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마음의 ‘통찰지’ 깨쳐
아누룻다 존자가 천안(天眼)의 지혜를 증득한 뒤에 살펴보니, “여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존자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어떤 법을 가진 여인들이 사후에 그렇게 태어나는가를 여쭌 일이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아누룻다여,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오전에는 인색함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물고, 낮에는 질투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그리고 저녁에는 감각적 욕망의 때에 사로잡힌 마음으로 집에 머문다. 이러한 세 가지 법을 가진 여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부처님은 이 설법에서 인색함과 질투, 그리고 감각적 욕망에 물들어서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그로 인한 악행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비단 여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신분이나 역할에 관계없이 누구든 탐욕의 강물에 빠져서 인색하게 행동하고, 분노의 그물에 걸려서 질투하고, 어리석음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이다.
“내마음 깨끗하면 세상 깨끗”
가르침 통해 천안통 지혜 증득
이와 같은 탐진치 삼독심에서 모든 중생이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에서는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사 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라고 언명하고 있다. 여기서 ‘라아’는 탐욕, ‘나베사’는 분노, ‘모하자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의미한다. ‘미사미’는 독(毒)을 말한다. 각종 의식에서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자주 독송하는 이유가 바로 삼독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진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삼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잡아함경>에서는 “기둥에 묶여 있는 개”로 비유하신 바 있다. “탐진치 삼독심에 빠진 것을 비유하면 개를 끈으로 기둥에 묶어 놓은 것과 같다. 개를 기둥에 묶어 놓으면 개는 끈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기둥을 빙빙 돌면서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나지는 못한다.”
중생들은 이미 오랜 세월동안 윤회하면서 마음이 탐욕에 물들었고, 성냄에 물들었고, 어리석음에 물들었기 때문에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에 대한 애착과 생각, 갈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한다. 그것은 마치 기둥에 묶인 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기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개가 기둥을 벗어나려면 기둥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야 하듯이,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 내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세상이 또한 맑고 깨끗해진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아누룻다 존자는 진정한 천안통의 지혜를 증득하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지도자가 청정한 마음으로 통찰지를 가지고 있으면 동업중생인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가 탐진치 삼독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만과 의심에 빠져 있다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배고픔과 갈등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삼독심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서 국민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김응철 /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불교신문 2432호/ 6월7일자]