 마음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잠자지 않고 집중수행에 전념

     미래 내다보는 ‘천안통’ 증득


아누룻다 존자는 처음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내다보며, 많은 사람들이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아누룻다의 초기 천안통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내용은 사리불 존자와의 대화(A3:128) 속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아누룻다 “나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기력은 활기차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내 마음은 확고하게 안정되어 있습니다. 내 몸은 혼란스럽지 않고 평안합니다. 내 마음은 하나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온 마음은 집착 없는 번뇌로부터 해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사리불 존자는 아누룻다가 자만과 오만, 그리고 불안에 빠져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지적해 주었다.

사리불 “삼천대천세계를 보았다는 당신의 말은 아직 자만(自慢)입니다. 기력이 활기차고 흔들림이 없다는 등의 소리는 바로 오만(傲慢)입니다. 그런데 아직 마음의 번뇌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는 말은 불안(不安)입니다. 도반 아누룻다여, 그대가 자만과 오만 그리고 불안을 버린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은 불사의 세계로 모아질 것입니다.”

사리불 존자로부터 이와 같은 지적을 받은 아누룻다는 잠을 자지 않고 집중수행에 전념하였다. 이 과정에서 눈물샘이 막히는 바람에 육신의 눈이 멀게 되었다.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아누룻다 존자는 그때서야 비로소 자만과 오만, 그리고 의심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천안통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응철 / 논설위원ㆍ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28호/ 5월24일자]

 

 

 

아누룻다 존자 ②




대나무숲서 우안거 지내며 최상지혜 깨쳐



아누룻다 존자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홀로 앉아 있을 때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바른 사유(思惟) 방법을 깨우쳤다. 여기서 말하는 일곱 가지 사유는 소욕(少慾), 지족(知足), 한거(閑居), 정진(精進), 정념(正念), 삼매(三昧), 통찰지(洞察智) 등으로 부처님께서 평소 제자들에 강조하신 내용이다.

“이 법은 바라는 바가 적은 자를 위한 것이지 바라는 바가 많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만족할 줄 아는 자를 위한 것이지 만족하지 못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한거(閑居)를 하는 자를 위한 것이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즐기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열심히 정진하는 자를 위한 것이지 게으른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마음 챙김을 확립한 자를 위한 것이지 마음 챙김을 놓아버린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삼매에 든 자를 위한 것이지 삼매에 들지 못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통찰지를 갖춘 자를 위한 것이지 통찰지가 없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누룻다가 이러한 일곱 가지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여덟 번째로 사유할 문제에 대하여 설해 주셨다.

“아누룻다여, 그대는 여덟 번째로 ‘이 법은 사량분별(思量分別) 없음을 좋아하고 사량분별 없음을 즐기는 자를 위한 것이지 사량분별을 좋아하고 사량분별을 즐기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런 대인(大人)의 사유를 하여야 한다.”

홀로 7가지 사유법 깨우친 뒤

부처님 설법 듣고 ‘8사유’ 완성

아누룻다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여덟 가지 대인의 사유를 완성하고 완전한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누룻다가 깨우친 ‘여덟 가지 대인의 사유’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매우 세부적으로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먼저 ‘바라는 바가 적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의복이나 탁발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이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만족한다”는 것이다. ‘한거를 한다’는 것은 이욕(離慾)과 출리(出離)를 기뻐하고 그것에 대하여 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열심히 정진한다’는 것은 해로운 법을 제거하고 유익한 법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 챙김을 확립한다’는 것은 오래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내는 것이다. ‘삼매에 든다’는 것은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초선부터 제4선을 구족하여 그것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통찰지를 갖춘다’는 것은 일어나고 사라짐을 꿰뚫고 성스럽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량분별 없음을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의 분별심을 떠나서 청정한 믿음을 갖고 안정되고 확고하게 해탈하는 것을 말한다.

아누룻다 존자는 대나무 숲에서 우안거를 지내면서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를 독려해 위없는 청정범행을 완성하고 최상의 지혜를 깨우쳤다. 그리고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선언하며 아라한과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30호/ 5월31일자]

 

 

 

 

아누룻다 존자 ③


청정한 마음의 ‘통찰지’ 깨쳐



아누룻다 존자가 천안(天眼)의 지혜를 증득한 뒤에 살펴보니, “여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존자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어떤 법을 가진 여인들이 사후에 그렇게 태어나는가를 여쭌 일이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아누룻다여,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오전에는 인색함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물고, 낮에는 질투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그리고 저녁에는 감각적 욕망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부처님은 이 설법에서 인색함과 질투,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 물들어서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그로 인한 악행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비단 여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신분이나 역할에 관계없이 누구든 탐욕의 강물에 빠져서 인색하게 행동하고, 분노의 그물에 걸려서 질투하고, 어리석음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이다.

“내마음 깨끗하면 세상 깨끗”

가르침 통해 천안통 지혜 증득


이와 같은 탐진치 삼독심에서 모든 중생이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에서는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 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라고 언명하고 있다. 여기서 ‘라아’는 탐욕, ‘나베사’는 분노, ‘모하자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의미한다. ‘미사미’는 독(毒)을 말한다. 각종 의식에서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자주 독송하는 이유가 바로 삼독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진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삼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잡아함경>에서는 “기둥에 묶여 있는 개”로 비유하신 바 있다. “탐진치 삼독심에 빠진 것을 비유하면 개를 끈으로 기둥에 묶어 놓은 것과 같다. 개를 기둥에 묶어 놓으면 개는 끈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기둥을 빙빙 돌면서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나지는 못한다.”

중생들은 이미 오랜 세월동안 윤회하면서 마음이 탐욕에 물들었고, 성냄에 물들었고, 어리석음에 물들었기 때문에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에 대한 애착과 생각, 갈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한다. 그것은 마치 기둥에 묶인 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기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개가 기둥을 벗어나려면 기둥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야 하듯이,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이 또한 맑고 깨끗해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아누룻다 존자는 진정한 천안통의 지혜를 증득하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도자가 청정한 마음으로 통찰지를 가지고 있으면 동업중생인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가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만과 의심에 빠져 있다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배고픔과 갈등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삼독심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서 국민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32호/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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